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에 대한 소고
서울이 한산하다. 도로가 꽉 막히고, 만원 지하철에 간신히 몸을 끼워 넣어야 했던 출근길이 다소 한적하다. 그 이유는? 여름휴가기간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보통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하계휴가를 3일에서 5일 정도 간다. 도저히 더워서 일을 못하겠다는 개념보다는 그냥 과거부터 암묵적으로 정해져 오던 룰이다. 아무리 복지없고 체계없는 작은 중소기업이라도 진짜 ‘이것만은’ 해주자 하는 게 하계휴가다. 그래서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안부인사로, "밥 먹었냐"대신, "여름휴가 어디로 가는지"를 주로 묻는다. 그게 스몰톡의 출발점이다.
근데 이 질문엔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는사람은 없다. 실제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그리고 본인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 여행을 어디서, 어떤 호텔에서, 어떤 액티비티를 하냐 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특별한 데 안가고 그냥 집에 쉰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끼리 리프레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심 부럽기도 하고, 누군가는 또 그런 나를 부러워한다. 결국 내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일을 할 때에도 쉴때에도 가장 원초적인 이유가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멕시코나, 과테말라, 쿠바 등 경제력이 높지 않은 국가에 가면 현지인은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있을지 여행객들은 가장 먼저 궁금해한다. 근데 이런 생각들은 모두 기우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왜? 가 보면 안다. 어떻게든 다 산다. 그 환경에 맞춰서. 본인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가족들도 챙기고, 그들이 재밌다고, 맛있다고 하는 것들을 다 누리면서 그렇게 산다. 안 죽는다. 영화 <케스트어웨이>처럼 무인도에 사는 게 아니니, 아낄거 아끼고, 서로 나누고 도우면서 우리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산다.
전 세계에 100억 명이 있다 치면 당연 어디를 가든 별에 별 사람 다 있다. 지하철에서 춤을 추든, 소매치기를하든, 길거리에서 남자끼리 키스를 하는 게이 거리도 가보고, 칼로 위협도 당해보고, 마치 신석기시대에 움집보다 못한 환경에서 사는 거지도 보고, 마약에 절어있는 매춘부부터, 멕시코와 과테말라 국경지역에 아직스페인어가 익숙하지 않은 즉 문명화가 되지 않은 원시족들이 사는 곳에서 그들이 파는 감자도 사보고, 진짜 별에 별 사람 다 있다. 이를 보면서 느끼는 건 말을 못 하든, 돈이 없든, 나쁜 방식으로 돈을 벌든, 이 세상에서 내가 겪은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그냥 '잘' 살고 있다는 거다. 가족까지 다 챙기면서. 본인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잘 살고 있다. 근데 우리는 어떤가.
이번 여름휴가는 어느 5성급 호텔에서, 평소에 엄두도못 내는 스카이다이빙같은 그런 액티비티에, 새로운 음식을 먹고, 일 년에 한 번뿐인 여행이라는 거대한 의미부여 앞에 돈을 써가며 그 순간을 즐기는 데에만 초점을 둔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르듯, 재밌는 것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사실상 어느 곳에서 뭘 하든 장소는 본인이 원하는 데에만 가면 그만인 거고, 누구와 함께 난 이 소중한 기억을 보내고 있는지 결국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이 전 세계에 별의별 사람 중에서 나는 누구와 지금 함께 있고 어떻게 이 사람과 행복한 상태에 있는지. 그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본다.
외로움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며, 불치병에 가깝다. 연애를 해도 외롭고, 결혼을 해도 외롭고, 죽기직전까지 우린 외로워한다. 결국은 사회적 연대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만족과 성취, 유희를 느끼는데 한 개인은 건강한 만족감을 얻는다. 죽기 직전에 그래도 내가 값진 걸 줄 수 있고 그런 만족을 느끼는 편안한 사람 한 무리정도는 있어야 그 삶이 비로소 가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꼭 결혼이 아닐지라도.
지인 중 오십 대에 미혼인데 100억 가까이 자산이 있다. 이번 여름휴가를 혼자 여행을 간다 했을 때 전혀 부럽지 않았다. 왜? 혼자 여행하는 것? 나도 당연히 여행 혼자 많이 가봤다. 좋다. 생각정리할 시간도 있고, 미래계획도 세우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그 과정은 삶에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근데 그는 혼자 보내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외로워 보이는 아우라가 느껴져 전혀 부럽지 않았다. 마치, 본인의 외로움을 본인의 재산과 여름휴가의 화려함으로 애써 숨기는 게 보였거든. 이런 사람들은 여행가도 외롭다.
끼리끼리 만난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운 좋게 적지 않은 곳을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별난 사람들도 다 각자의 짝을 이뤄서 별난 방법으로 그렇게 잘 살고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그렇게 본인에게 맞는 사람은 어디든있는 것이다.
사람은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글 쓰는게 귀찮고 책 보는 게 졸리고 지루해 수동적으로 재생되는, 즉 뇌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쇼츠나 유튜브 영상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다. 과거에는 10만, 20만 유튜버라 하면 길에서 알아보고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고 그랬다는데 요즘은 길에 체이는 게 10만유튜버라 사람들이 관심도 없단다. 청소년들은 공부를 하기 싫어 게임을 많이 한다. 게임마저 이젠 게임을 하는 것보다 보는 게 더 편해 게임산업이 발달하고 관련 영상도 많이 올라온다. 그만큼 인간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나태함의 측면이 아니라, 편안하다는 측면으로 봤을 땐 관계에서도 내게 편한 관계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삶의 위기, 어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충분히 의지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 사람이랑 여행하면서 추억도 쌓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 그게 휴가가 주는 진짜 리프레쉬 아닐까.기억은 추억이 되거든. 누군가에게 그 추억은 금전적인 문제, 자기 계발의 문제, 취업의 문제, 진로의 문제가 아닌 50년 ,60년을 버티게 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그게 돈보다 삶에 있어 더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이번 여름휴가 가는 길에 생각해 보자. 나는 지금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그 순간이 배로 더 값지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