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 하루도 그냥 해프닝

복잡한 건 쉽게 가자고!

by 홍그리

뭔가 준비가 되어있고, 하나둘 본인이 원하는 걸 이루는 이들을 주변에서 볼 때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플랜 B가 명확하다는 것. 서구권에서는 이를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이라고 한다. 이 비상계획은 문제해결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기를 관리하는데 매우 효과적인데, 가령 특정한 문제가 '갑자기' 발생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즉, 이들은 대책을 늘 가슴속에 품고 있다. 사실 말이 비상계획이지, 사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내가 이루고자 하는 무언가에 열중하면서 이 비상계획을 아주 구체적으로 품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쪼록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이런 면밀함과 꼼꼼함이 본인이 몸담은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발판이 된다. 그 어떤 빈틈을 보이지 않을 테니.

톡톡 튀는 이런 사람이 아닐지라도, 사실 우리가 플랜 B와 관련해 일상 속에서 겪는 문제는 비일비재하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예를 들어보자. 그는 회사에서 A프로젝트를 맡아하고 있는데 결과가 썩 좋지 않다. 안 됐을 때 그냥 안 됐다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다, 다른 협력사를 알아보겠다, 예상보다 성과가 안 나오는데 다른 시도를 해보겠다고 상사에게 보고하면 상사는 분명히 본인한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걸 미리 생각도 안 하고 준비도 안 하고, 지금 와서 나한테 보고하는 거야? 나보고 어쩌라고?


매몰차게 맞받아친다. 상사도 책임 면피해야 되니까. 아주 높은 확률로 그렇다. 만약 품어주는 상사가 있다면 인복이 훌륭한 거다. 그 상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주 당연하게 플랜비를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외에도 계획의 장단기를 막론하고 또 다른 플랜비가 없으면 우리는 늘 매사에 불안해한다.


공무원시험준비를 하는 B가 있다고 하자. 이 긴 수험생활의 끝은 언제일지, 과연 나는 몇 년 안에 붙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불가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이 불안한 마음은 자연스레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는 데에 혈안이 된다. 최소한 타인의 시선은 모르겠고, 일단 나부터 심적으로 마음이 편하자는 논리. 그래서 올해까지, 아니면 내년까지 해보고 안되면 막노동이라도 하겠다, 학원선생이라도 하겠다,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겠다와 같이 아무도 시키지 않은 플랜비를 세우면서 공부를 한다.

이직을 하는 직장인도 마찬가지. 플랜비가 '이직'인 직장인이 있으면 그는 혹시나 이직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플랜비를 세우는 데 그 플랜은 무작정 현재의 직장을 퇴사하지 않는 신중함과 인내다. 만약 호기롭게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했는데 이직에 실패하면 인생이 꼬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논리다. 환승이직이 몸값이나 연봉협상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이고, 생활안정측면이나, 본인의 심적인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에서 당연히 정답이겠지만 중요한 건 모두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주변에 아예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사람도 수없이 많을 텐데 이 모든 경우를 묵살하고 안정성만이 답이라 여긴다.


자, 왜 이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은 대안에 집착할까를 생각해 보면 '불안'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 때문이다. 특히 유독 성장과 승리, 막대한 부와 명예, 비교에 집착하고 보이는 것에 혈안이 된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이 불안이라는 존재는 늘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이 불안을 잠시나마 제거할 수 있는 '플랜비'라는 명목상 하지도 않을 존재를 만들어 이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다.

근데 본인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이때까지 본인이 겪었던 그 어떤 종류의 고난과 역경이 플랜비가 있어서 잘 극복했던 적이 몇 번 있나. 대비가능한 곳에서 사건이나 사고가 터졌다면 이 세상에는 자연재해도 없을 것이고, 사기꾼도 없고, 그 어떤 범죄도 없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겠지. 소방관이나 경찰관, 판검사, 변호사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좋은 일만 일어나는 그런 아름답고 그저 낙관적인 세상이니까. 근데 현실세계는 끔찍스럽게도 냉혹하다. 대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무런 대비가 안된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이 죽고 사는 중대한 사건사고가 아니라도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

내 잘못이 아닌데 회사 상사에게 개털린다거나, 버스에 현금이 많이 든 지갑을 두고 내렸다거나, 비행기에서 결혼반지를 잃어버려서 결국 못 찾았다거나, 술 먹고 넘어져 머리가 찢어졌다거나, 신혼집을 구했고 가전/가구도 다 들어왔는데 파혼위기에 처한다거나 이런 문제들. 다 플랜비가 없던 상황들이다. 부끄럽게도 실제로 내가 모두 겪은 경험담이다. 그것도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일부만 얘기한 거다. 미리 플랜비를 만들어서 ‘아, 오늘은 술 먹고 발을 헛디뎌 머리가 찢어질 예정이니까 단단한 반창고나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러 나가야지’ 할 수도 없고, 파혼을 할 예정이니 다른 여자를 미리 구해놓을 수도 없고, 결혼반지를 잃어버릴 예정이니 이번 여행에는 반지를 안 끼고 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늘 플랜비를 앞세우며


"대안을 만들어야죠"


라고 하는 사람의 말은 사실상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럴땐 마음속으로 X까라고 말해주면 되겠다. 예측하고 바랬던 결괏값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로또에 당첨된 0.1%의 누군가가 있으면 99.9%의 로또에 당첨이 되지 않고 돈만 날린 사람들이 있다. 직장에서 누구는 승진해서 잘 나가고, 다른 누구는 승진한번 못하고 빌빌대는 사람도 있다. 더 심각한 누군가는 갑자기 지방으로 혹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발령이 나기도 한다. 승진이나, 로또복권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낭보도 예측한 결괏값이 아닌데 왜 비상상황에만 우리는 늘 대안을 만들어야 하고, 다시 원래값으로 돌려놔야 하고, 늘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고, 더 성장, 발전해야 하고 이전으로 회복해야 하는가. 예상치 못한 낭보에 저항 없이 기뻐하듯, 비보에서도 비상상황에서도 그냥 좀 슬퍼하다가 흘러내면 그만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또 대안이 있는 이들을 비아냥댈 것도 없다. 그들은 본인만의 그 노력한 대안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꼭 대안이 없어도 된다는 것뿐이다.

친부를 갑작스레 잃었을 때가 떠오른다.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과 동시에 태어나서 견디지 못할 아픔을 느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물리적으로 가슴찢어지는 느낌임을 그때 알았다. 근데 그 당시는 그랬어도 어떻게든 지금 다 살아지지 않나. 지금 살아진다 해서 그때의 그 슬픔의 무게가 얕은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또 어땠나. 내 옆 직원은 어김없이 평범하게 출근했는데 매니저가 급한 미팅이 있다고 그를 부른다. 회의실로 함께 들어가더니 회의가 끝나고 나오자마자 박스에 짐을 싣고 해고당한다. 갑작스러운 레이아웃이다. 이게 미국은 일상이다. 이 모든 상황은 30분도 안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나는 그보다 우수해서 그럼 잘리지 않았나? 아니. 나는 인턴에, 계약직 신분이라 잘릴 가치조차 없어서 살아남았다.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아무런 대안 플랜 B 없이 이뤄진 일들이다.


그냥 다 살아진다. 세상에 주어진 건 결국 생각을 어떻게 하냐의 싸움이다. 그게 내 육체와 정신을 조금이나마 더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다. 내 몸만 건강하면 진짜 어떻게든 다 되고, 어떻게든 다 흘러간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게 없다. 단, 한 가지 주의할 것. 비보를 겪었을 때 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거나 무모한 본인에 대한 질책이 계속되고 그게 강박으로 무장되면 거기서 자의식과잉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것만 피하면 된다. 그 어떤 비보보다 그게 비보다. 그냥 흐르듯, 마음 가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갓생에, 자기 계발에, 재테크에, 다 좋다. 근데 이게 본인이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 않더라도, 그냥 편안하게 맛있는 거 먹고 하루하루 살면 그만이다. 어차피 다 지나간다. 그냥 그 지나가는 와중에 마음 맞는 사람 만나면 더 좋고. 내 주식 조금 더 오르면 좋고. 좋은 곳에 취업해서 일하면 더 좋고. 그냥 인생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내가 평정이라는 단어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