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추억의 차이에 대하여
삶은 계획한 대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에 없던 일로, 아주 운이 좋게도 20대에 29개국이 넘는 곳을 여행했다. 그중 두 군데에서는 2년 이상 거주했고 앞으로 평생 갈 곳을 합친다면 최소 못해도 35개국에서 40개국은 될 것이다. 단순히 도장 깨기의 의미를 넘어, 여행을 많이 했다는 그 자체로 주변 사람들은 이를 굉장히 부러워한다. 근데 그 부러워하는 당사자들과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눈에 유독 띠는 게 있다. 그 부러움의 주체는 대개 여행 갈 시간이 많았다는 것도 아니고, ‘쉼’을 온전히 즐기고 왔다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경험’을 많이 하고 왔다는 이유로 귀결된다. 90%가 넘는 사람들이 그렇다. 많이 여행했다고 의도치 않게 ’경험많은 사람‘이 되어있는 것이다.
“와, 넌 그렇게 여행 많이 해서 견문도 넓히고 진짜 좋은 경험 많이 했네”
“경험의 양이 다른 사람이랑 비교가 안 되겠네”
이런 식이다. 요즘 주변만 봐도 해외여행 참 많이 간다.일 년에 못해도 두세 번은 가는 것 같다. 나도 4월에 오사카를 갔다 왔으니 벌써 올해 한번 더 가면 두 번이다.정확히 평균정도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방구석에 앉아 유튜브만 틀어도 여행유튜버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나라를 여행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거보다 여행 서적이라던지 콘텐츠가 무궁무진한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여행이 현대인 삶에 막대한영향을 미치는 ’경험‘이라고 정의 내린다. 근데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 그 여행유튜버들이 콘텐츠를 올리는 일은 그들의 ‘직업’이다. 그게 그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생계인 것이다.
우리가 20대에 알바로 돈을 조금씩 모아 누군가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을 ‘경험’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자체로 턱없이 부족하다. 대개 그들이 주장하는 그 경험이란, 갔다 와서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일은 아주 희박하겠지만 그 여행 한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 한국의 삶의 모든 걸 포기하고 눌러앉지 않는 이상 그건 진정한 ‘경험’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걸 경험이 아닌 ‘추억’이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기억들은 대개 추억으로 치환되기 마련이다.추억은 말 그대로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현재 다시 상기시킴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딱 거기까지다. 유독 한국인은 ‘여행’에 굉장히 큰 의미부여를 하는데 경험이하의 일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은 자기 합리화보다 늘 자기 객관화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자기 합리화는 본인의 정신건강과 자기 위안에 이로워 본인 삶을 편안하게 이끌지만, 이게 지나치면 주변사람 모두 본인의 상황을 안타깝게여긴다. 그냥 세상에 (나 홀로) 정신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힘들게 취업했는데 현실이 너무 괴로워 퇴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주변에 많다.
유튜브에 ‘퇴사 브이로그’라고만 쳐도 수천 개 영상 나온다. 보통 이들이 주로 말하는 언어들을 살펴보면 ‘나를 위해 떠난다’, ‘나의 하나뿐인 휴식기‘, ’번아웃에 따른 재충전‘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쓴다. 주변에서도 (본인은 절대 안 그만두면서) 대부분 그들을 응원한다. 경쟁자 하나 제쳤다는 식이다.
이들은 대체로 스트레스 해소 및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평소 가보지 못했던 유럽이나 미국이나 한국과 어느 정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다시 말하지만 목적은 ‘본인만의 경험을 쌓기 위해’. 그리고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자, 이제 그럼 묻겠다.
“이제 뭐 할 건데? 뭘로 돈 벌건데?”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생각하다 대부분 이렇게 말하겠지.
“이제 찬찬히 생각해 보지 뭐”
앞서 본인이 갔다 온 그 해외여행 자체도 모두 쓸모없게 만드는 답변이다. 대개 이들은 과거 전 직장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갈 확률이 0%에 수렴하며, 어떤 일을 하든 과거보다 돈을 잘 벌 확률이 희박하다.
현실 감각 없이 모아둔 돈만 유럽여행으로 날리고 온 꼴이다. 이제 이들은 본인 삶에 대한 적당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본인의 삶을 이렇게 만든 책임을 돌릴 그럴싸한 대상을 찾는다. 본인이 백수인 게 본인 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만 당장 배고파도 마음은 편하거든. 일단 사회 탓부터 한다. 사회가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아서, 본인은 능력이 있는데 경기가 어려워서, 한국사회는 경쟁이 너무 심해서, 뭐 이런 식이다.
여행이 경험이 되기 위해 무조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앞으로의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근데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
유럽 가서 유명 유적지보고, 남들이 가봤던 곳 발도장 찍어보고, 문화유산 보고 와서 시야 넓히고 견문 넓혔다고? 그건 지식습득이라 미래에 도움이 되니 이건 경험이라고? 아니다. 전제조건이 있다. 결국, 그 견문 넓힌 게 본인 미래에 결과론적 관점에서 결실을 맺고난 뒤에 그게 추억에서 경험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 친한 동생 얘기를 하겠다. 이 친구는일 년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 50개국을 넘게 일 년간 여행하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돈이 없어 밥벌이를 해야 하니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면접을 볼 때 세계여행이라는 걸로 본인이 느꼈던 걸 본인의 색깔로 조리 있게 대답했고 타 지원자들이 절대 겪어보지 못한 걸로 차별점을 만든 답변을 만들었다. 그는 결국 최종면접에 합격해 현재 본인과 맞는 곳에서 본인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자, 이건세계여행이 본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경우에 한해서 우리는 그 세계여행을 ‘경험’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맞다. 시야 넓히고 견문 넓히는 거 당연히 좋다. 그거 넓히려고 우리가 여행 가고, 책도 읽고, 어른들의 조언도 얻고, 영화도 보고, 문화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하는 거다. 근데 그건 그냥 ‘시야 넓힌 추억’이라고 밖에 정의 내릴 수밖에 없다. 행복했으면 됐다고? 돈 쓰면 누구나 행복하다. 돈 쓰는데 안행복한 사람 없다. 내가 영화 보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데 영화관 내 돈 써서 가겠나? 당연히 본인이 좋아하는데 돈을 투자한다. 옷을 사도 내 마음에 드는 옷만 산다. 100만 원을 누가 공짜로 주고 그걸로 해외에서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한다 치자. 본인이 좋아하는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맛있는 음식 먹고, 사고 싶은 옷 사고, 액티비티 해봐라. 당연히 100% ‘누구나’ 행복하다. 시야와 견문을 넓히는 데에 초점을 둔다면 왜 그럼 해외여행에만 이유를 붙이고, 국내여행엔 그런 말을 안 하는가. 국내여행도 안 가본 곳에서 안 먹어본 음식 먹으면 충분히 기분이 색다르고 행복할걸? 장담한다. 나는 아직 광주광역시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거기서 유명한 전라도 한식반상을 먹으면 분명 멕시코에서 처음 먹었던 타코,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먹었던 치즈스테이크보다 훨씬 더 맛있을 것 같다. 단지 우리는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을 본인도 가려는데 그럴싸한 이유를 붙이고 싶었던 건 아닌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여행이 안 좋은 게 아니다. 물론 사람이 살면서 겪는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평가 매겼을 때 여행은 인간의 삶에 양질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확실하다. 어른들도 20대에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니라고 한다.
근데 왜 해외여행에 의미 붙여 매년 나가는 사람들을 욕하냐고? 심지어 본인 돈 주고 가겠다는데? 단지 과한 의미부여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맨날천날 친구들끼리 밤마다 모여 술 마시고 클럽 다니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러는 것이다. 단지 내 미래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해도 아름다운 추억을 쌓기 위해서 여행을 간다면 오케이. 대신 추억을 쌓아도 제대로 쌓는 것이 중요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유명한 관광지에서 사진 500장 찍어서 잘 나오는 거 한 장 건져 인스타그램에 올려 주변인들 좋아요와 댓글에 희열 느끼지 말고. 진짜 본인이 보면서 본인만의 그 관광지가 준 고유한 감동과 감정을 몸소 느끼란 거다. 예를 들어 그랜드캐니언을 봤다 치자. ‘광활하다, 멋지다‘ 하고 사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끝낼게 아니라, 이 작은 소국에서 자란 내가 앞선 끔찍할 만큼 거대한 광경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한번 돌아볼 수도 있는 것처럼 본인만의 생각을 계속 만들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온전히 느끼면서. 그게 비행기값이라도 살리는 격이다.
내가 제일 이해 안 가는 부류가 있다. 바로 콘서트에서 핸드폰으로 영상 찍는 사람들. 장담컨대 콘서트 끝나도 그 영상 안 찾아본다. 내 눈앞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아티스트를 직접 담지 않고 핸드폰 액정으로 담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이 있나. 그 자리에서 그냥 본인이 온전히 느끼고 와야 얻는 게 훨씬 많다.
자, 그렇다면 여행을 함에 있어 진짜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참된 경험이 될 여행은 어떤 여행일까. 오로지 내가 온전히 느낀 경험으로 보자면 이렇다. 단, 이 경험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관과 삶을 대하는 방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참고만 하면 좋겠다.
먼저, 혼자 가는 여행이다. 30개국 가까이 되는 여행국중 반 이상을 혼자 다녔다. 혼자 다니면 어떤 점이 좋을까. 일단 동행자를 배려하는 데 힘을 쏟지 않아도 되며,그 어떤 갈등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쓸 수 있고, 일정에 맞춘 게 아니라 내가 원했던 데 더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물며 길거리에 산들바람에 휘날리는 꽃이라도 내가 좋아하면 오랫동안 남 눈치 안 보고 여유롭게 느끼고 올 수 있다. 혼자 여행하면서 이 장점 모든 게 파생된다. 다음은 생각이다. 혼자 여행하면 사색을 정말 많이 한다. 사람 한 명을 봐도 관찰을 깊게 하면서 ‘아, 저렇게도 돈을 벌 수 있구나’ 라던지, ’아, 저분은 헤어스타일이 독특하네‘ 라던지, 타인을 관찰하며 그 타인을 내 삶에 집약적으로 넣을 수 있다. 계속 생각을 거듭하고, 내 삶에 적용시키고 그것을 기록함으로써 미래에 대해 연구할 수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본인의 꿈을 찾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이유도 그것이다. 혼자 다니면서, 혼자 기록하는 여행. 이건 본인의 미래에 분명한 이점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늘 카페에 갔을 때 여행배낭을 메고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을 보면 계속 눈길을 주게 된다. 왜냐. 나도 여행한 나라 중 반 이상을 혼자다녔기에 기록하고 글쓰는 게 그때 생활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명확한 목적성이 있는 여행이다. 가령, 베트남에서 선크림을 팔고 싶다고 하자. 그럼 베트남에 직접 가서 시장상황이 어떤지 내 눈으로 봐야 한다. 사람들이 선크림에 익숙한지, 한국 선크림이 입점된 가게는 어디인지, 경쟁사는 가격이 얼만지, 현지 상황을 알아야 본인이 기획한 선크림을 잘 팔 수 있다. 이는 베트남에 본인이 선크림을 팔겠다는 명확한 목적성을 띠고 있다. 이런 여행은 실제로 경험이 되며 본인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여행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떠나는 것이 무지성 여행보다 돈과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잘 쓰고 오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