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어떻게 살 것인가’
요즘 정국이 어수선해 글을 잠시 쉬었다. 정확히 쉬었다기보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표현하는 게 맞겠다. 탄핵 표결은 결국 부결됐고 나라는 더 어수선해졌다. 이번 일로 무조건적인 대통령의 착오와 무책임을 추궁하기보다 우리 국민이 서로 어떤 미래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식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미래에 대한 이상적 세계관이 합치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지금 순간을 피크아웃으로 기억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 겨우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데, 이번 사건으로 금세 내리막길을 걷는 피크아웃의 불길함이 나는 시기적으로 참 안타깝기만 하다.
국민 기업 삼성이 망해가고 여러 대기업들이 비상경영을 하는 이 와중에 지금은 싸움보다 균형 잡힌 경제성장과 국가주도산업 도약의 발판마련이 가장 시급할 때다. 이런 정치적 내전이 누가 맞고 틀리든 ‘시기적으로’지금 일어난 자체가 나는 너무 개탄스럽다.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하나둘 매각하고 있다. 대기업 임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일통보로 소리소문 없이 잘리고 있고, 이름 들어본 굴지의 대기업들이 거의 모두 비상경영체제다. 롯데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의 상징인 롯데타워를 담보로 내걸었고, CJ와 SK는 현금성자산을 늘리는 중이다. 롯데는 지라시가 도는 것도 사실무근이라 말하지만 거의 사실이라 단정지으면 된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겠나. 방귀를 자꾸뀌다 보면 똥을 싸게 된다.
과거 IMF가 터지기 직전에도 태영건설, 대우 등 대기업은 똑같은 대응만 반복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는 무조건 반복된다. 2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기업들의 뻔뻔함, 그걸 그대로 실어 나르는 언론, 또 속은국민들은 늘 어쨌거나 같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이러면 나머지는 어떻겠나. 모든 사업은 사슬처럼 유기적으로 엮여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있으면 현대계열사 말고도 그 협력업체인 1차 하청,2차 하청, 3차 하청, 4차 하청까지 있다. 거기에 딸린 가구는 수만 가구에 수백만 명 가까이 되겠지. 참고로 지금 예시는 ‘현대자동차’ 한 기업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1차는 2차에게 일감을 주고, 2차는 3차에게 일감을 주는 방식. 상위 하청에서 일감을 받아야 하기에 갈수록 임금과 복지는 적고, 근무환경은 열악한 시스템이다. 울산에서는 실제 현대자동차 1차 하청만 입사해도 집안의 경사다. 왜냐. 1차 하청은 전국회사규모기준 중견기업 수준정도이기 때문에 연봉이나, 복지, 안정성 등이 어느 정도 만족이 되거든. 근데 이 대기업들이 전부 무너진다고 생각해 보자. 그냥 다 끝나는 거다.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그냥 다 무너진다. IMF도 이렇게 터졌다.
일자리문제도 심각하다. 쉬는 청년이 역대 최대라고 한다. 매년 가장 추운 겨울을 갱신하고, 매년 가장 더운여름을 갱신하는 것처럼 이 또한 나는 놀랍지도 않다. 작년 이맘때 역대 최대인구가 쉰다고 하더니, 올해 또 역대 최대란다.
만 25세~에서 만 34세를 정부는 공식적으로 청년이라 규정하는데, 일주일에 2시간 이상만 일을 하는 사람도 생산가능인구 즉, 근로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통계를 매길 때 응답을 하지 않는 비율, 비자발적인지, 자발적 퇴산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이 모두를 어림잡아 합쳤을 때 그 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실제 ‘자소설닷컴’이나 ‘잡코리아’ 등 구직포털사이트의 채팅방에 가면 진짜 피 튀기는 경쟁을 직접 실감할 수 있다. 취업이 진짜 힘들다. 구직자가 자의든 타의든, 눈이 높든 안 높든, 그렇게 치면 회사도 눈이 높다. 취업이 안 힘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지금은 진짜 힘든 시기가 맞다. 그리고는 정부는 늘 원론적이고 뜬구름 잡는 대안만 제시한다. 마치 인터뷰 탈락문자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다음에 다시 뵙기를 희망한다’ 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관용적인 문장처럼. 세상이 이렇다. 모두가 다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자주보이는 관용적인 말이라고 하면 쉬는 청년을 다시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던가, 청년을 위한 구체적인 복지가 필요하다던가. 실제로 정책적인 노력을 해도, 청년 정책 다 쏟아내도 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고? 허점 투성이에 실효성이 없으니까. 청년정책 다 뽑아먹고 취업할 생각 없는 프리터족 널리고 널렸다. 일본 욕할게 아니다.
대학이라고 과연 다를까? 지방대학은 아예 폐교직전이다. 저출산과 수도권집중화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지방대학은 올해 70%가 본래의 정원을 못 채웠다. 학생이 안 오면 일반적으로 대학은 재정이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필요 없는 정책이나, 학과 통폐합은 당연한 수순. 교직원은 퇴직위로금을 지급하면서 자연스레 나가라 하고, 학생은 또 다른 가까운 지역에 입학 및 편입되겠지.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게 서울에만 집중된다. 행사나, 각종 대학생들을 위한 혜택도 서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 있는 곳에 가야 정책도 실효성이 있으니까. 근데 서울&경기라고 어디 다를까. 어제 일이 있어 아주대학교에 간 적이 있다. 눈대중만 해도 학생 3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대체로 몽골, 라오스, 베트남,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 학생들이다. 개발도상국에서 계속 학생들을 끌어와야만 학교가 재정적으로 최소한 유지가 된다는 거다. 아예 이제는 대학교에도 영업팀이 생겨야 할 정도.
이렇게 산업, 시장을 막론하고 어딜 가도 죽는소리밖에 없다. 사실 태어나고 단 한 번도 호황기라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린 적이 없던 건 사실이다. 매년 명절만 기다리는 내게 친척분들은 마치 ‘불경기’라는 답이 정해져 있듯 기계적인 변명과 함께 용돈을 조금 주신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앞서 말한 부분 외에도 모든 업계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대응과 함께국민들이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뒤쳐지는 반도체의 경쟁구도에서 기술력확보를 위한 주 52시간을 철폐한다던가, 소비진작의 실질적인 정책을 앞세우던가, 인재유출방지를 위해 인력구조개편 및 혜택을 늘리던가. 이런 것들이 지체될수록 사길 타국가의 기술 축적만 앞당기고 한국 국가경쟁력을따라잡는 시간을 더 우리가 나서서 당겨주는 꼴이다. 다른 국가에 자진해서 날개를 달아주는 꼴.
근데 정책변화는 사실 위에서 할 일이다. 우리 개개인이 함께 모여 촛불집회를 하지 않는 이상 힘으로 누를 수 없다. 대내외경제사정은 트럼프의 입에 달렸다. 트럼프 한마디면 캐나다 총리도 비행기 타고 날아온다. 전쟁은 그 당사자 두 국가가 해결할 일이다. 환율은 아무도 예측 못한다. 자,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나?
무언가 본인이 대단한 걸 하려고 안 해도 된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그 자체로 대단한 거다. 완벽한 삶은 그냥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 있는 삶이 원래 그냥 정상상태 즉, ‘디폴트’인 것이다. 내가 히키코모리처럼 방안에만 틀어박혀있지 않는 이상.
아니, 방안에만 틀여 박혀있어도 사실문제는 늘 발생한다. 이불이 안 개어져 있거나, 책상이 더럽거나, 방음이 안된다거나, 하물며 지우개 가루가 바닥에 많이 떨어졌다거나. 일어났는데 보일러나 전기장판이 고장 나춥다거나.
자, 밖을 나왔다치자. 온 세상이 문제다. 미세먼지 투성이고, 눈 와서 차 막히고, 배고프고, 춥고, 돈 없고, 핸드폰 배터리 없고. 그냥 인생은 이렇게 원래 다 문제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수용하면 된다. 예민하게 사는 사람들이 꼼꼼하거나 일의 효율이 높을 순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능력이 없으면 오히려 그건 무쓸모가 된다. 무조건 능력이 월등해야만 성립가능한 전제다. 스트레스는 더 높다. 그냥 다 받아들이면 편하다.
절약하는 사람? 좋지. 어떤 방법으로든 돈은 배신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하고 안정적인 방법이니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무지성소비? 돈 있는 사람이 그러면 오히려 내수경제활성화시키고 좋다. 각자의 삶은 그냥 그렇게 좋아하는 거 하면서 기분 좋게 흘러가겠지 생각하면 그뿐이다. 절약한 사람은 돈 모아서 좋고, 스트레스 많은 사람은 스트레스 풀어서 좋고. 내가 절약할 돈도 없다고, 스트레스 풀 여유 없다고 소외감 느끼지도 말고, 박탈감을 느끼지 말고, 저 사람이 나랑 삶을 대한 가치관이든, 정치적 성향이든 다르게 생각한다고 욕하지 말란 거다.
다 수용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줄여야 한다그냥,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나 보다!
얼마나 간단한가. 그게 가장 먼저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이다.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본인뿐 아니라 남에게도 안 좋은 에너지 그리고 해를 끼치는 거니까.
어느 커뮤니티에는 주식이나 코인 익절해서 돈을 많이번 것을 인증하지 못하게 한다. 손해 본 것만 올릴 수 있게 한다. 이 인증자체도 기가 차지만 그만큼 타 회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기 위한 일환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박탈감과 소외감 없이 행복을 일상화하면 된다. 일상에 행복이 없는 사람은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도, 벼락부자가 돼도,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그런 상황에도 크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원래 일상자체가 예민하고 불행한 사람이니까. 반대로, 위기에 봉착되면 타인보다 더 불안해하고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나만의 행복의 일상화. 지금 이 불확실함 속의 몇 개 안 남은 선택지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위기는 언젠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것이다. 주식도 마찬가지. 언젠가 또 오른다.주식쟁이는 저점을 찾으니 그들에겐 지금이 기회일지 모른다. 문제는 이 위기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망한 걸 인정해야만 해결책이 나온다. 정치는 상대를 까내려야만이 본인이 살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이다. 각자 정치색으로 색안경을 끼고 정세를 바라보지만 말고우리가 이런 마인드셋이 각자에게 내재되어 있어야만이 개인이 바뀌고, 조직이 바뀌고, 국가가 바뀌는 건강한 변화가 선행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상식선에서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건 이것밖에 현 상황에서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