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잔소리를 이겨내는 법
남자 인생 난이도를 봤을 때 가장 힘든 때가 언제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바로 27살에서 30세까지 대개 이 3년이다. 지금 98년생부터 95년생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사람에 따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을 다니는 평범한 학생 기준 이 3년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10년, 20년이 달라진다고 느낀다. 가장 위태로우면서도 중요한시기다.
지금 같은 추석 연휴면 이들의 현실비하와 자기 연민은 더 짙어진다. 현생에 집중하더라도 연휴 때 오랜만에 주위 사람들을 만나 제삼자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서다. 이게 나만의 경험이었다면 ‘나는 이 시기를 이렇게 보냈다’라고 소개하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 모든 ‘남성’이라는 성별, 27세~30세를 고려한표본집단에서는 90% 이상이 동시에 느꼈던 감정이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도 물론 똑같이 느꼈고.
누군가는 5~6년 전 내 얘기라 현재는 바뀌었을 거라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보다 지금 심하면 더 심하다. 그들의 삶에 있어 더 나은 방향, 고무적인 부분은 거의 찾기 힘들다. 이들 간의 취업이나, 사업이나 이 자본주의에서 밥그릇싸움은 더 치열하며, 모두가 개인주의에다가, 서로를 혐오하고, 돈은 없고, 책임질 일은 많으며, 하나뿐인 꿈은 현실과 큰 괴리감에 서서히 옅어져 간다.
이 긴 연휴라도 그 나이대 남자 청년은 대개 고향에 가지 않는다. 그 시간에 단기알바라도 해서 만원이라도 더 벌려고 한다. 이렇게 처절하게 살아나가고자 하는 고귀한 사람들이다. 고향 갈 시간도, 돈도 아깝다. 교통비만 왕복 10만 원이다. 부모랑은 어떻게든 떨어살아야 더 애틋해진다고 자기 위안 삼는다. 굳이 명절이라 해서 볼 필요도 없다. 이미 그 나이 때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가진 각자의 기대치는 서로가 충족해주지 못한다. 부모님이 본 자식의 모습은 지금쯤 든든한 직장과 제 밥벌이를 하면서, 애인도 보여주고, 매월은 아니더라도 이런 명절 때 최소한 빈 손으로는 오지 않는, 용돈 한 푼이라도 줄 수 있는 자식이길바란다. 그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식이길 바란다.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 현대사회에선 그냥 명목상 하는 소리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가 묵묵히 그냥 응원해 주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서포트를 못해준다면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길 바란다. 남의 아들 딸과 비교하지 않길 바란다. 말만 하면 자동으로 입 밖으로 나오는 단어.
“내가 알아서 할게”
이 말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충동적으로 나온 말이 아니다. 쌓인 게 그동안 많았고, 이 말을 해야만 대화가 종결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치트키 같은 것.
“그래, 요즘 하는 일은 어때?“
“취업준비는 잘 돼 가니?”
“여자친구(남자친구)는 있어?”
이 말을 들을걸 예상하고 어떻게 대답할지 머리를 굴린다. 굳이 애초에 이렇게 스트레스 자체를 받기 싫어해서 만나지 않는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취업준비생은 준비생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신혼부부며 직장인이며 각자의 스트레스를 명절의 이 만남 때문에 받을 거면 굳이 왜 만나나. 명절은 마치 불편한 타인과의 약속 같은 게 되어버렸다. 차라리 그 시간에 본인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훨씬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쌓아가는 친척의 중요도는 사실 현대인 각자의 삶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건 우린 이제 알고 있다. 지금 2030은 그 누구보다 영리하다.
자, 그렇다면 남자 인생 이 나이대가 왜 가장 힘들고 난이도가 높을까.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다. 1년을 한 페이지라 가정하고 지우고 싶은 페이지가 있다면 난 고민도 않고 29살 때를 꼽을 것이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주변과 비교했을 때 되는 일 없이 자존감 바닥을 찍던 그때. 다음 날이 전혀 기대되지 않던 삶이었다.
여기서 이유가 다 나온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이 나이대 연령 남자들이 느끼고 있는 것.
바로 ‘불확실성이 주는 압박감’, ‘선택의 순간에 대한 처절한 고민’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라서 그렇다.
먼저 불확실성이 주는 압박감에 대해 살펴보겠다. 또래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가기에 사회생활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다. 삶의 리듬이 남자보다 한 템포 빠르다. 대부분 취업하고 어떻게든 돈벌이를 하는데 본인은 이룬 거 하나 없다 여겨진다. 본인이 현재 처한 길이 돈도 많이 못 버는 걸 뻔히 아는데, 이 길을 계속 파야할지 의문이 자리하고, 그렇다고 돈을 좇기엔 흥미가 없어 평생 할 엄두가 안 난다. 나이 압박이 있어 언제까지나 사회가 오냐오냐해주지도 않는다. 사회가 용인해 주는마지막 나이라 여기는 시점이다. 주변에 잘 된 사례만 여기저기 들려온다. 잘 안된 사례는 모른다. 왜? 잘 안된 건 잘 안된 본인이 당연히 말을 안 하니까. 인스타그램에 본인 불행을 올리는 사람이 주변에 있나? 똑같은 개념이다. 사실 20대 후반에서 잘 된 사례라 해봤자 지금생각해 보면 거기서 거긴데 그땐 그게 매우 크다 여겨진다. 세상의 전부 같다. 무엇보다 금전적인 압박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시기이기에 본인이 하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자리할 수밖에 없는 나이다. 이게 과연 돈이 되는가 안 되는가.
두 번째, 선택의 순간에 대한 처절한 고민. 20대 초반에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본인의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은 진짜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시기에 어떤 행동을 구체적으로 취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아주 크게 바뀔 확률이 높다. 누군가는 몇 년의 시간을 날려먹기도 하고, 누군가는 본인과 어울리는 걸 일찍 알고 선택과 집중해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에 그때는 그 선택에 대한 부담감이 가장 크게 다가올 시점이다. 그래서 사실 이때 주변 남자들을 보면 “난 00을 할 거야”라며 자신 있게 얘기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진짜 이게 맞나?‘라며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만 얘기한다고? 좋다. 아주 운 좋게27살에 취업을 한 누군가 있다 하자. 4년제 대학 나와 군대 다녀오고 바로 칼취업해도 27살 남짓이다. 칼취업 가능성이 낮으나 이렇게 바늘구멍을 뚫어 열심히 살아온 이들도 그럼 고민이 없느냐? 똑같다. 이 회사를계속 다니는 게 맞는 건지, 같이 일하는 팀장이나 부장님을 보면서 본인의 미래모습이라고 투영해보기도 하고, 친구나 주변사람들에게 고민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만두고 또 방황을 하다 인생이 다시 안 풀릴 수도 있다. 내 얘기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학자금 대출이 있을 수 있고, 재수 삼수를 할 수도 있고, 유학을 간다거나, 취업준비나 전문직 공부한답시고 2~3년 날릴수도 있고. 대개 우리가 상상하고 바랬던 것과 별개로 ‘크게 대단한 걸 이루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30대가 된다. 그때는 위의 두 가지 고민이 더 깊고 심각하게 다가올 것이다.
남자 최대 암흑기 이 시기를 그럼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정답은 없다. 그때 잘 나갔던 것도 사실 돌이켜보면절대 영원하지 않고, 그때의 힘듦도 기억 안 날정도로 잘 풀린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 20대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나마 최근에 겪은 사람으로서 가장 가까이서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자 한다. 젊음이 최대 무기라는 원론적이고 진부한 말보다는 그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편승하지 않는 것. 이게 너무 중요하다. 회계사가 돈 많이 번다해서 따라 하지 않고, 공무원이 안정적이라 해서 따라 준비하지 않고, 허세와 겉멋을 내려놓고 거울에 비친 진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본인에게 본인만의 과제를 주면서 거기에 성취를 느끼며 한 스텝씩 나아가는 것. 안다. 그 과제는 무조건 실패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 번에 성공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회사에 들어가거나 뭔가를 준비할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춘 사람이기에 자산이나 명예가 이뤄져 있어야 하는 비범한 사람이다. 그냥 실패하면서 본인만의 뭔가를 계속 그렇게 깨닫는 과정인 것 같다. 이렇게 그 과제는 더 커지고 대단해지고 점점 더 성숙한 인간으로서 커가는 게 아닐까.
단, 그 과정에서 채찍과당근은 꼭 공존되어야 한다. 이유는 결국 그래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어서다. 이 마인드가 암흑기에서 결국 현재 뭐라도 남길 수 있고 그때의 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마인드셋이라 여긴다.
중요한 일은 원래 힘든 것이다. 결국 본인을 이 암흑기에서 탈출하게 만드는 건 그 어떤 누구의 도움도 아닌 나 스스로임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인 듯하다. 그 경험은 미래에 자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