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보다 기대했던 라멘집은 국물이 짜다. 모두가 맛있다고 꼭 가보라고 했던 카페의 커피는 연하다. 추울 줄 알고 챙겨갔던 후드집업은 날씨가 더워 무용지물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 가는 길 할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 길을 잃은 듯 보인 내게 손짓하며 알려주는 종업원, 공원의 적당한 바람소리, 자그마한 책을 지하철에서 어떻게든 읽으려 애쓰는 청년까지. 이 모든 건 색다른 면에서 기대 없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어느 길을 택해서 어느 버스를 타고 이곳에 이렇게 두 발로 서있는지, 많고 많은 음식점을 제쳐두고 왜 저 라멘집을 택해서 먹고 왔는지, 그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왜 먹었는지 결국 이 모든 건 이 사회 속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들이다. 불완전한 내가 선택했으니 당연히 결과도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불완전하겠지. 뭘 대단한 걸 생각했다면 그건 욕망이고, 그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심보는 불행의 늪일 뿐. 한 가지 얻은 것이라고 한다면 가끔씩 색다르게 찾아오는 산들바람이나 정겨운 말 한마디 같은 행운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온전히 좋아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지 않을까 한다.
앞서 말했듯, 생각하고 미리 짜놨던 계획과 과정들에 ‘마침표’ 하나 찍고자 이렇게 왔는데, 그것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거나, 확인이 불가능하다거나,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서 예상치 않은행복한 순간을 또 맞이함으로써 그 자체로 배우는 게 있다. 그냥 삶은 이런 것이다.
내 MBTI가 P라서 즉흥적으로 살든, I라서 플랜 A, B, C, D까지 계획을 세우든 그건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계획대로 일정을 다 소화한 뿌듯한 여행보다 저 중요한 것은 계획에 없던 어떤 소중한 순간이 닥쳤을 때 이걸 어떻게 더 충만하게 안을 수 있나. 그게 여행에서, 인생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결국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더라도 그 상대는 순간의 기쁨을 본인에게 표현하겠지만 결국느껴야 하는 건 본인 혼자다. 어디까지나 여행에서, 인생에서 내게 닥칠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혼자 헤쳐나가야 할 작업임을 느낀다. 편법은 또 다른 편법을 낳고,꼬리가 길어져 잡히기 마련. 늘, 내가 나를 증명해가야만 한다. 그 증명은 순간의 기쁨을 충만하게 받아들일 마음과,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곧은 결단, 그리고 계속나아가는 노력이 만든다. 온 지 이틀도 안되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본인을 증명하는 건 어렵다. 근데 그걸 지속적으로 계속 증명해 가는 건 더 어렵다. 세상만사 안 이런 일이 뭐가 있을까. 원하는 학교에 입학해도, 또다시 원하는 회사에 입사해야만 사회가 알아준다. 가령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방구석 백수나 하고 있으면, “뭘 위해서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그렇게 대단한 성취를 이뤘는지” 사람들이 반문할 것이다. 똑같은 거다. 계속인생의 나이테 수준에 맞는 사회의 역할을 해나감으로써 우리는 우리 각자를 계속 증명해가야 한다. 오죽하면 타투하나 만 해도 그렇다. 계속 본인이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만나서 얘기 한번 나누면 생각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계속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타투를 굳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여기 일본은 타투를 한사람은 온천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증명하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는 분야는 예체능계열이다. 한번 좋은 노래를 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고 하자. 그게 1집이라고 하자. 평생 그 1집만 대중은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 지나면 잊히기에 다시 새롭게 본인을 증명해가야 한다.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계속 좋은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미술,글, 노래, 운동선수 모든 게 그렇다. 손흥민이 한 경기에 골에, 어시스트에 굉장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고 그다음경기에 만약 한골도 못 넣고 하나의 어시도 없이 전반에 교체당했다. 대중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그냥 이젠 퇴물이라 생각한다. 결국, 본인을 계속 증명해 가는데 답은 앞서 말한 그 세 가지라 생각한다.
이 세상엔 본인을 계속 증명해 가는 대단한 사람이 많다. 요즘 큰 히트를 친 ‘흑백요리사’만 해도 그렇다. 본인의 분야에 그렇게 탁월한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이 TV에만 100명이다. 그럼 한국에 몇 명이 있단 말인가. 각 분야의 탑들만 뽑아도 이런데 상위 10% 아니, 30%를 매겨본다면 몇만 평 운동장이 가득 찰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 스스로는 비루해지고, 작은 존재라 여겨질 때가 있다. 멘토가 되어 누군가를 도와줄 때나, 고민상담을 해 줄 때나, 출근해 일을 할 때나, 하물며 글을 쓸 때나, ‘내가 이걸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에 대한 의구심은 늘 피할 수 없는 숙제 같다.
한동안 그걸로 골앓이를 했는데 이젠 내가 누군가에게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내게 놓인 걸 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신경안 쓰도록 한다. 아마 그 재능은 없을 거다. 그냥 나는 오늘 당장 글을 하나 쓰고잘 수 있는지.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오늘
’원래‘ 내가 해 왔던걸 계속해 나가는 거뿐이다. 그게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본인을 증명해 가는 방법 중 계속 노력하는 것의 부연설명이 되겠다. 지금 내가 이렇게 무언가 하고 싶은 체력이 받쳐줄 때 할 수 있다는 것자체가 얼마나 큰 복이고, 행복한 시간들인가.
이 절박함과 간절함을 잃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