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문에 휘둘리지 않는 법

인생은 독고다이

by 홍그리

“야, 걔 벌써 이혼했대”

”투자 잘못해서 망했다던데?“

“아직도 취업 못해서 공부하고 있다네”

“몇 달째 연락 안 되고 잠수 탔다는데?“

“회사 또 그만뒀대“


세명 이상이 모이면 각자의 근황을 짧게 마무리한 뒤 이런 말을 숱하게 듣게 된다. 또는 내가 하게 된다. 발화자가 누가 됐든 이는 그 발화자의 사람 됨됨이나 인성문제가 아니다. 흉을 보려는 것도 아니고 그 대상이 망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냥’ 말하는 거다. 진짜 그냥.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침묵이 두려워 시간을 채우기 위한 즉, 킬링타임뿐인 것이다.

누구나 둘 이상 있으면 침묵보다는 뭔가 같이 알고 있는 공통점을 말하는 게 재밌고 좋거든.


한국사회는 과잉된 정보, 인정욕구가 기반이 된 사회이기에 무조건 비교가 수반된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마포가 그렇게 뜬다더라’는 과잉정보가 귀에 들어온다. 그러면 지인 누군가 마포아파트를 샀다고 자랑한다. 이 자랑은 인정욕구가 기반이 된다. 집 없는 누군가는 본인의 바닥과 마포아파트를 산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파묻히고, 더 좋은 강남에 사는 사람은 ‘그래도 아직은’ 우월감이 드는 그런 식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채워야 한다면, 적어도 내 앞의 상대방과 최소 한시 간이상은 커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타인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제삼자, 즉 타인의 근황이 곧 비교가 된다. 정확히는 본인보다 못한 근황을 가진 지인의 얘기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대화는 모두가 깔깔 웃고 행복해하는 얘기가 된다. 특히 타인이 뭔가가 못했거나, 안 됐을 때 더 그렇다. 설령 잘 된다 하더라도 나보다 잘 나가면 안 된다. 그럼 그건 더 이상 재밌는 얘기가 아니다. 비교군과의 대결에서 내가 지고 있는 것이 되고, 내가 이때까지 열심히 살았던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거든. 그래서 타인의 불행으로 가십을 채운다. 좋은 얘기는 절대 할 수 없다.


친구만 이럴까. 사회생활은 더하다. 친구는 그 대상을 알고 있는 사람 한정이지만,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는 회사에서는 이런 가십이 속도로 치자면 거의 날아다닌다. 흔히 소문이라고 한다. 특히, 친구나 지인관계에서는 서로 이해관계를 철저히 계산해 손익을 따지고 할 필요가 없지만, 회사는 옆사람을 내가 밟고 올라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만약 안 좋은 소문이라면 퍼 나르는 데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좋은 소문이란 회사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마음 편하다. 좋은 소문은 퍼져봤자 어떻게든 내가 돋보일 수 없는 구조로 흐르기 마련이거든. 그 좋은 소문의 대상이 잘되길 썩 바라지 않는다.

(설령 그 사람이 나와 좋은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입조심을 해야 하는 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쉽게 믿으면 안 된다.


자, 문제는 이 소문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이 소문을 퍼 나르는 사람들. 일명 ‘불행 수집가‘다. 남의 불행만 기가 막히게 찾아다니고, 친구나 지인들 사이에서는 호사가, 회사에서는 소식통이라고 불린다. 간간히

“너 안 좋은 소문 들리던데?” 혹은,


“너 요즘 뒤에서 말나와”


같이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한 누군가는 이 말을 경험했을 것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이 불행수집가라 보면 된다. 본인에게 들리던 말던 안 좋은 소문은 결국 본인이 퍼 나른 것이며, 뒤에서 말 나온다는 건 본인이 더 신나서 말하고 다녔을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불행수집가 곁에 있다면 우리 각자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똑같이 불행해진다. 불행을 몰고 다니기에 그 옆에서 당연히 나도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이런 부류들은 내가 회사를 다니든, 사업을 하든, 공부를 하든, 백수든 그 어떤 환경에서든 바퀴벌레처럼 꼭 한두 명 이상은 섞여있으니, 본인이 노력한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냥 피하는 방법뿐이다. 이제는 그 어떤 가십에도 흔들리지 않을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자. 그러기에도 시간은 너무 짧고,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벌써 올해가 두 달 남았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저 ‘어차피 다 사라질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그 안에서 나도 바뀌고, 세상도 변한다. 그 자리에 있는사람도 변한다. 이 가변적인 세상에서 어차피 사라질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금이 왜 계속 값어치가 올라가는가. 달러가 왜 폭등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경제가 어려울 때 그만큼 희소성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마인드셋을 가지는 것.


아무도 믿을 사람 없이, 인생은 그냥 혼자다. 이해가 가지 않거나,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그냥 외우면 된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다.

keyword
화,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