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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만족 못하는 이야기

어떤 삶을 사신 겁니까

by 홍그리

지난 8월부터니까 정확히 두 달 만에 주식으로 3억을 번 내 친구가 있다. 모두는 그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 믿겠지만 가까이서 보는 내겐 결코 아니다. 그에게 3억이라는 숫자는 남들이 생각하는 그 3억이 아니거든. 반포에 혹은 강남에 한평, 두 평 남짓 금액으로밖에환산이 안된다. 100억정도는 있어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누구는 3억이라는 숫자가 부동산 매매를 할 때 금액일 수도, 평생을 모아야 만질 수 있는 금액일지도, 혹은 평생을 먹고살아도 전혀 부족함 없는 금액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직 실현수익은 아닐지언정,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아마 그는 수익실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왜? 본인이 만족하는 금액이 와야만 ‘매도’ 버튼을 누를 테니까. 아주 운이 좋게도 그 기간이 빨리 왔다한들 현재 그가 생각하는 만족하는 인생이 과연 올진 미지수다.


또 다른 지인은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연봉이 얼만지, 복지는 어떤지 열변을 토하며 앞으로의 미래가 창창하기만 하다. 소개팅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만나면 기분 좋게 밥도 한 번씩 산다. 전형적인 대기업 입사 중에서도 ’좋은 예시‘다. 흔히 자랑비라고 하는데, 본인이 잘났거나, 운 좋게 돈을 땄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단톡방이나 SNS로 우월감을 과시하고자자랑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 집단에 속해있는 구성원들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것 하나 없으면서 이 친구는 밥이라도 사지 않나. 그럼 자랑을 얼마든지 들어줄 용의가 있다. 근데 그는 이런 자랑 속에서도 근심이 하나 있다. 동기보다 더 좋은, 주요 요직부서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한탄이다. 같이 입사를 했는데도, 동기는 요직에 있고 본인생각에 본인은 그거보다 못한 한직에 있다는 열등감으로 깊은 한숨을 쉰다. 월급도 많고 겉으로는 다 좋은데다 모두가 치켜세워주지만 완벽한 육각형은 결코 없으니 본인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결핍이 계속 트라우마로 남는것. 누구는 그 대기업에 들어가고자 밤낮을 세우며 자기소개서를 고치고,인턴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해외연수를 가고, 그 기업 자체가 목표인 이들도 많은데 ’운이 좋게도‘ 그는 크게 몰입하지 않은 채 자소서를 써서 냈는데 합격한 케이스다. 그들은 이 친구를 부러워하고, 이 친구는 자조 섞인 한탄으로 한숨을 쉬고. 결국 각자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산다. 또 가까운 미래에 그가 요직부서에 있는 동기와 똑같은 부서로 간다면, 지금 그가 원했던 것만큼 진정으로 삶에서 온전히 충만함을 느낄까? 만족할 수 있을까? 그때는 상사욕부터 시작해서, 온갖 또 다른불만이 생겨날지도 모를일이다. 최악의 상황을 감히 예상하자면 오히려 과거 한직에 있었던 그때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왜냐고? 내 옆, 뒤, 앞 모두가 같은 부서사람이거든. 똑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거든. 그때는 내가 가진 것이 보이지 않고 내가 가지지 않은 더 높은 무언가를 바란다. 그리고 또 주변인과 본인을 비교하면서 고심하고, 술자리에서 깊은 한숨을 과거의 본인처럼 똑같이 쉬어댈 것이다.


또 다른 지인은 대기업도 아니고 이름을 들으면 아무도 모르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민족 대명절 추석, 역대급 연휴에 상여금 하나 없다. 주식으로 돈을 불리지도 않았다. 금융 문외한에 현금만 가지고 있어 초인플레이션인 지금 온전히 숫자로 평가되는 자산영역에서는 감가를 처맞고 있다. 그러면 모두가 생각한다. 아, 이 친구는 지금 남들 다 돈 버는 시대에 포모현상 때문에 밤에 잠도 안 오고 매일 출근길 현타를 느끼고 있진 않을까 하고. 근데 아니?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 돈은 좀 부족해도 퇴근 후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행복해하고, 본인을 기다리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해한다. 꿈이 있다면 내 가족이 건강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지금 사는 곳(지방)에 내 집마련을 언젠가 해보고싶다는 게 꿈이라고. 심지어 당장도 아니다. 언젠가.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 커 둘째를조만간 계획 중이라 한다. 이것도 어찌 보면 현재 아들이 하나 있다는 만족 속에서도 또 다른 더 큰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일지도. 그는 둘째를 낳고서도 또 그 만족이 두 배가 되었다면, 너무 행복하다면 셋째를 또 생각해 보겠지. 그럼 그땐 삶에 아무런 고민이 없고 만사가 편할까? 돈이 부족해도 돈 문제에 엮이지도, 오로지 가족의 안위와 행복에만 만족해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자리한다.


자, 내 주위 수많은 사람들 중 딱 이 세사람만 보고도 어떤 생각이 드나. 이 게임의 끝은 하나다. 결국 내가 지금 만족해야 끝나는 게임이다. 지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단 1이라도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불행한 감정은 평생 따라다닌다. 그리고 불안과 걱정이 함께 오기 시작한다. 조급함이 쌓여 일을 그릇되게 하며 본인 주변을 흩트린다.

꿈은 꿈으로만 두었을 때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이유가 뭘까. 그 꿈을 이뤘을 때 내가 기대하고 예상했던 만족이 안 올 확률이 아주 높거든. 그래서 그 꿈이 오기전에 ‘지금’ 만족을 해야 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행복할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흐르는 대로. 되는대로. 그게 아니면 평생 내 숨이 멎을 때까지 이 무한루프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강남 아파트? 대기업? 몇 억의 돈? 가정의 평화? 건강? 내 삶의 모든 기준과 영역을 아우르는 것들에 결핍이 없는 이는 없다. 나는 그 몇 가지의 결핍 중 몇 개를 지금 만족하고 있나. 그걸 단 하나도 빠짐없이 만족할 때까지 이 게임은 쭉 그냥 이어진다. 결국 그 결핍을 누가 더 빨리 100% 만족하느냐가 단 하나뿐인 삶을 행복하게 결정짓는 유일한 잣대라 본다.


오늘을 만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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