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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Oct 18. 2024

이 세상 편한 직업은 뭘까?

돈을 버는 건 다 어렵고 힘들다

후쿠오카를 여행 중, 한 친구를 만났다. 이게 홀로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묘미라 하겠다. 포장마차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바로 옆에 앉았다. 그도 혼자여행온 듯 보였다. 같은 메뉴를 주문해 우연히 얘길 시작했는데 이 대화에서 느낀 단상이 요즘 내 머릿속을 맴돈다.

이 친구는 29살인데 회사를 한 번도 다닌 적 없다. 주변에 회사원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한다. 매일 월화수목금 아침 9시에 출근해 6시까지 일하는 아니,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 직장인이 대단하다며 본인은 절대 그렇게 못할 것이라 한다. 본인은 그럼 어디서 뭘 하냐. 전라도 남원에서 혼자 토마토 농사를 짓는다. 관리는 혼자 하고 몇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인이 본인밖에 없기 때문에 누군가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한다. 그만큼 사람이 그립단다. 젊은 농부로서 회사원보다도 돈을 훨씬 많이 벌고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부러운 삶을 산다.

요즘은 폰으로 농사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에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근데 딱 하나.사람을 만나고 싶단다. 남원에는 여자도 없고, 그 흔한 친구들도 다 서울로 가버려 하루에 한마디도 안 한 적도 있다. 오죽하면 어느 날 보험광고전화나, 통신사 광고전화가 오면 일부러 대화하고 싶어 30분씩 통화한다고 한다. 외로움이란, 이 세상 가장 끔찍한 감정임을 공감하면서도, 인생이 늘 그렇듯 직업선택에 있어서도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완벽한 직업은 없다는 걸 인정하며 그렇게 서로를 위로했다.


우연한 여행길에서 내가 그 포장마차 자리에 앉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에 그가 그 거릴 거닐고 있지 않았더라면 우린 평생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불특정다수 중 한 명을 만나는 데에도 돈을 잘 벌든 안 벌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안 높든을 다 차치하고각자만의 고충은 늘 상존한다. 다른 나라를 혼자 또 여행해도 앞으로 만날 누군가는 연애나 인간관계에 고충이 있을 수도 있고, 가정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직업선택에 있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혹시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건 본인이 그렇게 보고 있는 것뿐이다. 개개인의 속을 들여다보면 늘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하나씩은 있다. 이 문제 중에 유독 요즘 많이 들리는 것이 직업적 선택에 의한 결과로써 나타나는 고민이다. 그는 농사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전라도 남원이라는 곳에 있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며, 연애에서도 문제를 앓고 있다. 오늘 전화 온 내친구도 강원도로 발령이 나서 퇴근 후 할 일이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와이프도 오늘 새로 이직한 직장의 팀장님이 너무 좋으신 분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현대인은 이런 크고 작은 고민들이 먹고 살 생계와 직관된 ‘직업’에서 오는 경우가 흔하다. 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냥 내 마음 같지 않아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한 조직에서 직장 상사에게 혼나서 힘들고, 일이 어려워서 힘들고, 출퇴근 시간이 멀어서 힘들고. 근데 이 모든 직업적 고민은 끊길 수 없는숙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생계를 찾는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문제는 또 발생한다. 신의 직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회사를 안 다닌다. 그냥 먹고 놀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가 갖춰져야 살아갈 수 있다. 집이 있고 음식과 물을 먹어야 계속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결국 그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은 일단 돈을 벌어야만 가능하다는 거다. 음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으니.

이처럼 ‘돈을 버는 직업‘은 원래 다 극한 직업이다. 연봉이 적다고 할 것도 없고, 연봉 많은데 일이 많다고 투덜댈 것도 없다. 그냥 다 각자의 감당가능한 아픔과 대가만 있을 뿐이다. 연봉이 적으면 그만큼 그 책임과 대가는 높은 확률로 적을 것이고, 연봉이 높다 즉, 보상이많다면 그 책임과 대가가 큰 것뿐이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프리터족이 왜 이렇게 급증할까를 보면 답이 나온다. 돈보다 행복을 그들은 선택하는 것뿐이다.

숙소에 돌아가면서 내 뇌리를 스친 가장 선명했던 깨달음은 결국 이 모든 좌절과 열등감은 결국 비교에서 온다는 것. 누군가는 월 100만 원만 벌어도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500만 원을 벌어도 불행한 누군가가 있다. 1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지금 행복한 대신, 결혼이나 연애, 부동산을 매수하는 데 있어 미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본인도 안다. 근데 행복해하는 건 용기 있는 본인만의 선택을 한 것뿐이다. 그냥 그 선택에 대한 각자의 아픔을 이겨내면서 그렇게 우린 더 깨닫고 나이 들어 가는 것이고 이 모든 것도 사실 본인의 책임에서 온 것이다. 본인이 ‘감당가능하도록’ 타인에게 피해 안 주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뿐이다. 일본에서 만난 그 친구도 올해는 토마토 농사가 풍년이라서 돈을 많이 벌었단다. 근데 여자친구가 없어서 너무 외롭다고 불행하다고 하면, 그건 결국 그 농사를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과 대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본인은 어떻게든 농사를 지었을 것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런 말들은 그냥 투정일 뿐인 것이다.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살고, 돈이 많으면 강남, 서초, 용산에 살면 된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에 비해 불행한 게 아니다. 분명 본인이 부자 대비 행복하게 사는 본인만의 경쟁력이 분명 존재할 거라 믿는다. ‘시간’이겠지. 왜? 돈을 벌려면 그 시간에 하기싫은 일을 해야 하니까.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닌 회사 혹은 소비자가 원하는 걸 만들고 팔아야 하니까 거기에 시간을 쏟으니 당연하다. 본인이 돈이 많은 세그먼트에 가고 싶다면 또 그걸 선택하면 되는 거고. 지금의 결과는 모두 본인의 선택에서 온 책임이다. 지금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직업은 결국 본인의 이익의 최선으로 짜여 있다는 것.


왜 와이프가 이직을 했을까? 사람들이 이직을 하는 이유는 명징하다. 돈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거다. 계속 더 높은 회사, 복지와 연봉 조건이 더 좋은 회사를 쫓는것도 더 여유로운 삶을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예를 들어보자. 홍명보감독이 울산 HD감독을 고수한다고 했다가 왜 말을 번복하고 국가대표 감독으로 갔을까? 난 원래 울산 사람이기 때문에 울산 팬들이 지금홍명보감독을 어느 정도로 혐오하는지 안다. 한 사람을 이 정도로 싫어할 수 있는 게 가능한지 의심할 정도다. 왜 그렇게 욕을 먹고 있을까? 결국은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의 이익을 찾아간 거다. 국가대표 감독을 하면 울산감독보다 돈이든, 뭐든 본인이 생각하는 더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결국 거기로 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관계의 마찰은 결국 이 본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몇십 년간 공부를 하면서 그 인간의 본성을 숨기려 사회화되는 공부를 한 것인지 모른다. 남이 잘되면 축하해 주면서 바로 뒤돌아서 표정 굳는 게 원래 인간 본성이다. 홍명보감독 지금 또 축구 이기고 있으니 그렇게 욕했던 사람들 결국 또 아무 말 못 하지 않나. 왜냐. 욕할 근거가 없거든. 이 마찰은 쉽게 생기고 휘발성도 강하다. 즉, 크게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남원에서 농사를 하든,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든, 언제나 사람은 본인 이익을 먼저 생각하도록 되어 있으니 이를 인정하고 현재가 본인선택의 최선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게 정답이라 여긴다. 편한 직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투정은 또 다른 투정만 낳을 뿐이며 최선의 선택에 1도 도움 안된다. 투정은 투정 그 자체로 그 순간 잊어버리자. 그리고 악한 본성을 숨기고 본인이 선택한 이 최선을 타인에게도 더 좋은 가치로전달해 사회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게 결국 직업을 대하는 이상적인 마음가짐이고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는 길 아닐까.

후쿠오카, 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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