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다는 것의 정의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글을 읽고 쓰는 건 어떤 명징한 하나의 이유가 내포되어 있다. 소설을 읽는다고 한다면 내게 가지고 있지 않은 상상력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유희와 감탄을, 수필은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에 적용하고, 정보성 글은 내가 모르는 정보를 익힘으로써 삶에 도움 되는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거겠지.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 이론에 추가된 개념도 사실 이런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호기심은 곧 인간의 자아실현에 직관적으로 도움을 주니 어떻게든 무슨 글이라도 서로 쓰고, 공유하고, 배우고, 알리는 거다. 그래서 브런치를 비롯, 유튜브, 스레드, 인스타그램 등온갖 플랫폼이 돈을 쓸어가고 생산자에게 푼돈이라도 떨어지니 너도나도 유튜브 하겠다고 달려드는 거다.
자, 그럼 이걸 단순히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지식탐구를 위한 관점에서만 바라봐야 할까? 타인의 삶이 별로 궁금하지 않고 내가 기존에 하던 취미와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이들도 엄청 많을 텐데? 내 관심사에만 그냥 몰두할 수도 있잖아. 경제와 재테크에 1도 관심 없는 사람이 있는데 시간이 남을 땐 자전거를 탄다 치자.
이 사람은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본인 인생 잘 살고 있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걸로 성공한 삶이다. 근데 이 사람이 경제 유튜버 볼까? 경제 관련 책 굳이 읽을까? 절대 안 읽는다. 그냥 오늘도 내일도 일하고 자전거 타고 잠자고 내가 관심 있고 꼭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할 것이다. 뭐 그렇다고 돈을 못 딴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본인이 다 감수하면서 본인이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다.
자, 그렇다면 왜 무언가를 계속 읽고, 쓰고, 인생을 더 본인보다 많이 산 선배나 스승에게 조언을 구하고, 공부하고 하는 걸까. 결국은 ‘잃는 게 두려운 것’이다.
무언가를 엄청 얻기보다, 내가 현재 가진 어떤 것을 잃는 게 두려운 마음이 내포되어 있기에 더 배우고, 더 읽고, 공부하고 하는 거다. 치킨게임으로 점철된 이 자본주의는 자연스레 경쟁을 낳고, 나보다 더 우월한 누군가가 내 것을 가져가고, 내 위치가 상실되거나 자산이 줄어들면 그 자리엔 불안이 자리한다. 요즘같이 모든 자산이 오르는 시점에 돈을 딴 사람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투자를 안 한 사람도 포모현상을 느끼는데 누군가가 본인보다 더 잘나서 내것을 뺏어간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나. 하나의 큰 불안은 매사에 불안정을 낳고, 모든 일에 집중을 못해하는 일마다 죽 쑤기 바쁘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나는 또 잃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공부하고, 글을 쓰고 읽어야 한다. 지적 호기심을 향유하고, 호기심의 문제해결은 사실 둘째, 셋째 문제다. 자기 전 단 10분이라도 책을 읽는 것,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글 한자 써보고 잠자리에 드는 것, 운전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오디오북을 듣는 것,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늘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 아침에 수첩을 가방에 넣는 것 이 모든 일상의 작은 시작은 어떻게든 내 것과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플랫폼을 사랑한다. 하루에 수많은 유혹거리를 뿌리치고 본인만의 의지로만 지금 이 흰 공백을 채워가고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본인을 지키기 위한 목적 단 하나로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좋은 모습을 보이고싶어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잃는 게 두렵다는 마음 자체를 숨기고 사는 비열한 사람일 수 있다. 아니면 미움받을 용기 따위 없는 쿠크다스멘탈이거나, 혹은 아직은 사회의 때가 단 하나도 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이거나. 대놓고 우리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난 손해 보는 게 너무 두렵다고.
그래서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면 들수록 투자성향이나, 삶을 대하는 모든 시각이 보수적으로 바뀐다. 하이 리스크가 하이리턴을 불러올지언정, 작게 벌어도 좋으니안정성을 추구하는 것도 내가 지켜야 할 것, 내 자산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일 테다.
경제학용어 중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있다. 소비자가재화나 서비스를 추가로 소비할 때마다 드는 만족감이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계속 가지고 계속 얻으면 그 효용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근데 손해 보는 건전혀 다른 얘기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많이 잃으면 잃을수록 현실적으로 재기가 더 어려워지고 삶의 난이도는 더 극적으로 올라간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 많이 얻어서, 취득해서의 기쁨보다 잃는 것의 두려움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주식으로 1억, 아니 5억 벌면 기분 좋을 것 같지? 그래,기분은 좋다. 특히나 지금 같은 불장에서는 그런 사람 널리고 널렸을 거다. 근데 5억번다고 인생 안 바뀐다. 자, 근데 반대로 1천만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하자.
1억의 기쁨보다 손실의 아픔이 훨씬 덜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돈이 아깝고 너무 후회스럽다. 그게 1억이 되고, 2억이 되고, 똑같이 번 액수만큼 -5억이 어느순간 됐다고 하자. +5억 때의 기쁨과 그 감정의 파고가상응할까? 절대 아니.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그 파고는 격차가 심해 술과 담배, 마약을 입에 대지 않고서는 맨 정신으로 사는 시간이 현저히 적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고통스럽다.
삶은 대개 우연에서 생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대개우연적으로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그중에서 좋은 일은기껏해야 2~3, 나머지 6~7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안 좋은 일의 연속이다. 이 간헐적인 2~3이라도 인생에서 지켜내기 위해서, 발생할 가능성이라도 생기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짜 마인드는 '잃는 것의 두려움'일지 모른다. 그걸 자본주의에서는 직설적이고투박하게 지적향유나, 호기심, 인지적 욕구라 부르는 걸지도.
그래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들이 나는 요즘 참 무섭다. 아니면 한 가지만 어설프게 배워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나. 전자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무자비하며, 후자는 그 한 가지가 세상의 전부라 믿기 때문에 뒤가 없다. 내일이 없다.
그래서 그것이 설령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난 그런 사람들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다. 어차피 평범한 우리의 삶은 또 무언가를 잃는 것이 두려울 테니까. 이러면 한 가지라도 더 배워 열심히 살아갈 강한 동기가 생긴다.
가장 좋은 건 이 과정 자체를 소중히 즐겨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