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면 욕먹는 자본주의
‘살아남기 시리즈‘를 어릴 적 많이 본 적 있을 것이다. 서점에 가거나 친구집에 놀러 가면 시리즈별로 다 가지고 있진 않더라도 꼭 한 권씩은 눈에 띄던 그 책들. 대표적으로 ’무인도에서 살아남기‘가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특정분야에 관심 있는 마니아층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중이다. 기생충에서 살아남기, 정글에서 살아남기, AI에서 살아남기, 이상기후에서 살아남기,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등 이 살아남기 시리즈는 현대사회에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고 자부한다. 빠른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 뒤에 자리 잡은 부작용은 아무리 가리려 애를 써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일 테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이 살아남기 시리즈에서 내가 직접 참여하고 싶은 시리즈는 바로 ‘아닌척하며 살아남기’다. 친구나 연인 등 인간관계에서, 회사에서, 본인의 사업에서, 금전적 이슈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절대원칙과 같다. 이는 현대인의 삶을 가장 직설적으로 조망하는 주제가 아닐까 한다.
가령, 내가 서울에 아파트를 샀다고 하자. 아파트를 샀다고 알리는 순간 주변 지인이나 회사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그리고 얼마에 샀느니, 어디에 샀느니,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느니, 누군가는 거기 말고 저기를 샀어야지 훈수를 두고, 누군가는 본인의 처지를 한탄하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나를 치켜세워준다.
자,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이때 남들의 칭찬과 부러움에 조금이라도 들떠 본인의 자랑을 하거나 사실대로 오픈을 하면 이제 본인을 제외하고 본인을 둘러싼 모두는 시간이 흐를수록 역적이 된다. 시기와 질투가 쌓여 본인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뒷담화를 한다. 사실과 다른 소문이 퍼지기도 하고, 지나치게 살이 붙여져 이제 퇴사를 준비 중이라느니 이런 소리를 듣게 된다. 한번이라고 직접 겪어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실감할 것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본인보다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아예 대체 불가능한 즉, 본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 가령손흥민이나, 유명 연예인, 정치인 이들은 번외로 둔다. 최소한 UFC 이종격투기마냥 체급이 맞고 나랑 비슷한환경에 놓인 사람들과 비교를 한다. 내가 잘 풀리면 그럼 왜 싫어하냐. 본인의 위치가 위태롭거나, 본인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대부분 싫어한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을 우선 선택한다. 그게 바로말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어떤 ‘말’로 본인을 아무 이유 없이 까내리기 시작하는 것. 나는 ‘서울에 아파트를 매수한 것’ 말고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는꼭 부동산이 아니더라도 가지고 있는 주식이 폭등했다거나, 어떤 계기로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그런 말 자체는 겉으로만 표현하지 않을 뿐, 질투와 시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직접 내 아파트에 들어가는 모습이 들키지 않는 이상 아닌 척하면 된다. 사도 안 산척, 주식을 해도 안 하는 척, 돈을 벌어도 안 번 척, 연봉이 높아도 낮은 척. 아주 조용히 그렇게 나만의 것을 조금씩 만들어가면서 내 목표를 이루면 그만이다. 내가 얼마 전 직접 겪은 예시를 말해주겠다. 친구가 묻는다.
“야, 너네 회사는 성과급도 많이 주고 진짜 좋겠다, 얼마야?“
나는 그럼 이렇게 대답한다. “에이, 얼마 안 줘, 하나도 좋은 회사 아니야. 너도 넣으면 바로 올 수 있어”
그러면 친구는 괜스레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얘기로 넘어간다. 내가 만약 거기서, “응, 성과급은 얼마고,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고, 경쟁률이 얼마야“ 라고 말했다 치자. 그는 어딜 가서 분명히 한 번쯤은 나를 질투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건방진 사람으로 나를 흉볼수 있다. 안 그럴 것 같나? 다 그렇다. 뱉는 건 매우 쉽고 주워 담는 건 매우 어려운 게 말이거든.
내게 발생한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힘든 적이 있는가? 그러면 애써 안 힘든 척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척. 내가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 본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 겉으로는 위로해 주면서 오히려 좋아한다. 그리고 이미 발생한 결과에 근거 없는 원인을 갖다 붙인다. 결과는 확실하니까 어떤 근거를 붙여도 그럴싸하거든. 그러다 이제 본인 귀에 나중에 들리는 건 나 스스로 자초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고? 본인은 당연히 상처가 배가 된다. 진심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관계에 대한 상실감과 좌절감마저 하늘을 찌른다.
누군가는 요즘은 본인을 드러내야만 성공하는 시대 아니냐고 반박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나를 아무도 몰라준다며 자기 PR시대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자기 PR을할 수 있는 전제는 두 가지라 생각하는데 최소한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한다. 본인이 적이 생겨도 상관없다는 강한 맵집과 진짜 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때만 이 PR이 유효하고 본인이 다치지 않는다. 적이 있어도 단 하나도 흔들리지 않을 멘탈은 본인의 능력이 조금 모자라도 이를 방어해 주고, 능력이 미치도록 월등하면 주변에 적이 애초에 생기지 않는다. 결과가 너무 좋으니까 그 어떤 잘잘못을 갖다 붙일 게 없거든. 칭찬은 하기 싫으니 다들 그냥 닥치고 있다.
어중간하면 오히려 독이다. 내가 내 말에 책임을 못 진 책임감하나 없는 사람이 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사람 셋만 모여도 정치를 한다 하지 않나. 그런 어떤 조직에서 한 사람에게 낙인이 찍히면 그걸 벗겨내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스라이팅은 덤이고, 스스로가 작아지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돈이 많다고 하면 어디서 어떻게 알고 보험하나 들라며 영업인들이 꼬이고, 연락하나 없던 동창에게 전화가 온다. 취업을 했거나 승진을 하면 한턱쏘라고 한턱 쏠 때까지 끝까지 안 잊고 카톡이 온다. 본인이 얻을 무언가가 있을 땐 살갑게 하고, 조금이라도 그게 나 때문에 피해가 간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서는 게 사람이다. 어느 종착지를 가고 있는 버스에 함께 탔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구는 중간에 내리고, 누구는 끝까지 가고, 또 다른 누구는 중간에서 타고. 그 종착지에 도착할때만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특히 사회생활에선 더더욱.
우리 모두는 이처럼 각자의 세계에서 산다. 친구도 각자의 이익 속에 서로를 끈끈히 지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하나 이상은 있기 때문에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럴 때 ‘아무것도 아닌 척’을 하면 진짜 나를 끌어줄 사람이 누군지,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옥석을 가를 수 있다.
내 친구하나를 소개하겠다. 내 친구는 직장에서 매우 잘 나간다.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서 부장 직함을 달면서 승승장구한다. 어제 그와 얘기하다가 나눈 대화의 요점은 그는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할 때 매일 하늘에 기도하는 게 있다고 한다. 바로,
오늘은 내 이름이 5번 미만으로 불리길.
이게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잘 안 보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척, 그렇게 잘 나가도 아무것도 없는 척, 묵묵하고 조용히 본인 목표만 그렇게 쌓아가면서 사는 것. 그게 현대사회 이 피 끓는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남는 건 결국 딱 두 개뿐. 가족과 내가 번 돈.이 두 가지다. 그리고 전쟁에서 조용히 나와 진짜 좋은 일이 있거나, 진짜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있을 때 내가 원하는 한두 사람에게 속마음 다 털어놓으며 소주 한잔 하는 게 그게 극락이라 본다.
스레드, 유튜브, 각종 커뮤니티 등 요즘 왜 사람들이 폰만 쥐면서 핸드폰 중독자가 되어 사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주변인들의 마인드셋이 어떻게 과거와 달리 변화해 왔는지를 보자. 예민하고, 늘 화가 많고, 서로 시비가 많이 붙으며 고충도 많고, 각자의 삶이 매우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보기 힘들다. 왜? 그들이 폰으로보는 세상은 온갖 본인 자랑글 밖에 없다. ‘와, 진짜 대한민국에 이렇게 부자가 많았다고?‘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다 대기업 다니고, 연봉1억에, 몇억을 모았고, 죄다 서울에 살고, 취미도 많고 여행도 즐긴다. 비교를 차치하고 왜 이런 글이 애초에 온라인에 올라오는지를 생각해보자. 현실에서는 그런 말을 못하니 그 간지러움을 온라인에라도 푸는 거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돈 많다고 자랑안하면 몸이 근질거리니까. 그래서 걸러들으면 된다.
오늘부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거지, 회사 아니면 믿을 거 하나 없는 직장인 1, 엄청 쪼들리게 육아하는 워킹맘,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이 잘난 것 하나 없는 청년 2, 영끌해서 겨우 1주택 실거주 평생 대출금 갚아나가야 하는 집안의 가장 3, 주말에 아무런 취미 없이 집에 누워 쉬기만 하는 사람 4로 비치게 온 힘을 다하자.
내 말을 속았다 셈 치고 딱 한 번만 믿어봐라. 그리고 혼자 집에서 조용히, 아주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박장대소하며 좋은 일에 기뻐하면 그게 자본주의의 승리자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