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왜 조심해야 하는가
친구가 본인 회사의 재밌는 소문을 얘기해 준다. 깔깔 웃으면서도 무심코 당사자는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글로 가볍게 옮겨보고자 한다.
어느 한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본래 지루하다. 그 조직 안에 사람이 많은데도 지루하다. 늘 쳇바퀴 같은 하루에 따분하고 지쳐 바뀌지 않는 이 현실에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걸 원한다. 사람이 많은데 지루한 이유는 딱 한 개뿐이다. 우린 친구가 아니다. 농담 따먹기 하려고 모인 게 아니다. 조직은 내가 여기 속한 그 순간 아니, 조직이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의 목표달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면접을 보고, 면접이 아니라면 서류라도 패스해 합격한 이들은 애초에 뽑힌 이유 자체도 그 조직의 공동의 목표에 이바지하기 위해 뽑힌 것이다. 그게 회사라면 재화와 용역을 생산해 이윤추구를 하는 집단이기에 ‘돈’을 벌기 위한 기여일 테고, 공공기관이나 공무원이라면 공익, 하물며 동네 달리기 동호회도 최소한 같이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그래야 서로 힘이 되면서 으쌰으쌰 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였기에 딱히 이윤추구 말고는 만나서할 말이 없는 것이다. 본래 그게 정상이다.
근데 인간은 두 개의 귀와 입이 있다. 하루 24시간 중,
1/3이 넘는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데 일 얘기만 하면 무료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가십거리를 이용해 이를 철저히 본인이 속한 집단의
‘재미’로 활용한다. 본인 이야기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본인 입에서 본인 욕은 대체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윗사람에게 어필하려 하고, 어필할 게 아니라면 철저히 숨기기 바쁘다. 사적인 얘기는 해봤자 남에게 알려져 크게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낭보보다 비보에 더 크게 반응한다. 이번 유명 유튜버사건만 봐도 그렇다. 무슨 일 하나 생기면 타인의 안 좋은 일을 본인의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남 안 되는 일들만 재미를 느끼고 당사자를 계속 나락으로 보낸다. 실제로 그것이 본인의 안 좋은 말이 아니더라도 나비효과처럼 번져 나중에 그대로 본인에게 더 크게 돌아온다. 나 또한 그랬다. 전 직장에서 시간이있을 때 영어를 공부한다고 주말에 얘기했는데 어느덧 나는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런 식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말을 아껴야 한다. 믿는 사람에게만 내 소중한 것들을 오픈할 수 있다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근데 애초에 있으면 좋지만 없다한들 굳이 회사 안에서 그런 사람을 애를 써서 만들 필요도 없고, 굳이 본인 고민을 알릴 필요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방은 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 어떻게 반응하든 결국은 그게 본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재단하고 판단하기에 그렇다. 내 고민과 비밀을 가장 믿음직한 사람에게 말했다 치자. 절대 안 말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치자. 그건 내 불안함을 내가 자처해서 하나 더 사는 꼴이다. 사실 언제 어디서 그 폭탄은 터질지 모르는 거다. 당연히 무거운 어투로 말했기에 지금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겠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 친한 사람이 누군가와 술을 마시다가 다 옛날 얘기라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말할지 어떻게 아나. 내가 ‘괜찮은 상황’이라고 착각하고 말이다. 그런 식이다. 좋은 사람을 스스로 자처할 필요가 없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옛사람들의 속담은 오랜 기간 삶의 지혜로 검증된 값진 격언이다.
혹은 이것보다 더 자주 발생하는 상황을 말해주겠다. 무심코 그가 말하지 않았다 쳐도 회사 일은 어떻게 어느 순간에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인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잘 나가는 부장, 본부장이 하루아침에 버림받을 수도 있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변방의 어떤 직원이 승진해서 높은 위치까지 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실력이 없어 다 무시하는데 줄을 잘 타서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내가 친하다 생각해서 그 친한 사람들과 영원히 같은 위치에서 같이 올라가는 게 절대 아니란 거다.
친한 두 명이 있다고 하자. 높고 낮음의 직급이 균형이 깨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론 그 사이 자체에서는 티가 안 나겠지만,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 내 온갖 비밀과 사생활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이젠 각자의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걸 철저히 지키려 든다. 즉, 둘 중 한 명이 불편해하는 시기가 분명 먼저 올 것이고, 그 관계는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간다. 예전에 나눴던 비밀과 사생활은 그 직급이 올라간 그 사람의 약점이 된다. 관계는 두 손이 있어야 박수가 쳐지듯, 상호적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불편해하는 상황이 오면 그냥 끝나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가 아주 비일비재하며, 비일비재를 넘어 거의 모든 회사원이 겪는 문제라는 것이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짜여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서로 경쟁을 붙여 각자의 사기를 북돋아야 개개인이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노예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당근을 줄 수 없다.
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말을 아끼면 중간은 간다. 왜?말을 아낀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다. 말 많고 재밌는 거? 좋지. 근데 그 순간이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광대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때의 재미와 즐거움은 술 한잔 들이켜듯, 담배 한 대의 뿌연 연기처럼 그렇게 다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근데 말을 아낀 사람은? 계속 궁금하다. 우리 모두 가진 정보가 없으니까 뒤에서 말할 거리도 없다. 이런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애초에 모르기 때문에 약점을 잡을 수도 없고 스스로가 그 사람에게 조심해진다.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주변 사람들이 적당한거리를 만든다. 그런 사람이 조직장이라면 이런 편한 방법이 또 있을까. 평가하기도 쉽고 뒷말도 안 나온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가 누군가. 가족이다. 그다음에 친한 친구정도 되겠지. 근데 가족 간에도 말 한마디로 손절하고, 행동 하나로 오해하는 세상이다. 평생 남남으로 살 때도 있다. 가까울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게 ‘말’인데 회사에서는 오죽하랴. 내 귀에 들리는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하면 된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은 어떻게든 귀에 들리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본인이 안 되는 것을 목표로 두어야 한다. 그러면 이익은 크게 없을 테지만 손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줄여야 한다. 무상으로 남의 재미로 본인이 활용되는 건 억울하지 않나. 과유불급. 한 살 한살 나이가 들며 늘 무르익고 이기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