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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즐기는 이유

사당역- 풀리지 않는 숙제들

by 홍그리

친구와 술을 마신다. 이번에도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받는다고 좋아한다. 오늘은 이 지원금에 대해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고 있다.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절 지원금을 받지 않고, 이 외에는 대략 25만 원 정도 선에서 가구별로 추려질 듯하다. 여기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이 의견들 중 눈에 띄는 것이 두 가진데, 먼저 현재 상위 10%에 있는 사람이다. 상위 10%에 있으면 보통 우리가 추측할 때,

"우리는 어떻게 돈 벌었는데, 우리는 사람 아니냐" 며 본인도 달라고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라 예측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딴판이다. 말을 하는데 있어 본인의 자산이나 연봉, 직업 자랑을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교묘하게 지원금을 빗대어 얘기한다. 나는 민생지원금도 안 받는 이 정도의 위치까지 이뤄냈다는 식. 면대면으로 이런 말을 하면 질투와 시기를 받을 확률이 높으니 역시나 익명성에 기댄 온라인에서 이런 말들이주를 이룬다. 즉 현재의 위치를 뽐내려는 본인의 자랑과 나머지 90%의 사람들과는 좀 더 벽을 쌓고 싶다는 선민의식이 상존한다.

반대로, 양극단에 속하지 않은 대부분의 90%의 서민들의 반응을 보자. 대개 이렇다.


"혼인신고하래서 했더니, 또 가구별로 주네. 나라가 우리를 또 속인다. 혼인신고 안 할 때보다 또 훨씬 더 적게 받게 생겼네"

"우리도 애 키우면 맞벌이해도 남는 것 하나 없다, 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만 많이 주냐?"


이런 볼멘소리가 주를 이룬다. 민생지원금 추경이 통과했을 때에는 한국이 베네수엘라 된다느니, 나라가 망한다느니 하면서 정작 준다고 하니 돈 더 내놓으라는 식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본인은 서민계층에 있다는 것에 대한 (기초생활수급자 대비) 묘한 안정감을 느끼고, 돈을 받으니 (상위 10% 대비) 행운이라 여긴다. 반면에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고마워하는 마음 하나 없다. 그냥 '당연히' 본인에게는 이만큼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본인이 가난한걸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그냥 당당하다. 동네 행정복지센터나, 정부기관에 민원을 처리하는 곳에 가보면 바로 보인다. 대개 진상들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다. 그만큼 그들은 본인이 노력해하지 않고, 이는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복지라고 생각한다. 노력없이 얻은 대가니, 돈도 쉽게 쓰겠지 아마.


자, 이 세 계층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불평등에 익숙해져 있다. 익숙함을 넘어 불평등을 당연시 여기고, 이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자산과 고연봉의 직업을 가진 상위 10%는 그게 유산이 됐든, 증여가 됐든 본인 노력이 됐든 현재 본인의 위치를 정당화시키려 그들만의 단단한 철옹성을 더 쌓아간다. 본인의 위치를 은근히 뽐내면서 그렇지 않은 계층을 한없이 무력화시킨다. 그러면서도 이 무력화가 티 나지 않는 선에서 본인의 논리를 '공정'과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모두에게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졌고, 공정한 과정에서 본인들이 쟁취한 것이기에 너희들도 원하면 그렇게 노력해서 우리계층에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모양새다. 서민은 양극단에서 약간의 돈과 그리고 약간의 안정을 얻고, 기초수급자는 공짜로 돈 받으니 즐긴다. 즉, 이 불평등을 즐기고 있는 것.


계층 간의 문제만 이런 것이 아니다. 세대 간의 갈등도 한번 보자. 정부가 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을 하나 냈다고 해보자. 가령 그것이 청년수당이라면 그 해당뉴스의 베스트댓글은 안 봐도 뻔하다.


" 중년세대는 사람도 아니냐, 청년보다 내가 살기 더 힘들다"

"청년만 지원하면 죄 없고 나이만 많은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거냐"

"청년들도 먹고살아야지요, 요즘 청년들 취업도 안되고 얼마나 힘든데"


이렇게 갑론을박을 펼친다. 자, 여기서 중요한 건 청년은 아무런 죄가 없다. 정부에게 때를 쓰면서 제발 청년만 지원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이 청년정책은 지원대상이 변하지 않은 채 결국 비대상인 그들끼리 싸우면서 서로간의 혐오감을 알아서 넓혀간다. 그리고그 사이에서 작은 걸로 또 세분화시켜 너보다 내가 더 많이 가졌다느니, 네가 그러니까 매일 얻어만 먹고 산다느니 헐뜯기 바쁘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며 내놓은 정책이고, 그걸 지향하는 사회에서 또 평등이라는 가면을 쓰고 불평등을 서로 더 강조하고 있다.

근데 이 중에는 앞서 말했듯, 그걸 평등이라고 내세우는 사람만 있으면 다행이다. 이 싸움이 조금 더 번지기 시작하면,

너 거지야? 그만 바라고, 네가 노력해서 가져!


와 같은 말을 일삼으며 서로를 헐뜯는다. 이 와중에 단 한 세대, 아무 죄 없고 그냥 혼자 뒤에서 웃고 있는 그들이 있다. 바로 청년이다. 청년들은 그냥 그 돈과 혜택만 받아 그들끼리 또 꿈을 키우며 잘 산다. 한 세대가 혜택을 보면, 그 다른 세대끼리 피 터지게 싸우고, 또 다른 세대가 혜택을 보면 그렇지 않은 세대끼리 싸우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산을 비교하고, 아파트이름을 비교하고, 교육, 입시, 외모, 직업, 학교 등급표를 나눠 또 세밀하게 그들의 세그먼트를 조성해 간다. 낙오자가 많아질수록 살아남은 자들의 얼굴엔 여유가 비친다. 이 자체가 그냥 우리 한국사회는 불평등을 사랑하는 꼴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사랑하는 이 불평등은 모든 걸 가진 최상위 계층이 아니고서야 모두가 피해를 본다.

한 대기업 사장이 연봉으로 30억을 번다해보자.

그럼 그 밑에 임원들은 “사장이 하는 것도 없으면서 왜 30억이나 받아?”라는 식의 불평을 한다. 또 그들끼리 싸운다. 그 밑의 팀장들은 또 “임원들은 가만히 앉아서 왜 10억이나 받아?” 하며 불평하며 싸운다. 그 밑에 일반 사원들은 “팀장들은 매일 정치질이나 하면서 왜 2~3억씩 받아?” 한다. 세대 간 싸우고, 서로 혐오하고, 어떻게든 그들의 준거집단에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자위한다.


자, 근데 봐라. 바뀌는 게 있나? 그들이 아무리 떠들고 비교하고, 별의별 행동을 해봤자 그 사장은 내년, 내후년에도 30억을 벌 것이고, 그 임원은 또 내년에도 10억을 벌 것이고, 팀장은 2~3억을 벌 것이고, 사원은 그에 한참 못 미칠 것이다. 결과는 그대론데 불평등 자체를 노력, 성취, 평등, 공정 이런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한 채 스스로 즐기면서 계급을 매기고 있는 것이다. 매사에.


상대를 연료 삼아서 내가 올라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지난 50년 대한민국. 이 마인드는 당연할 수 있겠다. 불평등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질 것이고, 그들은 이 불평등을 사랑할 것이고, 만약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진실로 평등한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 배척하며 현실을 부정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여유로운 북유럽이나, 미국이나, 독일이나, 영국 같은 사회가 된다면 해결될 수 있지 않냐고? 서로에게 이런 관용이 더 생길 수 있지 않냐고? 절대 이 나라에선 불가능이다. 예를 들어보자.

독일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기업을 다닌다 해서 우쭐댈 이유도 없거니와 중소기업에 다닌다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적당한 벌이로 그들의 가정을 온전하게 이루며 살아간다. 근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만약 독일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을 어느 정도 맞추자고 법제화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될까? 장담컨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반대할 정도로 절대다수가 반대할 거다. 왜냐고? 우리는 불평등을 너무나 사랑하거든. 이것이 ‘한국식 평등’이다.

내가 손흥민이 될 수는 없고, 김연아가 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될 수는 없고, 세상을 바꾸는 물리학자, 과학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부럽지 않다. 다만 내 옆에 있는 대리님보다는 잘 살고 싶고, 내 친구보다는 돈이 많고 싶고, 내 지인들에게는 조금 더 우월한 삶을 자랑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오마카세를 먹거나 호텔에 가면 인스타그램에 이를 자랑해서 올린다.

내가 현실에 불만족해도 내 위에 수많은 사람이 있든 말든, 내 밑에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일말의 만족감과 위안을 가질 수 있다.

이 현상은 상호간의 관용 없이는 해결이 안 된다고 본다. 이런 불편함을 얘기하는 것조차 누군가는 조롱할 것이다. 이 주입식 교육에 너무 세뇌돼버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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