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Nov 25. 2024

우리가 연애를 더 못하는 이유

나는 누굴 만날 것인가

늘 똑같다가도 연말의 길목에 들어서면 생각보다 작년과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음이 보인다. 주변 친구들 중 답이 없어 보이는 친구도 어느덧 제 갈길을 조금씩 찾아가고, 반대로 꼬일 대로 더 꼬이는 친구도 있다. 이들은보통 과거에 틀어진 선택이 빚은 결과다. 안 될걸 알면서도 포기가 두려워 계속 늘어져 잡고 있다던가, 제 수준에 안 맞는 일을 억지로 그리고 과감히 용기와 젊음이라는 달콤한 말 하나 믿고 저질러 복구하고 있는 사람들.

가령, 지인 돈을 빌려 도박에 손을 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다라던지, 공부를 할 실력이 되지 않는데 눈만 높아서 전문직시험, 고위공무원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하다 고시낭인이 되어 자취를 감춘다던지. 이들은 30대에 들어서면서 삶이 더 꼬이기 시작한다. 실제 내 지인들 실화를 난 이야기하고 있다.

근데 이런 사람들은 보통 극소수다. 대부분은 각자가 희미하게나마 바랬던 것, 원했던 것을 어느 정도는 이루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굳이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보인다. 대단한 꿈을 꾸지 않아도, 대략적으로나마 이쪽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바랬던 젊은 날의 작은 꿈이실제 그 방향으로는 올바로 가고 있다는 거다. 100을 목표했다면 적어도 40, 50은 이뤄가고 있음에 3인칭 관점에서 그걸 보는 나 자신도 신기할 따름이다. 적당하게 본인 위치에서 꾸준히 최선을 다한 사람들은 적어도 본인만의 행복을 그렇게 찾아가고 있다. 안 풀릴 것 같은 난제들도 하나 둘 풀린다. 심각하게 여겼던 것들도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니고, 반대로 사사로운 것이 신경 쓰이기도 한다.  


자, 이 길로 들어서면서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있다.

‘과거에는 분명 그러지 않았는데’,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땐 이러지 않았는데’ 하며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좋지 않은 쪽으로. 그게 바로 이성을 만나는 것. 연애와 결혼이다.

젊을 때는 모든 게 불같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불도저처럼 달려들기도 하고, 지독한 짝사랑만 하다가끝을 보기도 하고,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떠날 때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상대의 조건이 어떻든, 마음에 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내 줄정도의 열정이란 게 있다. 돈이 없어 비싼 레스토랑에 가지 못해도, 비싼 선물을 사주지 못해도 같이 산책만 해도 그냥 좋은 것이다. 그때 마음이 맞아 3년~4년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한 커플 혹은 오래 교제 중인 이성이 있는 이들과 현재 솔로로 지내는 사람과는 천지차이가날 정도로 삶이 대비된다. 100% 모두라고 단정 짓지 못하나 아주 높은 확률로 행복의 정도, 경제력, 안정감,사는 곳, 모든 게 천지차이다. 전자는 인생의 생애곡선으로 표현해 보자면 삶이 계속 우상향 하고 있음이 눈에 보이는데, 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이 안정적인 직장이 있든, 원래 돈이 많든 상관없이 그냥 외로워 보인다. 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실제로 그게 내 눈에 보인다. 본인의 삶에 이미 적응해 버렸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이성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조차 그들에겐 없다.

결국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인간의 욕구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자고 하는 것이다. 혼자 살다 평생 늙으면 이 세상 어떤 것으로 커버되지 않을 정도로 고독함이 자리한다. 그 고독만큼 불행한 게 없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든 것이다. 자녀를 낳든 안 낳든, 비혼주의자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늙어서 중년들이 연애라도 꼭 하고 있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혼자 늙는다는 것'의 외로움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근데 이게 참 어렵다. 이제 이성을 만나는 데 있어서 한살 한 살 먹을수록 '조건'이라는 게 생기니까. 이 조건은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냐에 따라 각자 다르나, 바뀌지 않는 공통점 하나가 자리한다.

인간은 늘 누군가를 만날 때 본능이 있다. 바로 본인과 최소한 같거나 더 나은 사람을 바란다는 거다. 내 친구는 의산데, 페이닥터만 해도 최소 월 천오백~이천만 원은 번다. 그 수준으로 버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고, 프리미엄서비스로 천만 원을 지불했다. 천만 원을 내면 이성이랑 매칭이 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이성을 소개해준다. 장소와 날짜까지 거기서정해준다. 언제 어디서 만날 거니 시간을 비우라고 문자 한 통이 오고, 그 문자한대로 당일 나가면 그만이다.이만큼 편리하다.

자, 그럼 누군가는 묻겠지. 천만 원이나 내면서까지 그렇게 수준에 맞는 이성을 사귀는 게 말이 되냐고. 그냥 자연스럽게 소개를 받거나 만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미안한데 2천만 원, 3천만 원짜리도 있다. 예전의 순수했던 빵하나만 나눠먹어도 사랑이 샘솟던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다. 이건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심해지면 더 심해졌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남녀 통틀어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기혼자들은 말한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는 것이 돈과 시간을 아끼는 길이라고. 단순히 이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생각나는 웨딩비용만 해도 그렇다. 웨딩업계는 경제가 어떻든 늘 ‘초인플레이션 체제’로 간다. 모든 비용이 작년대비 30%씩 오른다. 서울에서 결혼하려면 2년 전엔 식대가 6만 원이었다면 올해 9만 원, 내년엔 11만 원까지 간단다. 나는 다음 달에 결혼식을 3번이나 가야 한다. 이 추운 12월에 결혼식을 많이 가는 이유도 이런 이유다. 해를 넘기면 더 비싸지기 때문에 올해 안에 끝내버리는 것.


이는 경제력을 갖춘 남녀가 연애와 결혼시장에서 겪는고민이다. 크게 돈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그럼 어떨까. 외모나 전체적인 옷차림이나 체중관리를 하는지, 최소한의 관리를 하는 사람인지를 따질 것이다.

요즘 세상에 소개를 받지 않고 본인의 외적인 요소에 맞는 이성과 교제를 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단언컨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나온 소개팅도 교제로 이어질 확률이 통계적으로 12%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아무리 멋지고, 예쁜 사람이라도 그게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못난 것이다. 잘 갖추고 나온 누군가가 있다고 하자. 본인은 이게 외적으로 마음에 든다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오히려 투머치하다거나, 허세가 심한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

학생 때 성적을 높이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됐다. 직장을 가지고 돈을 모으고 싶으면 본인의 소비습관을 돌아보면서 안 쓰면 된다. 인풋을 늘리고 아웃풋을 줄이면 돈은 저절로 모인다. 근데 연애가 어려운 것이 나 혼자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정답이 없기에 모두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외적인 모습도 상관없고, 돈이 없어도 상관없고, 직업적으로 우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도 물론있다. 그럼 자, 이제 성격을 본다. 지하철만 타도, 버스만 타도 우린 안다. 요즘 이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제 소개팅 장소에 나가면 더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고 하는 기괴한 성격을 가진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아직 경험을 못해봤다고?

‘나는 솔로‘나, ’돌싱글즈‘ 같은 TV 연애 프로그램만 봐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게 오히려 더 맞추기가 힘들다. 자산이나 외모는 일정 수준 이상 되면 본인이 정한 허들을 넘을 수 있지만 성격은 워낙 다양해서 정량적으로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성격은 아무리 상대가 좋다한들, 본인에게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일단 한번 만날 때 각자는 상대방에게 본인의 모든 패를 보여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알아내는 것도 사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혼하고 나서도 상대의 비밀을 몰랐던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진짜 성격을 알아내고자 경찰 취조하듯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귀면서 일찍 동거를 해볼 수도 없으니 이게 가장 미치는 거다.


자, 가장 더 고통스러운 것은 요즘 남녀가 만나는 연애시장에서는 앞서 말한 모든 것이 합쳐지고 있는 추세란 거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사람은 눈이 낮아지지 않는다. 더 높아진다. 나중에 사십 넘으면 조금 내려놓고 어느 정도 포기를 하기 때문에 낮아질 수야 있겠지만, 본인이 젊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는 당연히 눈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본인이 만나려고 하는 상대가 앞서 말한 모든 조건들의 교집합으로 합쳐져 있어야 한다.

가령, 처음에는 돈 잘 버는 사람이 좋았다면 이제는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외모 몸매가 쪽팔릴 정도가 아니어야 하며, 나이차이도 적당해야 하고, 범죄경력이 없어야 하며, 성격이 모난 점 없어야 하고, 학벌과 직업이 괜찮아야 하고, 경제적 여건이 비슷해야 하고,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온전해야 한다. 이 모든 게 갖춰져야 한다.


한국인들의 이 비정상적인 연애관에 대해 가장 큰 문제점 두 가지를 꼽으라면 먼저 앞서 말한 모든 조건의 전제 앞에 괄호가 하나 붙는다는 것. 그 괄호 안에 있는내용은 (남들이 보기에) 다.

남들이 보기에, 내 친구에게 소개해줬을 때 학벌이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탈모가 없어야 하고, 집안이 괜찮아야 하고, 옷차림이 가지런해야 한다는 거다. 본인의 의사는 모두 남들의 평가에 따라 달라진다. SNS가 빚어온 현상이다. 당연히 그 남들이 보는 잣대는 현실과 괴리감이 있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모두가 주말 잠실롯데타워 앞에서 꽃다발과 반지를 들고 있는 걸 보면 모르겠나. 남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SNS에 올렸을 때 ‘좋아요’가 몇백 개 정도는 달릴 만큼 연애에있어서도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거다.

근데 돈이 부족해서, 아니면 외모가 부족해서, 저 기준에 미달되는 커플이 있다고 하자. 그래서 본인이 바라는 이상향만큼의 연애를 못하고,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얼마나 쪽팔릴까. 아니. 진짜 사실을말해줄까?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아니, 아예 모른다. 왜냐면 애초에 사람들은 본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거든. 그리고 본인자체가 이미 부끄러워하기에 남들이 보는 곳에 더더욱 올리지 않으니까.


또 다른 난제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으면서 앞서 말한조건에서 하나만 틀어지면 관계를 손절하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는 것이다. 젊을 때에는 저 모든 조건 중에 하나라도 맞으면 즉, 교집합이 하나라도 있다면 바로 만난다. 이 하나로 다른 본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들은 함께 극복하며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다.

근데 이젠 다르다. 딱 하나라도 안 맞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난다. 이미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으니.

원룸 살던 사람이 32평 아파트로 갔다고 해보자. 기분이 좋다. 성공한 것 같다. 근데 어느 순간 사업이 망해서, 혹은 일자리를 잃어서 32평 살다 다시 원룸에 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 참담함은 32평 아파트로 갈 때의 성취감의 열 배, 아니 백배다. 그랜저 타던 사람이 제네시스 타면 더 좋겠지만, 제네시스타던 사람이 갑자기 경차 타라고 하면 절대 못 타는 게 이런 이유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빨리 깨달아야 했던 건 시간이 가게 내버려두지 말고 본인이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만나면서 이성관을 명확하게 잡으라는 것이다. 글의 초반에 말했듯, 일찍 만나 안정적인 연애를 하다 일찍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 실제로 아직도 솔로인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잘 산다. 이성을 잘 만나 결혼을 잘하는 것. 혹은 비혼주의자가 있다면 제대로 된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 그게 사람으로 태어나 인생 가장 중요하고 큰 결정임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돈? 돈 많으면 좋지. 근데 결국 돈으로 할 수 있는건 결국 죽을 때 내 것이 아니다. 넓은 집, 좋은 차, 좋은시계 등 언젠가는 다 그 자리에 돌려줘야 할 것들이다. 어떤 주식을 살까 고민하고 공부할 시간에, 나는 어떤 이성관을 명확히 가지고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그리고 계속 두드려야 된다. 그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게 전부다. 하루 24시간 중 우리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모두는 이다음 후순위다. 더 늦출수록 더 만나기 어려워진다. 아무렇지 않아 보일 수 있어도 이걸 겪고 있는 게 본인이라 생각하면 얼마나 숨 막히고 어려운지 나는 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당시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말한다.


내 구독자들이 너무 늦게  알지 않았으면 한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서 수많은 허들과 장애물을 넘을 때도 절대 내 손을 놓지 않고 서로 응원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가장 큰 자산임을.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는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