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Aug 01. 2024

학벌보다 더 중요한 것들

학벌은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아침 10시에 느지막이 카페에서 신문을 보며 여유로운시간을 즐긴다. 옆에 아주머니 네 분이 각자의 자녀 얘기를 한다. 주제는 '대학입시'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나, 10분만 앉아 있으니 대략 아주머니 네 분의 가족관계, 자녀가 모두 19살 고3 동갑내기라는 점, 그리고 모두 학구열이 상당하다는 것 이 세 가지는 자연스레 알게 됐다. 아마 나뿐 아니라 이어폰을 안 끼고 있는 모두가 알았을 거다.


"이번 6평 망쳐서 9월 모의고사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데, 애가 도통 집중을 안 해, 미치겠어"

"중경외시라도 가야 하는데 지금 딱 성적이 인서울 커트라인 정도라 걱정돼"

"확실히 이과가 대학 가기가 유리하대. 9월에 또 과학탐구는 엄청 쉽게 나올 거래"


대화에서 자녀 입시 관련 여러 걱정들이 오간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이 끝나지 않을 숙제를 결국 끝내지 못한 채 찝찝한 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 네 분의아주머니에겐 자녀가 SKY대학교에 가는 게 로또 당첨보다 더 소중하다. 그 어떤 것보다도 자랑스러운 명예, 평생 우려먹을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경사며 안줏거리다.

부모들이 이렇게 자녀의 대학입시에 집착하는 건 보통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학벌이 높을수록 사회에서 더 성공한다는 맹신, 본인이 학창 시절 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자녀로 투영됐거나 혹은 본인이 자녀에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다. 대한민국 부모를 대상으로 이 이야기는 이 세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셋다 명백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재단할 순 없지만, 현대사회에 접목할 때 다소 괴리가 있고 수많은 선택 중 아주 작은 일부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학벌은 실제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며 또 얼마나 중요할까?


사실 2024년 현재 학벌은 현대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아직도' 중요하다. 물론 예전보다 그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누군가를 소개받거나, 지인이 있을 때 학벌은 늘 우선순위로 빠지지 않는 개인정보이며,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된다. 심지어 공정과 형평을 가장 중요하고 민감하게 여기는 현세대 그리고 회사에서도 아직 학벌을 기준으로 액셀로 취업 자기소개서를 필터링하는 곳도 있다. 오히려 이 필터링을 공정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에 강남대치동이나 목동에  경제력이 있는 부모들은 그 돈을 전부 자녀의 교육에 쏟아붓는다. 내 자녀가 어릴 적부터 예체능이나 운동에서 특출 난 재능이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그 순간부터 더 나은 곳에서, 더 나은 사람과 더 나은 직업을 갖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2024년 학벌표다. 과거에는 SKY대학교(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다음으로 경북대, 부산대 등 지방거점국립대학교가 탑티어를 차지했지만,  현대사회에서의 탈지방 가속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서울 중심의 대학들로순위가 바뀌었다. 같은 점수면 과나 대학 한 단계 급을 낮춰서라도 어떻게든 서울 입성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돋보인다.

위 사진은 취업을 할 때 학벌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실제 23년도 특정 대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자료라고 한다.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사례정도로 참고가능한 수치다.

물론, 본인이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 해서 무조건 인생이 승승장구하고 과시할일은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도학연으로 끌어주니 마니, 특정학교의 카르텔이 있니 마니 소문은 무성하지만 특히 요즘 이와 같은 인식은 많이 상쇄됐다. 블라인드 채용과 능력위주의 인재배치가 공공연한 기업 차원에서도 학벌은 단순히 개인에게'이름표' 역할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저 어릴 적 '노력의 결과물' 일뿐.


자, 그렇다면 학벌이 예전만큼의 메리트는 없다고 했을 때, 현대사회에서 사실상 고3, 20대의 청년들에게 학벌보다 더 중요한 건 뭘까. 청년의 시각에서 직접 보자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먼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하루빨리 깨닫는 것이다. 10대, 20대는 돌아보면 하루하루가 쏜살같았다. 그냥 화살처럼 날아와 한순간에 꽂힌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느리고, 여유로운 시간처럼 비칠지라도사실 그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하루아침에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더 각별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학벌이 어떻든 간에 어떻게 인생의 Base를 잘 다져놓을 것인지에 스스로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많은 경험을 넘어 앞으로의 목표에 있어 도움 될만한 경험을 하는 것이 삶을 돌아봤을 때 목표를 향한 계단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경험을 얻기에 학벌이 좋다면 '도움'이 될 뿐이지 결정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똑똑한 사람들 주변엔 똑똑한 사람이 아무래도 많을 테니. 내 주위에는 학벌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 30대 나이 때 가질 수 없는 부를 가진 사람이 몇 명 있다. 이들의 20대는 학벌이 낮음에 좌절하지도 않았고, 딱 하나의 목표에 걸맞은 경험만 차례대로 쌓아 나갔다. 그것을 만약 혼자 할 수 없었다면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어떻게든 주변의 환경을 모두 동원해 되게 만들었던 그들이다.


둘째는 첫 번째와 연관 지어 다가올 미래를 위해 현재를 기꺼이 희생해 보는 것이다. 재미만 가득한 20대는 추억은 존재하나 결과가 없다. 재미와 함께 다가올 미래에 현재를 기꺼이 희생해 보는 용기가 절실하다. 그 용기는 한국교육, 전형적인 취업이나 시험에 국한되지않더라도 요리를 배워볼 수도, 유튜버를 해 볼 수도, 관심있었던 산업에서 일을 배울 수도 있다. 서울대를 나와 목수를 하고 있는 사람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서울대라는 타이틀을 떼고 목수라는 직업을 배운 그 기간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타이틀은 뼈대일 뿐, 알맹이가 될 수 없듯, 어느 한 기간을 미래를 위해 희생해 보는 시도가 절실하다.

그다음, 가장 중요한 것. 남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다. 남눈치 봐봤자 본인에게 오는 긍정적인 시그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정형적인 틀에 본인을 가두면 본인만 불행해진다. 남이 한다고 해서 따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 마인드가 20대 때부터 탑재되면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삶을 꾸려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설령 그것이 망한다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일 없으며, 본인이 이겨내는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성장할 기회가 온다. 어차피 남 눈치 봐봤자 그 주체가 내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니, 더 봐야 하는 명목이 사라진다.인생은 학벌 순이 절대 아니라 내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는지의 결과물이기에 본인 인생이 달린 그 선택의 문제에 남을 끌어 들일 이유가 전혀 없다.


이것만 알아도 학벌과 관계없이 삶은 잘 굴러가게 되어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