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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결국 남는 것들

유한한 젊음과 시간

by 홍그리

아무것도 없으면 무언가를 선택할 때 절대 고민하지 않는다. 어차피 가진 게 없기 때문에 하나라도 선택해서 뭐라도 얻으면 그만이거든. 근데 가진 게 많으면? 내가 천 원을 주식에 투자한다 했을 때 본인은 넣은 지도 까먹을 수 있겠지만 그게 천만 원, 1억이라면? 어떤 종목에 넣어야 할지 깊이 망설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신중히 선택한다. 그 이유는 딱 하나뿐. 내가 가진 이 돈을 얻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잃지 않기 위해서. 가진 게 많을수록,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무언가는 이제 서서히 버거워진다.


유럽은 20세기 아니,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를 주름잡았다. G7에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7개국 중 4개국이 들어가 있고, EU라는 거대 연합아래 세계최대시장을 만든다. 경제면 경제, 문화면 문화, 그들만의 독자적인 거대 리그를 만들었다. 아무도 무시하거나, 그들의 권위를 꺾지 못했다. 딱 한나라 빼고는.

일단 사상이나 철학, 예술, 문화를 중심으로 인류의 자산 대부분이 유럽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유럽여행을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전 세계에서 매일같이 관광객으로 넘쳐나 외화벌이를 한다는 걸.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은 3일은 둘러봐야만 겨우 한 바퀴를 제대로 돈다.



자 근데 지금은 어떤가. 미국과 EU의 경제격차는 비교자체가 안된다. 영국의 국가 전체 GDP가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맞먹는 수준이다. 어떻게 미국은 짧은 시간 안에 괄목한 성장을 이뤄냈고, 유럽은 나날이 뒤처지고 있을까. 왜 전 세계 시가총액 기업 1위부터 500위까지 줄을 세웠을 때 미국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유럽은 명함도 못 내미는 걸까? 지금 우리가 애초에 떠올리는 유럽에 생각나는 대기업이 있는지를 보자. 미국은 아마존, 구글, 엔비디아, 애플 바로 생각도 않고 열개는말할 수 있다. 전기차는 이미 테슬라와 중국이 전 세계를 휘어잡았고, 유럽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유럽은 기껏 깊이 생각해야 반도체기업 ASML, 이케아, SAP, 폭스바겐, LVMH 정도? 심지어 유망한 신생 스타트업이 있으면 미국은 그냥 사들인다. 자연스레 미국의 자회사가 되는 격이다. 유럽의 모든 산업이 그렇다. 쫓아도 벌어지고, 좀 큰다 싶으면 먹힌다.

영국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났는데 왜 현재는 모든 자본이 미국으로 쏠리는지 이유를 살펴보자. 유럽은 너무 많이 가져서 도전과 변화에 취약해 정체됐고, 미국은 끊임없이 변화를 주면서 도전하고 성장을 한 것. 그 차이다. 하루에도 갑자기 해고를 시키거나 신규로 채용하는 고용의 유연함과 미래산업에 대한 대처, 모든 것이 미국은 활발하나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지금도 부유한 데다 새로 무언가를 한다해봤자 각종 규제와 법안에 발목 잡혀있거든.


현재의 유럽을 우리 삶에 빗댄다면 정체되었을 때 각자의 미래를 말해주는 격이다. 2030은 인생 전체를 보면 전례 없이 가장 많이 가진 세대라 여긴다. 금전적으로는 4050보다 못하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책임의 부여가 다소 적으며, 마음먹으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만큼 의식주에 전혀 지장이 없고, 건강한 체력과, 젊음, 빠릿빠릿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모두가 청년세대를 부러워한다. 그 부러워하는 요점은 현재 많이 가지고 있다는 누구나 우러러보는 위치가 아니라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행동이다. 유럽도 그 가능성이 있었지만 정체되고, 안주하고, 잘할 수 있음에도 고리타분한 원칙이나, 습관, 의례적인 법에 부딪혀 지금은 사실상 관광으로 밖에 당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본인이 생각하는 것이 정답으로 규정하며 유연함을 잃는사람처럼 마치 유럽은 지금은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돈이면 돈, 시간이면 시간, 가족이면 가족, 이 주위를 둘러싼 작은 것부터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할 때 지금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오늘 회사를 갔다 와 회사를 다녀왔다는 합리화로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폰만 만지고 있다면. 친구와 술을 마시며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로 시간을 버리고 있다면. 시간은 그렇게'만' 흘러가는 것이다. 십 년 뒤에도 가진 것 하나 없이 회사를 다녀와 (아, 승진은 했을지도모르겠다) 폰을 만지고 있을 것이고, 술로 의미 없는 나날들을 날리고 있겠지. 그리고는 얘기하겠지.


세월 참 빠르다.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됐다니.


문제는 이렇게 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있다. 하루 안 한다 한들 삶이 부정적으로 바뀌진 않고 한다한들 좋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한 사람의 미래는 현재의 유럽과 같이 그려진다. 근데 유럽처럼 덩치가 비대해지면 그때는 하고 싶어도 그 어떤 도전이나 선택을 마음껏 못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내 전재산을 잃을 수도 있으니 두렵거든.


자, 흐르는 시간은 잡을 수 없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시간은 연료처럼 끊임없이 계속 소비해야만 한다. 공평하게 누군가에게나 24시간. 근데 연료가 소비되어야만 자동차가 앞으로 가듯, 어차피 소비해야만한다면 조금 더 의미 있게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연료는 당연 청년들에겐 ‘경험’ 일 테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다면 재테크 책을 읽고, 절약저축을 어떻게 생활화할 건지 계획이라도 세워봤는가. 취득하고 싶은 자격증이 있거나,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면 출퇴근길 한 번이라도 영어 팟캐스트를 듣거나, 퇴근 후 학원을 다녀봤냐는 말이다.

더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하고 싶은 이때, 지금도 어떻게 흐르는 내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 실제로 행하는 누군가가 있다. 반대로 피곤하다고 누워만 있는 누군가가 있다. 이 행동이 모여 결국 내 인생이 유럽이 될 건지, 미국이 될 건지를결정하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오늘은 퇴근하고 뭘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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