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아졌는가
작년 여름,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년 추석 가장 긴 연휴로 꼽아, 해외여행 비행기 전석 매진'
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나. 아마 다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뭐야, 아직 한참 남았잖아'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다른 기사로 눈길을 돌렸다. 보통 대부분은 전혀 관심 없는 주제의 글이나 영상이 있다 하더라도 3초 이상은 어떤 얘기를 하는지 지켜보고 눈길이라도 주는 편인데 바로 넘긴다. 그 정도로 지금 생각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 당연 그 와중에는 일 년 몇 개월 후의 여행을 미리 계획하고, 비행기를알아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인생은 당장 내일도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걸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날이 왔다. 당장 추석이 10월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이 추석을 맞이하는 기분은 꽤나 남다르다. 그때 그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간의 흐름 자체가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이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이 와중에 나는 또 내년 추석을 얕잡아볼 것이고, 그 얕잡아본 추석은 체감상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성큼 내 앞으로 와 있을 거다.
그사이 빈도와 정도의 차이일 뿐, 어떤 좋은 일들과 안 좋은 일이 우리에게 수없이 닥칠 것이고, 그 일은 어떤 일인지 조금의 가늠도 서지 않는다.
딱 하나 확실한 건 우리는 1년 더 늙어간다는 것. 건강은 더 안 좋아질 것이고, 체력은 더 없어질 것이고, 젊음이란 것이 시간이 정비례해 내 곁을 떠날 것이다. 그 사이 누군가는 의미 없는 야근에 어깨가 축 처져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수도, 긴 연애의 끝에서 그와 함께한 지나온 과거에서 허무를 발견할 수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같은 걸 반복해야 하는 데 매우 큰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하나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움켜쥐기 위해선 결국 우리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잃지 않고 얻어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물론 본인이 익숙한 것에서 이를 얻을 수도 있다. 재테크를 잘해 어떻게 돈을 굴려야 하는지 알기에 돈이 돈을 낳는 복리효과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업무를 더 깊이 파고들어가 회사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정도의 지식을 얻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한 스포츠를 디지게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한다거나. 잘생겼거나, 이뻐 자기 관리에 특출 나다거나.
근데 대부분 꾸준함 없이는 그 익숙함에 도태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확률이 줄어간다. 그리고 본인이 잘하고 아는 분야에만 익숙해져 시야가 좁아진다. 익숙하니, 잘하니 편한 것만 쫓는다. 그렇기에 바라보는 세상이 좁아진다. 스포츠를 잘하는 사람은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존경스럽지 않다. A분야의 전문가는 B분야의 전문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점점 본인의 생각과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이 정답인 줄 안다. 그렇게 아집에 갇혀 늙어버린다.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햇지수단은 안전자산인 금과 달러이듯, 늙음이라는 것의 햇지수단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아닐까. 갓난아기에게 이 세상은 모든 게 신기한 동화 속 혹은 야생 속 세계다. 그래서 신기해서 다 만져보고, 다 말 걸고, 어떤 무언가를 함에있어서 신선함이 100%에 달한다. 그래서 매일이 즐겁고 뭘 하든 신기하다. 이를 함께 하는 부모 역시, 아기의 첫 번째 경험을 함께 맞이해 주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에너지와 기쁨이 전달되니 결국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표현을 한다. 모든 게 새로우니 모든 게 의미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추석이 올 때까지 어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져봤을까. 유튜브를 할 것이라고 고프로를 사서 서랍 속에 몇 개월간 박아뒀던 누군가가 생각난다.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과학 관련 책을 사서 한 번도 읽지 않고 먼지가 쌓여가는 서랍장을 바라본다. 올해는 이직해야지, 이직해야지 입에 달고 살면서 매일 아침을 산송장처럼 출근하는 동료를 바라본다. 괜찮다고? 아. 오히려 그들과 난 각자 새로운 걸 조금이나마 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으니 오히려 다행인 걸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지금으로부터 일 년 뒤는 이 글의 다짐을 흐뭇해하는 추석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