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 왜 나가야 하는가
연말이 다가오는 이맘때쯤이면 송년회가 한창이다. 각종 모임에선 미리 약속이나 한 듯, 빠르게 주말 일정을 잡는다. 벌써 한 달이나 남은 크리스마스나, 연말 일정은 자리가 마감된 음식점도 많다. 일정 협의는 보통 다수결로 진행된다. 본인이 그 모임에서 그간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는 경우 예를 들어보겠다. 만약 올해 송년회를 참석을 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선언하면 마치 도덕적 잣대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구성원들은 역정을 내면서 참석을 강요한다.
자, 그럼 우리가 송년회를 조직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가장 주된 요인은 사람들에게 잊히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혼자면 외롭고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원시시대 때부터 무리를 지으며 위험으로부터 함께 보호받고, 사냥하면서 그렇게 생존해 왔다. 생존의 본능이다. 그래서 그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잊히지 않기 위해 송년회나 신년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승진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한 조직에속한 내가 소속감을 더욱 굳건히 하며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금전적 이득과 소속감 모두를 가지게 하거든. 그래서 과거아버지 세대를 보면 한 회사에 입사해 몇십 년간 충성을 다한 것이다. '한해를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둔 송년회도 한해를 회상하고 미래를 점검하는 데 있다기보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다소 불편하고 명징한 뜻은 본인이 그 조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함이다. 친구나 지인들끼리의 송년회가 아닌 회사나 사회생활에서 하는 송년회라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더그런 의미지, 못하지 않는다. 송년회는 술 먹고 웃고 떠드는 것 이외에 '자, 올해는 이런 점이 부족했고, 이런 점은 좀 잘했으니까 앞으로 이 개선점을 명확히 인지해서 내년에 더 잘해보자. 더 잘해서 개개인도 빛나고조직도 빛나고 우리 팀도 빛나고 팀의 장인 내가 빛나서 더 승승장구하자'라는 속뜻이 담겨있다. 어쨌거나 그 조직의 팀원이든, 팀장이든 속한 조직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함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영업을 하든, 회사를 다니든, 본인의 능력으로 돈을 버는 프리랜서든, 예술가든 간에 ‘인정욕구’라는 게 있다. 본인 결과물의 수준이 어떻든 누군가 인정해 주길 바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듯, 그래야 앞으로 나아간다. 요즘 퍼지고 있는 SNS쇼츠 영상의 일부를 보자.
두 여자가 있다. 두 여자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킨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외투를 걸고 주위를 둘러보고 자리에 앉는다. 5분 뒤 커피가 나오면 이들은 셀카를 찍어대기 시작한다. 혹은 서로를 찍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10분여간 찍고, 나머지 한 시간은 각자 사진보정의 시간을 갖는다. 보정 뒤 SNS에 올리고 ‘좋아요’의 개수와 댓글 즉, 관심도에 따라 그날 기분상태가 정해진다. 온라인에 매몰된 현대판 인정욕구다. 내 앞에 있는 친구는 기분이 어떻든, 뭐든 안중에도 없다. 이 날 둘이 카페에서 나눈 대화는 사진 찍어달라는 말 뿐이다. 이게 과연 친구사이라 할 수 있나. 송년회도 이와 같다. 함께 있는 이 소속감을 주변에 알려야 한다. 마치학창 시절, 본인이 일진무리에 속해 있으면 희열을 느끼고, 본인이 뭔가 된 것 마냥 으스대는 철없는 양아치처럼 말이다.
송년회 같은 모임 안에서도 인정욕구가 드러나는데, 늘 몇 년째 잠수 타던 사람이 갑자기 오랜만에 참석할 때가 있다. 이 중에서 99%는 본인의 경사를 남에게 알리기 위해 혹은 이제야 본인이 떳떳하니 나온 자리다. 진짜 그 송년회 인원들이 순수하게 보고 싶어서 참석한 사람은 단언컨대 많지 않다.
가령, 이들은 오랫동안 고시낭인이 되어 시험준비를 하다 결국 최종합격을 했다거나, 갑자기 결혼을 한다거나, 취업을 했다거나, 유명인이 됐다거나, 코인이나 재테크로 떼돈을 벌었다거나, 부모 잘 만나 인생이 폈다거나 본인의 어떤 특정한 경사가 있을 때에 꼭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 있지 않다. 내 주변 실제 예시다.
이 경사를 남들이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이 와중에도 아직 경사가 없거나, 큰소리쳐놓고 사회 바닥에서 뭐 하나 제대로 일궈놓은 것이 없는 이들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아니면 서서히 반대로 잘 참석하다 자취를 감추거나.
이토록 의례적인 송년회 자리에 흠뻑 취해 서먹함을 풀며 서로 또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돼 우정을 다짐하고 귀가를 한다. 이때는 현타 그리고 깊은 공허함이 자리한다. 혼자가 쓸쓸해 모임에 참석했더니, 군중 속의 외로움에 사무친다. 이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그 강도가 크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애초에 인간은 외로운 동물이라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술기운을 빌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일 년에 한두 번 (심지어 서로가 필요할 때만) 연락을 주고받는 사인데 매번 이럴 때만 마치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듯 하는 의례적인 만남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깊은 상념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또 서로를 챙겨봤자 내년에 또 각자 삶에 치여 바빠 어차피 챙기지도 못하는데.
송년회라는 하나의 고유명사는 서로의 이권만 드러내려는 이 자체를 술과 재밌는 이야기로 만회하려는 게 그 목적이다. 나는 송년회든, 신년회든 사람 간의 모임 자체에 대해 본래 염세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다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온전한 친분모임도 있다. 근데 많이 다녀보면 대부분이 이렇다는 걸 요즘 느낀다. 모든 모임은 본래 각자의 목적과 그 모임의 목적이 부합할 때만 간다. 그 둘 중 하나라도 서로 삐끗하면오래가지 못한다. 왜? 조직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모임을 유지해야 하는 건 필요악이거든. 각종 경조사에 내가 돈을 많이 뿌렸다면 그만큼 똑같이 받아내야 하고, 내 경조사에도 또 와줘야 하고. '언젠가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도움 되는 일이 있을지 모르니 계속 이어가야 하는 명분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 모임이 결성됐던지 간에 이미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추억들은 오래전 얘기고,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확률이 다분하다. 시간이 지나 점점 안 보게 되는 모임이나, 사람이 있다면 이런 피로감이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백번 잘하더라도 잠깐의 실수로(고의도 아님) 타인에게 혹은 모임에게 한 번의 피해를 줬다고 해보자. 단단하지 못한 관계는 그렇게 한순간 와해돼 무너져버린다. 내 실수와 치부를 품기에 모임에 속한 개개인은 그 정도로 관용적이지 못하다. 별에 별 사람 다 있거든.
간단히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요즘 사람들이 어떤지.
1) 본인 결혼식에는 축의도 안 하고, 오지도 않은 사람이 결혼한다고 꼭 좀 와달라며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다.
2) 아무렇지 않게 돈을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안 빌려주면 서운한 기색을 한다. 만약 빌려준다 해도 대답을 회피하거나, 언제 줄 거라며 짜증을 내며 갑질을 한다.
3) 여행을 가더라도 철저히 계산대로 본인 이득만 생각하며 행동한다.
4) 본인의 성취나 이득을 위해서라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소시오패스가 있다.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은 만나기 드물다고? 본인이 참석하는 모임들 중 꼭 한두 명 끼여있을 정도로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이 세상엔 널리고 널렸다.
이제야 정신이 들면 됐다. 송년회든 신년회든 의미 없는 모임에 더 이상 우린 목숨 걸 필요가 없다. 안 온다고 머라 하든 말든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이유가 사실 간다 해도 어차피 술판이기에 안부고 나발이고 다음날 아무도 기억도 못한다. 한마디로 ‘내 삶’에 도움이안 된다는 거다. 가서 하는 얘기라고는 인생 좀 잘 풀렸으면 본인자랑이나 하고 상대는 그 잘된 역사를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앉아있어야 된다. 이 현타는 느껴본 사람만 안다. 내 안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들 은 많지 않으니 결국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오는 꼴이다. 술이라도 왕창 마셨다면 몸까지 망가져 다음날에 지장을 준다. 그 의미 없는 시간에 내 친구나 내 사람 한 명 더 챙기는 게 훨씬 현명하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뭐가 그렇게 신난다고 맨날천날 의미 없게 떠들고 있나.
그렇다면 이성이든 친구든 가장 건강한 관계는 뭐냐.
내 옆에 계속 있어준 사람? 힘들 때 옆을 지켜준 사람에게 우리는 굉장한 의미부여를 한다. 근데 막상 내가 일이 잘 풀렸을 때 질투와 시기하는 사람이 그때 힘들 때 함께 있어줬다 생각한 그 사람일 수도 있다. 경험담이다.
내게 집중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 어떻게든 본인이 잘되면 다 따라온다. 아예 기억 속에 잊힌 사람들도 연락이 온다. 그게 상대가 어떤 목적이건 간에.
내 인생에 집중하고, 내가 잘 풀리고, 뭐든 어떤 분야에서 작은 성과라도 내고 난 후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그 관계를 선택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개인대 개인으로 서로를 깊게 알아가는 게 그게 의미 있고 깊은 관계를 만든다. 굳이 모든 모임에 가면서 불특정다수와 최소한의 관계유지를 하는 건 현대사회에서 너무 영양가 없는 비생산적인 일이다.
귀인의 정의가 뭘까. 사전적 정의는 ‘사회적 지위가 높고 귀한 사람’이다. 근데 이 사회에서 귀인은 단순히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 명예랑 돈 나한테 줄 수 있나? 아무 의미 없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귀인은 바로 ‘내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다.
“너 이거 한번 해볼래?”
“이번에 00이 자리가 났는데 너 넣어볼래?”
“너 00 잘하니까 이거 잘할 것 같은데 같이 할래?”
현재는 함께하진 않지만 실제로 난 이런 사람을 숱하게 만나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적이 있다. 죽고 못살았던 친구나 지인이 귀인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거다.
난 요즘 불경기다 경제위기다 제2의 IMF다 이런 한숨 섞인 말들 속 연말분위기가 예전만큼 못한 것에 오히려 고무적이라 여기며 안도한다. 특히나 요즘은 사람들이 워낙 똑똑해서 스스로 본인의 행동을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다. 그나마 좀 낫다. 근데 문제는 뭐냐. 개선을 못한다. 그래서 발전이 없다. 이런 말을 꼭 해야만그들은 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불완전한 사람들끼리 다수가 모여 서로 위안 삼으며 파이팅 외치면서 내년에 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고 꿈꾼다. 근데 그게 사실 무슨 의미가 있나. 불완전한 각자를 보듬어 줄 진짜 본인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최우선이다.
왜 이게 정답인지를 말해주겠다.
먼저 송년회, 신년회라고 부를 수 있는 모임은 다수가 자리한다. 최소 4명 이상. 우리는 이 다수의 공통적인 관심사 얘기를 해야 하고, 특정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를 하면 나머지 다른 이들은 흥미를 잃는다. 따라서 모두의 분위기에 맞게,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공통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얘기는 넓으나 깊이가없어진다. 그리고 술 마시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그렇게 하루가 간다. 개인대개인으로써 깊은 얘기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격 좋고, 훌륭하고, 사회에서 성공했으며, 배울 것 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한들 그 사람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취미생활은 무엇인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직원들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와 같은 노하우를 습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데 그 자리에서 그냥 농담 따먹기 얘기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그 자리가 의미 있을 수 있겠나. 워렌버핏을 앞에 두고 말 한마디 없이 밥만 서로 먹고 셀카만 찍고 오는 거랑 같다. 배우고 싶은 롤모델을 앞에 두고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것이다.
다음은 시간이다. 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지 아는가? 돈이 많으면 내가 평소에 하지 못했던 걸 할 수 있어서? 맞다. 근데 더 중요한 것은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이라는 단어보다 '자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남들 출근할 때 출근 안 해도 되고, 그때 커피 한잔 집에서 여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경제적 자유라는 것이 의미 있는 거다. 연말에 그렇게 송년회니, 뭐니 모임 다니면 내 시간은 언제 갖나. 언제 책 한 권 더 읽고 내 취미생활하면서 소중한 사람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나. 계속 흐르는 이 시간은 주워 담을 수도 없는데.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나를 알아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 사람은 어떻게든 더 빨리 성공하게 돼있다. 그래서 결론은 굳이 그런 모임에 안 가도 된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굳이 기계적으로, 관습적으로 안 가도 된다. 내 구독자들은 그 안 가는 시간에 뭘 해야 할지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모른다면 그냥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