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의 진짜 민낯에 대하여
20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대체로 인성에 문제가 있고, 사회화가 아직 안 됐다는 평이다. 꼭 누군가를 헤친다보다 우울증에 걸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도 부지기수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평범한 학생이 그야말로 대단한 시대다. 한마디로 이 사회가 문제 많다는 거다.
아니, 사실 이는 고등학교만 가도 알 수 있다. 지인 중 고등학교 교사 친구에 따르면 그들은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급 나누기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학폭, 흡연은 기본에다가, 지나친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물들어있다한다.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청소년 자살이 많은데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만하다.
예를 들면, 급을 나눈 데에도 종류가 있다. 누구는 강남살고 누구는 지방변두리에 산다고 하면 각자 그 급에 맞게 나뉜 레벨대로 그렇게 살면 된다. 지방 변두리 학생이 강남올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고, 강남에 사는 사람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근데 이걸 청년사회에 빗대었을 때 문제는 강남인이 그들을 혐오하고 못 올라오게 짓밟고 무시하는 데 있는데, 이 무시와 혐오정도가 도를 넘는다. 약자를 악랄하게 괴롭히고 그들의 힘과 권위를 과시한다. 돈이 얼마 없는 사람들도 알바를 해서라도 그 과시하는 무리에 끼려 하고 그것을 못 가진 학생을 조롱하고 배척한다.
내가 본 실제 사례다. 학교에 청소아주머니가 있다고 하면 아주머니 앞에서 바로 쓰레기를 버린다.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직업에 귀천을 그렇게 둔다. 10대, 20대가.
나는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고 남은 음료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는 학생도 봤다. 아주머니가 물이 흐르는데 그걸 치워줄 수 없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거 치우는 게 본인 일 아니에요?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말을 하는 소시오패스를 우리는 대체 어떻게 바라보고 교육시켜야 할까. 어떻게 이들이 사회에 나가 정상적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한 자영업자는 커뮤니티에 20대 아르바이트생을 뽑지말라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책임감이 결여돼 있고, 권리만 챙기고 의무는 버리는 세대라고. 이런 개탄스러운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도 최근 대학생과 겪은 비슷한 경험이었다. 굳이 얘기해서 이게 옳은 행동인지를 맞다, 틀리다로 논쟁 삼는 게 싫으니 굳이 이 경험은 얘기하지 않겠다.
나는 모든 20대가 이렇다고 일반화하고 싶지도 않고, 무리에 휩쓸려 쉽게 동조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겪은 경험 하나로 색안경을 끼고 그 잣대로 특정 대상을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어떤 이유에서건, 그런 청년들이 전국에 다수 있으며 갈수록 숫자가 는다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축이 될 청년층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써 염려해야 할 일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 경험을 가지고 있다. Y세대 밀레니얼 세대니, MZ세대니, Z세대니, 매 순간 세대가 바뀌면서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자랐다. 우리도 이들을 보면서 이제 "요즘애들은~"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원래 우리와 애초에 다른 새 세대는 늘 아니꼽게 보이나 보다. 트렌드가 변하면서 자연스레 습득하는 문화나, 지식, 가치관, 만나는 사람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현 청년세대를 맹목적으로 욕하는 건 나와 내 부모님 세대를 모두 욕하는 거랑 같으니 사실 내 얼굴에 침 뱉는 거랑 같은 이치다. 이기주의와 본인 권리만 찾는 세상을 우리가 물려준 셈이거든. 그렇게 오냐오냐 가르쳐 사회성을 기르지 못하고 나온 아이들이 사회문제를일으키고, 그 부모는 학교에 불려 가고. 몇 년만 지나도내가 부모가 돼 학교에 불려 갈 것이다. 무한반복. 누가누굴 욕하나. 그럴 자격도 없다.
딱 하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방법이다. 현 사회의모든 원인은 보는 시각에 따라 해결책이 달라진다.
정치인들은 부동산정책을 얘기하면서 집값이 이렇게 천정부지로 높아져 청년들이 꿈을 잃고 포기하고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을 앓는다 말하고, 또 다른 정치인은 청년수당이나 청년만을 위한 과대한 포퓰리즘이 부른 패착이라 떠들겠지.
교육 종사자들은 공교육이 무너져 사교육이 판을 치는세상에 좋은 대학교를 가야만, 대기업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논리에 적응 돼 어릴 적부터 사람을 경쟁의 상대로만 인지하는 게 문제라 할 수도 있겠다.
또 보자. 경제학자들은 초고령화사회 그리고 그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 경제가 파탄 나는 중에 애 하나만 잘키우자는 심리의 부작용 즉, 과잉보호가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분석을 모아 전체의 시각으로 보면 갈수록 짙어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기주의를 불러왔을 수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도 생각한다. 후회해도 한참 늦었으니 조금이라도 난 더 일찍 뭘 할 수 있나.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비교와 경쟁문화에서 자유로운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문화에서 1등 하는 법이 아니라. 최고 포식자를 목표로 두고 그 위에 올라가 과시와 무시를 일삼는 건 답이 아니다. 본인을 온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내 일로 내가 밥벌이하며내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 그게 그 어떤 강남에 사는누구든, 부자들보다 더 행복한 인생이라는 걸 인지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땐 모른다. 내가 집착했던 것들이 십 년만 지나도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는 걸. 내가 좇았던 권리들에 의무 없는 대가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자만속에 빠진 사람은 본인 세상밖에 안 보인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 절대 내 새끼가 최고가 아니고, 나만 잘난 것이 아니다.
또 중요한 건 잘못된 건 명확하게 잘못됐다고 얘기하고 그걸 스스로 깨닫는 능력을 우리가 심어줘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이십 대들에게 통용된 말은 아니다. 삼십대에도 이런 사람 당연히 있다. 관용과 배려 중시아래, 그저 어리다고 귀엽다고 잘못된 걸 바로잡지 않고 웃어넘긴다거나, ‘다음에 잘하면 된다’라는 지나치게 관대한 수용이 사람하나를 망친다. 기분 안 좋다고 사람 죽일 수는 없지 않나.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을러 조금만 편해져도 풀어진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공공연한 장소에서 창피를 주든, 아니면 본인이 직접 느껴 피해를 보든 그런 경험 자체를 가지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수치스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바뀐다. 백번 듣고 배워봐야 모른다. 도덕:이나 나아가 고등학교 윤리 100점맞아도 인성파탄자들 널렸다.
최근 병원도 가고 KTX도 탔다. 이 두 곳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느꼈던 경험이 있었는데, 아이가 세상 떠나가라 우는데도 옆에 부모는 가만히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질책하지도, 화내지도 않고 마치 다른 집 아이를 쳐다보듯 대했다. 이 아이는 커서도 본인의 수가 틀어졌을 때 본인이 떼를 쓰면 다 이루어진다고 믿고, 본인 마음대로 행동하며 남한테 피해주면서 클지 모른다. 그렇게 금쪽이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가만히 놔둬도 솔직히 상관없다. 왜냐하면 저절로 세상에 도태되는 건 저명한 사실이거든. 우리는 이들을 궁극적으로 구제하고 사람만드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아무 죄 없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걸 방지해야 한다. 그게 한국사회에서 더 급한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국어, 영어, 수학보다 윤리교육 그리고 인성관을 잡는데 더 많은 국가 예산과 부모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차피 한국사회는 미래에 성공한 소수가 다수의 패배자들을 잡아먹고 부리는 나라가된다. 앞으로 이 격차는 더 심해질 거다. 근데 이 성공한 소수는 절대 국어, 영어, 수학성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걸 20대들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더불어 사는 세상 속, 인성과 태도 그리고 가치관이 전부다.이만한 게 없다. 젊음은 찬란하나 이를 가진 자만이 찬란함을 누릴 수 있다. 앞으로 세상은 그렇게 더 혹독한 잣대로 그들을 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