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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Dec 17. 2024

새해목표의 맹점

모든 건 적당히.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 부자가 되는 것? 전교 1등을 하는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 차은우처럼 잘생겨지는 것? 누구나 부러워할사람과 결혼에 골인하는 것?


나는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중용을 지키는 일.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실제로 가장 어렵다. 컵에 물이 있다고 치면 넘칠 정도로 간당간당 있거나,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물이 적게 있지 않고 적당히 2/3 정도 채워져 있는 것. 딱 그거다.

근데 왜 우리는 이 적당한 상태를 등한시할까. 늘 정상만 바라보니 그렇다. 늘 그게 정답인 줄 알고 살거든.

무조건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고, 강남 아파트 살아야 하고, 결혼을 일찍 해서 자녀를 둘은 낳아야 하고, 명품 한두 개는 꼭 있어야 하고. 내 노력이나 의지를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어떤 특정한 목표를 이룰지언정 티나지 않게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 대부분 원하지도 않고 대단하게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적당히 살면 그냥 중간밖에 안 되는 건데? 근데 사람들은 모른다. 사실은 이게 가장 어렵고 값지다는 걸.


새해가 2주 정도 남은 지금 이 시기는 각자의 내년 목표를 공유하고 의지를 다지는 시기라 꽤 희망차다. 이미 내년에 본인이 어떤 걸 계획하고 이룰지 다이어리를 빽빽하게 채워놓은 이들도 주변에 있다. 근데 이 목표는 본인에게서 절대 끝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공유를 통해 더 깊게, 많이 채우려 한다. 본인에게 맞지도않은 목표인데도 마치 컵에 과하게 물이 넘치도록 부어버리는 꼴이다.


"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나 따볼까?

"나도 유튜브나 이참에 해볼까?"


이런 식이다. 아직 이루지 않은 목표를 얘기하는 건데도 온라인/오프라인을 마다하고 서로 경쟁을 하는 모습이다. 대단한 계획이라도 세우면 치켜세워주고 누가보기에도 작은 목표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대충 읽고 넘겨버린다.

근데 사실 목표는 더 후자에 가까워야 한다. 단순히 다이어트 10킬로 감량이 현실적인 목표치인데 20킬로 다이어리에 적었다고 내년이 희망차다는 게 아니란 거다. 실질적으로 내가 할 수 있으며 이룰 수 있고 어떤 특정한 계기에 의해 배태된 것이어야 본인의 삶이 성장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이익이 된다. 욕심부려 과하게 목표를 세웠다 이루지 못하면 본인에 대한 그 공허와 실망은 그다음 해, 또 그다음 해로 똑같이 이월된다.그 어떤 목표를 세우든 그건 본인 마음이다. 근데 꼭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한쪽에 과하게 치우치지 않은 중용. 이거 하나는 꼭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과해도 안되고, 부족해도 안된다.


예를 들어, 돈에 환장한 사람이 있다 치자. 올해 일억을모았다. 이 사람은 일 년에 현실적으로 최대 오천만 원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근데 내년에 그 두 배인 2억을 모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면 평소보다 두 배를 저축해야 한다는 건데,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목표를 이루고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자, 설령 투잡, 쓰리잡, 주식과 코인 재테크에 눈이 돌아 그 돈을 만들었다 하면 그 사람의 일 년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건강을 잃든, 가족과의 시간을 잃든 고집 내 이룬 목표 뒤편엔 어두운 그림자가 상존한다.

돈을 버는 건 원래 재미가 없다. 그냥 원래 그렇다. 재미없고 취향에 맞지 않는 일로 돈을 벌고 있는 자신을 자조 섞인 말투로 한탄하는 이들이 있다. 이건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에게나 재미없기 때문에 고용주는노동자에게 그 많은 돈을 주는 것이다. 아무도 재미로 그냥 하는 일이 아니거든. 본인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많이 벌면서 사는 사람은 사실 극소수중 극소수일 뿐. 인스타그램과 SNS가 사람을 다 배려놨다. 현대사회에서 덕업일치는 본인의 능력 말고도 타고난 운과 타이밍 모든게 함께 동시에 이루어져야 겨우 가능하다. 결국 그 2억을 목표한 사람은 일 년 동안 극단적으로 X나재미없는 인생을 산 것이다. 모든 장애물은 돈으로 귀결된다. 친구와 영화 한 편 보는 재미도 없었을 것이고,연인과 해외여행 아니, 국내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했을 거고, 한창 멋있게 꾸밀 나이에 옷하나 못 사고 거지꼴을 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데 돈이 아까워 맛있는 커피 한잔 못 사 먹고, 맛있는 외식 한번 못하며 오로지 목표한 돈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에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주에서 산다. 검은색을 누군가는 진한 회색이라고 하고, 노란색을 누군가는 금색이라고 말한다. 서점만 가도 누군가는 3년 안에 1억을 모으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또 다른 책에서는 한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 철학적인 의문을 남긴다.

따라서 누군가는 이 사람에게 일 년을 실패했다고, 시간낭비했다고 비아냥댈 것이다. 이 이유는 뭘까.

결국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쳤기 때문이다. 중용을 지키지 못한 것. 실제로 내가 봐도 그 삶은 바람직한 삶이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에 미쳐있는 건 지극히 당연하지만 적어도 3개월에 카톡 프로필사진 한번 바꿀 정도의 본인이 스트레스를 풀만한 여행이라던가, 취미라던가, 최소한의 추억은 쌓아야 삶에 유희가 있지 않겠나. 나이 들면 그 추억만 가지고 조금씩 꺼내어 쓰면서 이 100세 시대를 버텨내야 하는데 그 추억마저 없으면삶에 아주 깊은 공허가 찾아올 것만 같다. 70세가 넘으면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버티는 거다. 뭐 또 이 말을 하면 누군가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젊을 때 돈이 없으면 괜찮지만 나이 들면 구차하다는 반론을 하겠지만 이 말조차 안 나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앞서 말한 중용이다. 결국 뭐든 적당히.


인간관계도 어찌 안 똑같겠나. 현대인에게 새해목표에는 인간관계가 무조건 들어간다. 왜냐? 가장 스트레스받고 해결 안 되는 문제거든. 누군가는 카톡을 보면서 정리할 사람 정리하고, 차단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또 본인의 소심한 성격을 바꾸고자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모임에 나가기 바쁘다. 근데 관계라는 게 그렇다.

내가 잘한다고 상대가 본인을 좋아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눈치껏 상대가 알아듣고 피하지도 않는다. 또 반대로 좋다고 너무 잘해주거나, 과한 행동을 취하면 상대는 부담스러워하고, 인색하게 굴면 상대에겐 원망과 실망만 남을 뿐이다.

무엇이든 표현할 때 상대에게 바라지 않는 만큼 정도의 행동과 말이 전제되면 그것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이끌 수 있다. 결국 또 중용. 적당히.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직장인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정치인은 정치를 잘해야 한다. 각 사회에서 주어진 각자만의 역할은 존재한다. 지금도 이 역할을 잘 해내는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나라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할에 충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제로섬게임처럼 하나를 선택하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잃을 만큼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말라는 것.

지인은 일에 미쳐있다 40대 초에 암에 걸렸다. 20대에 공부에만 미쳐있던 또 다른 지인은 30대에 탈모가 왔고, 돈에만 집착하던 이는 주변에 아직도 돈을 빌리고 다닌다. 자리를 잡으면 효도하려고 했던 내 곁엔 이미 아버지가 안 계시고, 사업을 하겠다고 극단적으로 퇴사하고 빠져든 이는 아직 자리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

결국 꼭 무언가 대단한 걸 이루려 하지 않아도, 목표자체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살아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임을.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이 드는 정도가 그게 중용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국이 시끄럽고, 겨울날 이 매서운 바람처럼 모두가 힘든 연말이다. 이 속에서 희망을 찾는 건 결국 살아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최소한 본능이 아닐까 한다. 그저 평온하게,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실제론 가장 어려운 것이고, 가장 해내기 힘든 과제라는 걸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며 더 깊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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