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천동- 그냥 나만 믿고 가는 거지
최종면접 발표날. 친한 동생이 전화가 온다. 아, 이제는붙었나 보다. 역시나 떨어졌단다. 그리고는 울먹이며 더 이상 서울에서 이렇게 살지 말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냐고 푸념을 한다. 전화 너머에선 면접 때 본인의 어떤 대답이 부자연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복기하는데 바쁘다. 이렇게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떨어지는 현실에 대한 투정 반, 더 이상 새로 할 힘이 없어 스스로의 자괴감 반. 이럴 땐 현실을 직시하도록 강하게 말해주는 편이 상대를 더 배려하는 길이다. 어쭙잖은 위로는 그에게 상처도 될 수 있고, 미래에 후회할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주어진 그대로 사실만을 직시하고, 팩트로 때려줘야 정신을 차린다. 내겐 그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또 다른 내 친구는 자영업잔데 손님이 오늘 하루 달랑 두 명만 왔단다. 힘들게 회사를 퇴사하고 열심히 준비해 차린 도넛 빵집인데 요즘 경기가 많이 힘들다 한다. 대선후보자들이 토론을 해도 제일 먼저 말하는 게 뭔가. 자영업자 회생방안이다. 그만큼 경제가 폭삭 주저앉았다는 것. 그는 다른 길을 알아보려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오늘도 출근해서 커피잔을 닦고 있다. 뭐, 당연히 어떤 본인의 꿈이 생기기 전까지는 전기세라도 아껴야 하니까 그게 최선이겠지.
이렇듯 늘 우리 주변엔 낭보보단 비보가 절대적으로 많다. 확률로만 계산해도 낭보는 누군가와의 경쟁에서이기거나, 운이 아주 좋거나, 능력이 출중하거나, 타이밍이 잘 맞았거나, 아니면 주변에 드물긴 하지만 굉장한 노력파이거나 무언가 남들이 가지지 않은 어떤 것을 지녀야 하거든. 그게 아니라면 이 세상 모두가 매일 좋은 일만 가득하겠지. 대체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 중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큰 사람들 혹은 가슴속에 체게바라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비범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이 비보를 느낀다. 타인에겐 비보가 아닐 수도 있다. 단 한순간의 그 순간을 맞이하려 이 감정을 매일 하루가 다르게 겪는다. 누군가는 취업 면접에서 낙방하고, 누구는 장사가 안되고, 연인과 이별하고, 친구와 손절하고, 직장에서 깨지고,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우산도 없는데 날씨는 맨날 비만 오고, 미라클모닝은커녕 오늘도 늦게 일어난다. 하루가 이렇다.
근데 한 번이라도 성공해 본 사람은 안다. 본인의 분야에서 괄목한 업적이 있다거나, 내세울 수 있는 게 있다거나, 노력으로 자수성가를 한 사람들은 아는 것이 있다. 바로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는 것'. 내가 여자나 도박, 술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 이상 지금의 절제력을 평생 가져간다고 했을 때 우리가 인생 전체를 살면서 그냥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는 것을. 그러면 인생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세상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을 모두 잘하는 인재를 원하지 않는다. 시사, 경제, 과학, 외교, 총망라 완벽한 로봇 같은 대통령도 바라지 않는다. 특정분야에서 남들과 달리 하나라도 잘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잘 활용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가만히 있어도 그들에겐 사람이 몰린다. 딱 한 번만 이루면 되는데 만약 한번 했는데 이뤘다치자. 과연 세상이 재밌을까? 너무 값지게 느껴질까?
절대 아닐 것이다. 자의식과잉에 젖어 객관화가 결여돼 하는 것마다 실패할 확률이 크다. 본인이 최곤줄 알거든. 진짜 무서운 건 능력이 없고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만 봐도 그렇지 않나. 전자는 회사입장에서 계속 가르치고 교육하면서 조직에 융화하도록 키우면 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나아진다. 근데 후자는? 실제 능력이라도 있으면 싸가지가 없어도 필요악 같은 존재라 살려두지만 대개 후자는 그냥 잘린다.
자,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하는 이 모험이 매우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는가? 얼마나 더 잘되려고 나에게 이런 트레이닝을 시키나, 얼마나 더 파란만장하고 재밌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길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 높이 뛰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하는 법이다.
이런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고? 아니, 이 험난한 현대사회에서 피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싫어도 억지로 가져야 만한다. 정답은 딱 하나뿐. 스스로를 믿고 그냥 계속 가는 거다. 그냥 계-속. 세상이 알아줄 때까지 그 누가 뭐라 해도. 당장 조물주가 나타나 구원해 준다거나, 하늘에서 몇십억이 떨어지거나 하는 기적은 절대 본인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허망한 노력 없는 기대 따위는 버리고 가까이의 달콤한 유혹이든 뭐든 다 필요 없이 결국은 이 정답으로 귀결된다. 그 어떤병신들이 뭐라 해도 그냥 나 스스로를 믿고 가면 된다.어차피 내가 잘 돼 봐야 진정 어린 축하를 건네는 사람은 몇 없다. 지금 내가 힘든 이 순간을 모두 즐기고 있다. 주변에 안 좋은 사람만 있는 거 아니냐고? 숨기고 있을 뿐 다 그렇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다. 남이 잘되면불안감, 남이 못되거나 뒤처지면 안도감. 그냥 외우면 된다.
그냥 떳떳하게 누가 뭐라 하든 눈, 귀 닫고 계속하면 된다. 그 꿈은 언젠가 이룬다. 이건 명백한 진리다.
그러니 다시 일어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