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터족에 대하여
평범한 삶의 정의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평범'이란 단어가 정확히 어떤 수준을 의미하는가를 살펴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평범한 삶이란 어느 하나 튀는 곳 없고 잘난 것 없이 그냥 남들과 같이 살아가는 삶을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부럽다’라는 말은 거의 듣지 못하며, 그렇다고 또 ‘불쌍하다’ 혹은 ‘안타깝다’라는 말을 듣지도 않는 그저 그런 삶.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집은 자가 혹은 전세, 자식은 두 명 정도 있고, 애들 학원 두 개 정도씩 보내고. 외벌이에 일주일에 한 번 외식하고, 가끔 아빠가 퇴근길에 통닭을 사 오기도 하며(지금 돌이켜보면 이때는 늘 아빠가 회사에서 혹은 일터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여름휴가때에는 근처 계곡이나 바다에 놀러가는 그런 삶. 아파트에 살면 대개 아주 높은 확률로 내 옆집도, 윗집도, 아랫집도 그렇게 살았다.
근데 지금은 이 평범함에 들어가기 위한 엔트리부터가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아주 운이 좋거나,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만 쟁취할 수 있는 특권이 됐다.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국민 평형이 60억을 찍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6천만원도, 6억도 아닌 60억. 최상류층에 있는 극단적인 예시라고? 서울에 있는 20년 이상 된 아파트 중에도 10억 아래는 거의 없다. 전세를 해도5억 남짓. 평범한 직장인 아니, 심지어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 월 300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부모지원 하나없이 한 푼도 안 쓰고 몇십 년을 모아야 서울에 발 벗고 편안히 잘 곳 하나 딱 생기는 판국이다.
입사경쟁률은 지방에 중소기업 사무직 하나 뽑는 데에도 보통 100대 1은 기본이다.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살펴보면, 예전에는 ‘아, 내가 지금 자격증도 따고 스펙관리를 더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겠다! 내가 잘하고, 원했던 일에 초집중하며 살아야겠다!’ 였다면 지금은 ’내가 해봤자 이 높은 경쟁률을뚫을 수 있을까. 뚫어도 진짜 잘 풀렸다고 해봤자 결국 서울에 사는 건데 그냥 맘 편안히 내려놔야겠다'라고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어차피 고생해서 현재를 희생해도 그 보상의 크기가 내 노력과 비례하지 않으니 '지금' 행복하고 마는 것이다.
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 ‘프리터족’이 된다. 정규직 일자리를 굳이 바라지 않고 삶에 필수적인 돈만 벌고 본인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 이렇게 10년, 20년 아르바이트만 전전하게 된다. 일 좀 하다가 힘들면 쉬고. 좀 쉬었다 싶으면 다시 일 구해서 하다가 쉬고. 서로의 조건을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결혼시장에서는 당연히 도태되고 애초에 본인도 이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통장에 80만원 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 새벽에 달리기를 하고 목이 말라 편의점에 물을 사려는데, 그 물값이 아까워 한참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조금 지나 월세가 부담돼 다 접고 고향에도 내려갔다. 카페를 가도 아메리카노에 샷추가(500원)하는 돈이 아까워 하지도 않고, 옷이나 외식 일절 없는 삶을 2년간 살았다. 28살부터 30살까지. 다시 돈을 벌 수 있는 날은 기약이 없다. 언제가 될지 가늠도 안간다. 그럼 알바를 왜안 했냐. 왜 당시 프리터족을 선언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았나. 나는 ‘시간’이 아까웠다. 하루에 다섯여섯 시간알바를 하면 돈은 벌겠지만, 내 인생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을 갉아먹는다 생각했다. 어떻게든 잘 될 거라는 티끌 같은 희망 하나로 버텼던 그 2년 덕분에 지금은 밥이라도 먹고살고 있지만 사실 어떤 선택을 하든 정답도 없고, 지금 청년들에겐 그때처럼 선택지가 많이 없다. 그게 가장 무섭다.
유튜브나 자기 개발서, 어른들의 조언에 늘 공통적인 말은 ‘존버’. 버티면 좋은 날 온다. ‘실패해도 젊어서 괜찮아’, ‘다시 하면 돼’, ‘돈이 다가 아니야’ 같은 상투적이고 원론적인 단어들.
당연히 의문을 품게 된다. 정작 그런 말을 하면서 본인 자식이 취업 못하고 빌빌대고 있으면 불안해하고 잔소리하고, 뒤에서 갭투자하고 주식투자한다.
뭐든 직접 겪지 않으면 절대 와닿지 않는다. 예를 들어,30년 평생 왼손잡이로 살던 사람이 본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오른손으로 쓰라고 백날 뭐라 해도 안 바뀐다. 내가 겪는 내 삶과 타인의 눈에 비친 내 삶은 천지차이인 것. 그래서 더욱 주위에서 하는 말들을 맹신할 필요가 없다.
그럼 결국 뭐냐. 내가 선택한 무언가가 맞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주문을 걸면서 사는 법뿐이다. 나도 그랬고 이 세상 모든 프리터족으로 사는 청년들도 마찬가지. 지금 본인의 삶의 장점만 떠올리며 아침마다 자기암시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1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샀다고 하자. 그 자전거가 내게 만약 ‘이동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면당근에서 5만 원짜리를 사도 아무렇지 않다. 왜냐하면내겐 그게 옳은 결정이고 옳은 삶이니까. 저절로 비교자체가 줄어들고, 타인의 삶에 무관심해진다.
자본주의란 게 원래 이렇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도 이런데 도망가봤자 낙원은 없다. 다른 나라도 돈 없으면 굶어 죽는 건 똑같다. 아니, 이방인이라는 디메리트까지 안아야 한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돈 없으면 그냥 굶어 죽어야 하는 나라다. 근데 이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누군가는 반포 아파트 사고, 해외여행가고, 취할 거 다 취하면서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다. 반대로누군가는 거지다. 어디든 똑같다. 백날 노력해 봐야 안 되는 사람은 안되고, 운 좋은 사람은 잘 풀리고. 모든 타이밍을 절대적으로 맞춘다면 그건 신이지, 사람이 아니다.
그냥 본인의 위치에서 본인이 살아가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옳다고 여기는 것. 이 험난하고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그거 하나뿐이라는 생각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