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어떻게 변질되는가
요즘 유독 많이 보이는 글이 있다. 이는 특정 커뮤니티에서 나와 타고 타고 퍼진 글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라면 지인이 볼 수 있어 누군지 아는데 보통 이런 글은 커뮤니티라 익명이라 알 수 없는 데다, 문제는 불특정다수에게 전염병처럼 번지는 데에 있다.
현재 많은 이들이 이런 동일한 성격의 글을 생산하고 있는데, 안타까워 더 많은 이들이 이런 글을 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자 글을 쓴다.
“연봉 9천만 원인데, 소나타 자차, 서울 전세, 모은 돈
1억, 저 잘 살고 있는 거 맞겠죠?”
“키 168, 대기업(탑 10), 서울 중상위권 대학 졸업,
나이 30, 저 결혼시장에서 어느 정도인가요?”
“나이 32살이면 얼마쯤 모아야 적당해? 2억 있는데 적당할까? 다들 평균 얼마 있어?”
“35살인데 중소기업 다녀서 1억밖에 못 모았어요. 제 인생 어떤가요?”
와 같은 글이다. 너무 많아서 더 적기도 힘들다. 실제로해당 커뮤니티와 요즘 많이 한다는 SNS를 들어가 봤다.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보니 대기업 평균 연봉 1위부터 30위까지 줄 세워 퍼 나르고, 실수령액을 자랑하고, 주택매매 등기 사진, 포르쉐, 포토샵을 떡칠한 비키니 사진이 난무했다. 현생이 아닌 음지에서나마 인정받고 싶은 인간본능에 충실한 곳이었다. 실제 사회생활이나 친구를 만났을 때에는 절대 이런 말 못 한다. 본인도 이 말을 하면 주변 모두가 본인을 멀리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거든. 근데도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고, 본인이 잘 살고 있다는 걸 확인받고자 하는 이 본능이 그 커뮤니티나 특정 SNS에 몇백만 사용자를 유입시킨 것이다. 이를 만든 사람은 사람의 음지 속에 숨어있는 본능을 아주 잘 캐치하고 활용했다. 댓글은 더 가관이다. 아주 잘살고 있고, 완벽하고, 대단하고, 멋있고, 어떻게그걸 이뤘는지 방법을 묻는 것부터 가지각색이다. 악플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만약 그 댓글에,
“아니요, 연봉 9천만 원은 아직 한참 부족하고요. 더 열심히 노력하셔야 하고, 하루빨리 자가를 마련하셔야하고, 결혼시장에서는 나이가 많으셔서 탈락입니다.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으니 더 열심히 사세요!”
라고 말했다 치자. 그 순간 글쓴이는 작게는 내 댓글에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어떻게 사냐”부터 시작해, 크게는내 신상을 캐내어 고발을 하든 뭐든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조치를 취할 것이다.
자, 그럼 실제로는 어떤가? 실제로도 당연히 대단한 게맞다. 그럼 일반인 기준에서 그 글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를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열등감과 좌절감이 자리할 것이다. 그 글은 일파만파 퍼져 계속 이 열등감도 아무런 죄 없는 일반인들에게 전파된다. 본인이 일상생활에서는 드러내지 못하는 그 인정받고 싶고 잘 살고 있는 걸 확인받고 싶은 욕구가 타인에게 결국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자랑을 할 거면 그냥 자랑을 하면 된다. 본인이 일군 노력으로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목표한 회사에 입사했다거나, 반에서 1등을 했다거나 어떤 큰 성취를 이뤘으면그 자체로 솔직히 알려 인정을 받으면 된다. 근데 이렇게 꼬아서 말하는 커뮤니티 및 특정 SNS의 사람들은 본인을 확인하려는 심리를 넘어 타인의 허락이나 승인을 바란다. 많은 사용자들이 마치 본인의 직장상사처럼,
“너는 너무 잘 살고 있으니까 내가 넌 인정해 줄게”
와 같은 어조까지 바라는 것이다. 아주 그냥 공증이라도 해줘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다.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피해를 줘서는 안 되며 바르게 살아라는 옛 조상의 지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본인이 아무리 잘나도 겸손이 곁들여져 있어야만이 마지막 인품이 완성된다는 식으로 교육받았다.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다. 이 조상의 덕을 역행하는삶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써 이 문화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인다.
자 그럼 어떻게 움직이느냐. 겸손을 핑계로 그 안에 자랑을 섞는 것이다. 아주 교묘하고 음침하게 본인을 낮추며 겉으론 예의를 갖춰 (대단하신 그쪽이) 저를 한번 평가해 주시겠어요? 이런 식이다. 그래서 위의 예시같은 글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마인드가 결국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더 치열한 경쟁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에 올바른 시민의식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생각한다. 사실 사회를 거론할 것도 없이 이런 글을 생산하는 사람들 개개인은 앞으로 더 불행할 것이다. 100% 장담한다. 끝을 모르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렇게 살면 만족이 안되어 계속 남에게 확인하려 한다. 본인이 본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심지어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이런 커뮤니티가 더 활성화되고 가입자가 증가하면 더이상 이 사회는 현실의 중요성을 망각한다. 허구의 세계로 빠져버리고 그것이 진실인 줄 알고 믿고 산다. 이를 ‘리플리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리플리를 안고 있는 개인은 욕구의 불만족과 열등감으로 끝나지않는 데 있다. 그것으로 타인에게 심각한 정신적, 금전적 위해를 끼칠 수 있다.
세뇌가 이렇게 무섭다. 북한에서는 태어나자마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를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사진만 보고도 눈물을 흘린다. 어릴 적부터 받은 세뇌 때문이다. 똑같다. 인터넷이라는 커뮤니티라는 허구 속 세계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진짠 줄 알고, 거기서 인정을 받으려 하면 현실 세계는 점점 더 꼬인다. 사실 밖에서 일을 하고 일과가 끝나면 집에서 안정을 찾듯, 어릴 적부터 집 안에서 자존감을 만들고,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야 하는데 집에서 더 물질적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 사회자체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타인에 대한 적당한 무심함과 자아존중감. 이 두 가지가 결국 본인의 우주를 만든다. 그걸 어릴 적부터 가족이나 본인이 처한 환경에서 배워야 하는데 이 환경이 허구세계라는 다른 곳에 기대게 만드는 게 문제다.
남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은 조금만 변질되면 타인을 헤치는 무기가 된다. 겸손을 가장한 그 작은 손가락 몇 개 움직인 그 행동 하나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안타깝나. 이게 우리가 커뮤니티나 SNS에 빠져사는 사람들을 걸러야 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
현생을 살자. 현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