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작별인사합니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관계를 유지한답시고 혹은 잠시쉬어간다는 스스로의 무조건적인 자위와 위안을 핑계 삼아 술을 매일같이 마셨다. 술을 마셔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적,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 마음에 없는 말을 해 실수를 한 적, 그만두라고 무언의 계기들을 뿌리치고 흘러 넘기기 바빴다. 이제 그걸 과감히 끊어보려 한다. 이건 나 자신에 대한 고민상담이고, 문제해결을 위한 스스로와의 다짐이다. 술을 마시며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준 것도, 더 나은 세상을 본 것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것도 그렇게 그냥 내가 믿어왔던 것이었고 그 자리는 사실 술이 없이도 차 한잔으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떤 술을 마시냐 보다 누구와 술을 마시냐가 더 중요하듯, 누구와 술을 마시냐보다 그 술이 차 혹은 커피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도 그 자리의 가치가 변함없는지를 셈하는 것이 인생에서 더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연대를 함으로써 그 안에서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가듯, 나 스스로도 영원히 술을 끊겠다고 약속은 못할지언정 어떻게든 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현저히 줄여가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자, 현대인은 술을 왜 끊어야 할까. 왜 끊는 것이 인생을 더 이롭게 할까. 인생에 술이 해가 되는 이유는 수도없이 많지만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술에겐 다소 관대했고 담배엔 엄격했던 것이 오랜 헤비스모커였으나 몸에서 이상반응이 왔기 때문. 담배는 그래도 담배연기를 제외하곤 남을 헤치진 않지 않나.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한다거나, 사고를 낸다거나, 남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다거나, 흉기로 헤친다거나, 주먹싸움이 난다거나 하는 모든 일들은 타인에게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끼친다. 음주 과실치사는 더 엄격히 적용받아야하며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술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어찌 됐든 본인이 행한 일이기에 동일하게 처벌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 스스로에 대한 절제가 필요하고, 그 절제의 첫 시작이 술이다. 술을 마셔서 사고가 난들 술 마시기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도 없거니와, 술이 깨고 나서도 그 사고를 낸 당사자의 죄가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서 생기는 흥과 유희와 비교했을 때 손실이 지나치게 크다. 벨런스 자체가 붕괴될 정도로 수지타산이 안맞는 게임이다.
다음은 당연히 돈과 건강. 남자들은 고정비와 옷이나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사는 치장비, 자기 계발비 이외에 돈 쓰는 것이 거의 없다. 그 외 나머지는 사실상 모두 술값이다.
친구와 저녁 식사자리를 한다고 하자. 똑같은 메뉴를 먹어도 술 없이 저녁을 먹는 것과, 술과 함께 먹는 건 금액 자체가 두 배이상 차이가 난다. 심지어 본인보다 후배나, 동생을 만나는 자리에선 남자세계에서는
'체면'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게 돈은 술값으로 매달 빠져나가고, 새 빠지게 일해도 나중에 남는 돈이 없다. 술을 먹는다 해서 그 지인과의 술자리가 그만큼 돈을 지불할 만큼 가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건강도 마찬가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건강이다. 이건 잃어본 사람만 안다. 다음날 숙취에 힘들어하고, 일상에 지장이 생기며, 과음을 했다면 구토, 설사에다 장기적으로 체중증가에 노화까지. 복부만 나오고 여러모로 돈과 건강측면에서 플러스 측면이 아예 없다. 그냥 다 마이너스다.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인간관계의 진실성인데, 술을 마시는 사이에서 이 기준 자체를 다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자주 만나서 매일 술을 마시는 사이라는 뜻은 서로 친하다는 뜻이 아니라, 술이 없으면 대화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에 가깝다. 그만큼 인간관계의 진정성측면에서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대개 술은 관계에서의 어색함을 풀거나, 긴장을 완화하는 용도까지만 플러스고, 거기서 더 과음을 하게 되는 순간 관계의 진실성이 흐려진다. 술 마시는 사이치고 나중에 오랫동안 남는 관계를 나는 여태껏 나를 포함한 내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그때 그렇게 죽도록 마신 그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도저히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알 턱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런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스트레스 해소. 근데 이건 담배와 같은 논리. 애연가들은 영감을 떠올린답시고, 일에 집중을 해야 한답시고,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습관처럼담배를 입에 문다. 근데 그건 뇌에서 본인을 속이는 행위에 불과하다. 실제로 담배도 연기를 목으로 넘기는 그 잠깐의 쾌락을 위해 피는 건데, 그 연기를 넘긴다 해서 스트레스가 풀리나? 일에 집중이 더 잘 되나? 없던 영감이 저절로 떠오르나? 절대 아니다. 그냥 본인이 그렇게 믿고 싶을 뿐. 술도 같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연거푸 마신 술은 다음날 숙취와 함께 오히려 스트레스를 오히려 두 배 새배 더 안고 온다. 배는 나오고 어깨는 더 뭉친다. 몸 깊숙이 잠들어있던 피로를 깨우는 그런 느낌이다.
이 많은 이유를 차치하고 내가 술을 끊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걸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술을 마실 그 시간에 하루라도 더 가족과의미 있는 시간 보내고, 책 더 읽고, 글 더 쓰고, 생산성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버리는 것이 지나치게 아깝다. 최적화된 삶의 균형을 이루기에 술은 어떤 영역에서든 인생에서 마이너스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게 된 큰 다짐이다. 이 다짐이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구독자들에게 더 큰 선순환을 이끌 것이라 믿는다. 이제 생산적인 얘기는 커피나 차로 대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