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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Sep 10. 2024

현대판 앵무새 죽이기 ‘마녀사냥’

돈과 이익 앞에 무너지는 이들에게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을 알 것이다.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지만, 오늘은 한 사람을 매장시켜버리는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춰 얘기해볼까 한다.


권리를 악용해 무기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대개 이는 한 조직에서 개인에 의해 발현된다. 인간의 본능 아니, 특히 한국인의 냄비근성처럼 군중심리로 번져 순식간에 그 대상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혹은 대상이 없는 경우는 목적성 없는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개인의 존재성은 갈수록 이렇게 약해진다. 이유는 뻔하다. 한 개인이 존재성을 드러내면 모두가 나대지 말라고 바로 뭉개버리거든. 대한민국 사회가 이렇다. 남 잘되는 꼴 절대 못 보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이 소국에 사람은 X나 많으니까 어떻게든 본인만 살아남겠다는 심리다. 이걸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냥 총대매고 얘기한다. 잃을게 많아도 그냥 얘기한다.


성추문에 휩싸인 연예인들만 봐도 그렇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음에도 성희롱이나 성범죄로 신고당한다거나, 고의적으로 한쪽으로 편향되어 불합리하다고 해석한다거나. 개인의 일천한 경험이 만든 색안경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근거 없는 잣대를 들이대면 죄 없는 이들은 한없이 무너져 내린다. 즉,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재기불가능한 피해를 받는 것이다.

내 친구는 군인이다. 훈련이 끝나고 같은 동기에게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는 이걸로 성희롱으로신고를 당해 오지로 발령을 받았다. 호의 아니, 일상생활에 아주 흔하게 있을법한 일 하나로 인생 자체를 망친 것이다. 근데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한다.


“아니, 양쪽 말 다 들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양쪽 다 사실이 같다면 어떻게 해석하실 건가요. 이는 명백한 마녀 사냥이다. 숭고한 한 사람을 한순간에 인간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현대인은 집단을 철저히 분리해 상대집단을 헐뜯어 본인이 속한 집단을 올려치기한다. 그리고 온갖 이득은 혼자 취한다.

나는 죽어도 편 가르기는 하고 싶지 않다. 이런 걸로 어그로 끌어서 조회수 몇백만 나오는 유튜버도 많이 알지만 솔직히 전혀 부럽지 않다. 내 신념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얘기하고 싶은 건 뭐든 편을 가른다는것 자체가 한 사람이 태어나 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미숙한 짓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자, 그럼 본인이 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안 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마녀사냥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게 길이다. 애초에 본인이 가진 출생이나 환경을 무기삼지 않으며 그 어떤 악용 없이 매사에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하고 상대의 의도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못하나. 마녀사냥이든 편 가르기든 서로를 모른 채 각자의 망상만 방대해질 뿐이다. 나아지는 건 없다. 현실에 없는 그들만의 영화를 만들어 가지만 서로는 그 영화를 보지 못한다. 결국 그 영화는 새드앤딩으로 막을 내린다. 관계가 이런 것이다. 털끝 하나라도 불편한 게 있으면 사전에 얘기를 해서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


사람은 과거의 선택이 부끄럽고 형편없을 때 반성을 한다. 근데 그 형편없음을 그 순간 깨닫지 못하면 현재의 모습은 더욱 과격해진다. 자신의 흠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그 가치관은 평생 그렇게 굳어버린다. 본인의 세계가 가장 단단하며 본인이 쌓아온 잘못된 논리로 편향적인 정당화를 일삼는다. 평생 그렇게 산다.

이런 자의식과잉이 결국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약은 시간의 흐름뿐이다. 나이를 먹으며 더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 자, 그럼 이 약을 그들은 얼마나 더 먹어야 할까 10년? 20년?


사람들은 말한다. 끼리끼리 놀라고. 그러면 이런 일이 발생할 이유도 없다. 방구석백수나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이상 겪어봐야만 결국 다 보인다. 일 년에 하나씩 생기는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짐작하듯, 세월이 흐르며 삶의 깊이는 당연히 더 깊어지기 마련이고 각자 나이에 맞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근데 꼭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을 대하는 안목과 태도, 삶을 대하는 가치관이 깊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예외도 있다.

유행하는 영포티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포티란 ‘Young+ 나이 40(Forty)’을 줄인 말이다. 2030들의 유행을 다 따라 하며 본인은 신세대인척, 나이를 먹어도 그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착각에 빠져사는 이들이다. 근데 우리 모두는 안다. 40대 50대는 그냥 뭘 해도 그 나이란 것을. 그냥 ‘퇴물 아저씨’. 나이가 많은 걸 욕할게 아니라, 그 세월에 맞는 각자의 무리가 있고 각자의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결이 맞는 관계가 중요하다. 그 집단엔 당연히 마녀사냥도 나오지 않는다. 한 조직이 잘 어울리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여력도 없겠지. 조직에서는 서로 선을 지키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조건 수반되어야 한다. 사실 정치판이나 나라꼴도 지금 다 이렇다. 어떻게든 본인이나 본인이 속한 조직은 피해 안 보려 하고 본인의 관념을 관철시키기 바쁘다. 그리고는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자를 적대화하며 선동한다. 내편이 아니면 그냥 다 ‘죽일 놈’ 되는 것이다. 논리와 이성 이런 것 없다. 남을 깎아내리면서 나를 올려치기 하면 그만이거든.


자, 뭘 느꼈는가. 이렇게 작은 소국 대한민국에서 5천만이 넘는 인구가 산다. 어떤 조직이든 사회든 이득을 취하는 자는 분명 나오기 마련이고, 이를 악용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존재한다. 우린 이들의 시대착오적 오류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본인의 가치관을 명백히 하고, 그게 아니라면 물러설 줄도 알고, 선을 지킬 줄도 아는 중용. 어떻게 보면 이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의 작은 시작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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