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고 누구랑 잘 맞을까
한국인의 전형적 이분법적 사고와 편나누기의 예시라고 하면 최근 MBTI에 이어 2탄으로 에겐남&테토녀 테스트가 급부상중이다. 에겐남은 '에스트로겐'의 여성호르몬에서 따온 말로 감성적이고 섬세한 스타일의 남성을 뜻한다. 반대로 테토녀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줄임말로, 강인함, 주도성, 리더십을 가진 여성을 말한다. 즉, 본래의 우리가 남성과 여성을 말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상반된 이미지의 남녀를 뜻하는데,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니,저렇니 하며 또 평가하는 모양새다. 남성성을 가진 테토남이 여성들은당연히 원초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고, 여성성의 상징 에겐녀가 남성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끌릴 수 있는데, 이런 상반된 모습을 띤 이들을 치켜세워주는 경우보다는 대개 조롱이나, 놀림거리로 간주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포인트다. 이는 애초에 단어와 대상을 명확히 정의내리기보다 평가하기위한 비교군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왜? 사회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이 가진 전통성에 집착하니까. 세상이 변했다 해도 이런 전통성을 거스르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연히 이 대상은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그래서 대개 내 주변인들 중에서도 남자에게 '에겐남' 같다고 하거나, 여자에게 '테토녀'라고 하는 경우에는 칭찬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 반색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MBTI든, 에겐남&테토녀든, 중요한 건 한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 한 사람이 가진 이 모든 특성은 절대 어느 한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에겐남 성격을 띠기도, 또 다른 어떤 부분에서는 남성적이고 강인한 테토남의 성격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단지, 이러한 비교와 인공적 틀에 끼워 넣은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소비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반증이고, 우리는 이 이분법적 사고를 즐기면서 무엇이 더 가치 있고, 멋있는지 우열을 가리는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비생산적인 도파민을 무한정으로 필요로한다.이 두 가지에 아무도 속하지 않는 부류는 대중들은 얄짤없이 어떻게든 어떤 특성을 캐치해내서 둘 중 하나의 틀에 억지로 끼워 넣어버리면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 낙인이론에 따르면 이런 낙인은 실제로 본인에게 행동이나, 태도 측면에서 훨씬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 MBTI의 바람이 한번불더니, 이젠 또 성별의 특성을 가지고 사람을 편 가르기를 해버리니 나는 도대체 어느 성격이고 한 가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워질 때가 많다. 뭐만 하면 본인은 이런 특성이라고 누군가 단정 지어버리니까. 나 스스로도 아직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본인을 알아가고 꿈을 찾아가는 사람이 이를 보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 장난 삼아 그냥 넘기기에는 나중에 더 습관화되어 하나의 범주를놓고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해 버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일상속에서 당연해지는 건 아닌지 그게 더 걱정이다.
"나는 ESTJ에 에겐남인데 연애할 때 어떻게 보시나요?"
"저 ENFP에 테토녀인데 누굴 만나야 하나요?"
하루에 꼭 한두 번꼴로 나타나는 고민질문의 예시다. 현대사회에서 가끔씩 이런 질문을 볼 때면 머리가 탁해지고 대답을 만들어내기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이 사회는 흑백논리에 습관화되어 본인의 취향과 개성을 그 틀 안에 억지로 가둬 넣으려는 모습이다. 아니, 이미 모두가 익숙해져있다. 가장 소중한 것을 그렇게 잃어가는 거지. 별의 가장 큰 특성이 5개의 모서리가 뾰족하다는 건데 그걸 다 깎아 동그라미 원형틀에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이런 테스트가 늘어나는 목적은 단 한 가지다. 어쨌거나 '궁합'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 소개팅을 하거나, 모임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 보는 대상을 알아가야 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어느쪽'의 사람이구나 라는 걸 미리 알 수 있거든. '아, 이 사람은 나랑 맞겠다'라는 최소한의 허들을 하나둘 만드는 느낌이다.
사회가 팍팍해져서일까, 우리 각자가 타인을 바라보는기준자체가 상향평준화되어서일까. 어떤 틀이든, 어떤편 가르기든 그걸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는 재미삼아일수도 있고, 아이스브레이킹 혹은 스몰톡용도로 충분히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MBTI나 에겐남&테토녀 이 모든 것이 누가 맞냐 안 맞냐라는 근본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로 넘어갈 때에는 더 큰 문제가 양산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또 하나의 사람을 재는 또하나의 수단이 그냥 늘어난 건데, 재는 것도 피곤해죽겠는데 이를 맞고 틀리고를 따져 상대편을 까내리면 팍팍한 세상을 넘어 위험한 세상이 도래할지 모른다. 모두가 소시오패스가 된다. 그게 나는 걱정이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누군가와 내가 잘 맞다는 걸 정의 내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딱 하나뿐이다. MBTI나 이 에겐남& 테토녀 유행 자체도 이것 때문에 파생된 거다. 바로 '상호보완'. 내가 가진 특성을 상대방이 상호보완해 줄 수 있는 특성을 가졌는가. 그것만 보면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가 공감능력이 좀 부족하지만 매사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면, 이성적으로 판단하진 못하더라도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그런 상대를친구 혹은 연인으로 두면 삶은 훨씬 더 혼자일 때보다 풍요로워진다. 상호보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혼자일 때보다 나은 상황이 연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그걸 가리기 위해 이런 게임들이 계속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양산되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 즉, 정상인을 가려내는데 현대사회는 이토록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그리고, 얼마나 삶이 팍팍해졌으면 한 사람을 검증하는데 이런 허들이 계속적으로 생기는 걸까 하며 아쉬운 마음도 든다.
어차피 이렇게 된김에 상대가 그 어떤 성향을 지녔든, 그 틀에 가둬놓지 않더라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먼저 포용하고 존중하는 태도가깃든다면, 그리고 그 안에서 상호보완적 태도로 게임에 한번 임한다면 최소한 각자 맞는 사람과 건강한 인간관계는 맺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