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걸 믿어라
좌안과 우안이 시력이 1.0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일상생활하는데 지장이 없기에 사실 안경을 쓸 이유가 없다. 근데 내가 유일하게 수집하는 게 있다면 그건 안경이다.
나이가 드니, 시계나 액세서리, 옷 등 스스로를 치장하는 데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잘 보일 사람도 없을뿐더러 겉으로 꾸미는 것보다 내면을 꾸미는데 더 집중하는 것이 삶에 있어 그게 남는 장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는 최소한만 하면 된다. 겉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단정하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 눈썹문신이나, 오랫동안 본인의 원래 몸무게를 3년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운동, 그리고 선크림. 그게 끝이다. 심지어 이런 기본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연애를 원하거나 결혼적령기가 된 사람들은 참고하면 좋겠다.이것만 하고 자기 할 일만 해도 사실 50%는 앞서가는 게임이다.
자, 그런데 앞서 말했듯, 나는 안경은 매년 최소 하나씩 산다. 물론 난시가 있어 난시교정용, 1.0을 1.5로 시력을 조금 더 높이는 데 안경이 도움을 주는 건 맞다. 누군가는 안경을 모으니, 패션용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한다. 안경이 주는 본연의 가치나, 패션용 이 둘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안경과 관련된 나만의 생각이 있다. 바로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싶다’는 신념이다. 그러려면 일단 나 스스로가 잘 보여야 한다. 그래서 종류별로 안경을 모은다.
오늘 안경점에 시력검사를 받고 안경을 맞추고 있는데안경사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잘 보이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교정하러 안경원 자주 오세요”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들도 과연 나랑 같은 마음인 걸까. 렌즈를 선택하는 데에도 종류가 20개가 넘는다. 가장 비싼 건 50만 원까지 있다. 렌즈 하나에 50만 원이다. 일본 금자안경, 백산안경이나, 크롬하츠나, 린드버그, 모스콧 이런 중고가 안경들도 테가 50만 원 정도 할 텐데 이건 렌즈만 50만 원이다. 이 렌즈를 만드는 회사가 아직 망하지 않고 내게 구매를 권유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수요가 있다는 반증일 테다. 즉, 보이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어쨌거나 꽤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내가 아는 지인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 늙으면서 조금씩 시력이 안 좋아지는 것(노안)이나 잘못된 일상 속 습관으로 시력이 낮아진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흐릿하게 보고 싶은 것도 살다 보면 있기 마련이니. 예를 들어 바퀴벌레의 왼쪽 다리라던가, 사고를 당한 징그러운 어떤 무언가라던가, 안 본 눈을 사고 싶을 정도로 낯 뜨거운 장면, 부끄러운 장면을 봤다던가. 얼마나 낭만적인가. 근데 오늘은 이 낭만과는 거리를 두고 다소 현실적인 접근으로 얘기해보려 한다. 사실, 낭만이든 현실이든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고 그 선택으로 행복하면 그뿐이다.
현대인은 수많은 정보 속에 지배당한다. 정보성 글처럼 삶에 객관적으로 도움을 주는 자료나 데이터 등 지식함양을 위한 건 대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는 것. 근데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냐. 바로 관계다. 관계에서 수많은 말이 오간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어떻게든 이럴 수밖에 없다.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의 본능이 그렇거든.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도 본인이 타인보다 우월감을 느끼는 데 안도와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저울질하며 정보싸움 하는 거다. 그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앞서 말한 지식함양을 목적으로 본인이 책을 더 많이 읽고,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면 사회는 이상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가 된다. 근데 작게는 친구끼리 싸우고, 조직에서 누군 좌천당하고 누군 승진해서 질투하고,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나 사람을 죽이고, 분열이 일어나고 이 지구촌에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게 사람 간의 ‘말’에서 결국 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가십이라고 한다.
공중에 떠다니는 게 우리 삶에는 너무 많다. 곤충채집이라 생각하면 된다. 어릴 적 곤충채집을 가면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 그걸 가지고 놀다가 보내주곤 했다. 그 하늘 위에 있는 모든 잠자리 다 잡을 필요가 없었다. 말도, 정보도 다 똑같다. 공중에 떠다니는 이 정보들을 다알 필요도 없고, 담을 필요도 없다. 본인에게 필요한 정보만 선별하는 능력을 우린 길러야 한다. 결국 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 학교에서 공부하고, 대학 4년 또 공부하고, 취업공부하고 하는 것이다. 반에서 공부 1등 하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잘 받는 것보다 사실 이게 훨씬 더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긴다. 그때 반에서 1, 2등 하는 내 친구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뭐 하면서 살고 있을 것 같은가. 다 성공해서 의사, 판사, 변호사 할 것 같나? 물론 그런 친구도 있지만 실패해서 허우적대고 아직 취업 못한 이들도 많다. 결국 ’본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선별하는가‘ 이 능력만이 우리 앞으로의 인생을 사실 결정하는 셈이다. 이 정보들을 선별을 못하고 하늘에 있는 모든 잠자리를 다 안 잡아서 불안해하고, 뒤쳐진다고 울고불고하니까 서로 간의 오해와 왜곡을 사는 것이다. 오해와 왜곡은 한번 되면 그 간극은 불어나면 불어났지 좁히긴 힘들다. 좁히려 해도 이전 친해진 노력의 두 배 세배를 쏟아야 한다. 왜 이런오해와 왜곡이 발생하느냐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다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정보가 모이는 곳엔 거짓은 언제나 양산되는 법.
양치기 소년 봐라. 아주 오랜 고전 속에서도 그랬다. 그양치기 소년의 심리는 본인이 아니기에 유추정도 할 수 있겠다. 그건 어그로를 끌어 타인의 관심에 메마른 사람일 수도 있고, 현대판 인스타그램처럼 본인만 정보를 알고 있고 본인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과시용도 있겠다. 혹은 ‘나는 이런 능력까지 있는 사람이야’라고 상대가 얕잡아볼까 봐 두려워 상처받지 않는 수단일 수도 있다. 이유는 만들면 그뿐이다. 수백 개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안경을 산다. 왜 이렇게 안경이 많냐고 친구들이 물어본다. 더 잘 보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산다. 그렇게 말하면 다들 미친놈이라고 한다. 근데 진짜다. 더 잘 보면 그 어떤 가십과, 그 어떤 나를 억누르고 까내리려는 악성소문에 휘둘리지 않는다. 아무리 못되고 나쁜 사람이 있더라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한다. 그게 관계에서도, 내 앞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니 좋다. 매사에 선입견이 없고, 미래에 큰 실망과 기대도 없다.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렇게 내 눈에만 보이는 것만 믿으면 된다.
그런 떠다니는 말들에, 가십에 사람들이 휘둘리는 원초적인 이유는 하나다. 본인이 잘 되려는 욕망 때문이다. ‘누가 뭘 했다더라’, ‘뭘 하면 좋다더라’, ‘걔가 너 욕 겁나 하던데?’ ’쟤보다 돈 많이 벌어야지‘ ’회사의 더 높은 자리까지 꼭 가야지‘,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잘 되면 좋지. 성장하면 좋지. 회사 입사원서를 넣을 때에도 마지막에 늘 뭐라고 적나. 여기서 더 성장하는 모습, 나아지는 모습 보여주겠다고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말하지 않나. 근데 잘 봐라. 성장? 성장 어디까지 할 건데. 본인이 일론머스크처럼 스페이스 X 개발해서 우주라도 갈 수 있나. 잡스처럼 새로운 아이티의 혁신 모델을 발명할 수 있나. 대통령이 될 수 있나. 그냥 오늘 맛있는 거 먹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푹 잘 곳이 있는 것. 그게 사실 이 글을 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행복이다. 이 행복을 찾아서 우리는 정말 기본적인 코어에 가치를 쏟아야 한다. 그냥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고 잘하고, 후회 없이 쏟아부으면 된다.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취미든. 그렇게만 해도 인생 진짜 잘 살고 있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른 거 신경 써봤자 시간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