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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이 주는 의미

학벌에 대하여

by 홍그리

중앙대 기계공학과 나온 지인은 밖에서 빙수를 판다. 서강대 나온 지인은 택배를 한다. 서울대를 나온 지인은 유튜브를 한다. 소위 학생 때 상위 10%는 들어야만 갈 수 있는 인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지인 중에는 그림을 그리는 친구, 엽서 만드는 친구, 작곡과 보컬트레이닝을 하거나, 회사 다니다 때려치우고 인테리어를 하는지인도 있다. 각자가 하는 업이 얼마를 버는지는 모른다. 단, 본인이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벌고결혼도 하고 다 잘 산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일단 그들은 본인의 삶에 있어 만족을 한다는 것. 사실 그것만큼 행복한 삶이 어딨겠는가.


이처럼 현대사회는 학벌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중요시하더라도 확실한 건 과거보다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중요하게 본다 한들 입시라는 거대한 목표가 주어진 10대 한정이다.

이젠 20대는 취업, 30대는 직업의 안정과 결혼, 40대는 자녀의 출산 그리고 자녀의 성장 및 부모부양, 50대는 노후로 성적표가 매겨진다. 이 모든 세대 간의 숙제는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만약 한쪽이라도 잘못될 시,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온다. 실패도 성장이라고 하지만, 사회가 정한 위와 같은 획일화된 목표를 쫓는다 했을 때에는 실패는 안 하는 것이 가장 좋고, 한다고 해도다음 연결고리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빨리 딛고 일어서야 한다. 과거에는 각 연결고리에 학벌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면 이제는 한참 미미하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취업이 아닌 크리에이터를 한다거나, 사업을 한다거나, 작가를 한다거나, 대부분이 택하는 근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영역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실패도 많이 해봐야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시장에서 무엇이 팔리는지를 알고, 본인의 능력을 자기객관화하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을 확률이 높을 테니. 단, 이 영역에서도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건 학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 오로지 현대사회 이 정글에서는 현재 본인의 능력만 중요시된다.


먹고, 즐기고 놀게 넘쳐나는 이 부유한 한국에서는 주식에만 잘 넣어도 돈복사가 되고, 하루 노가다를 뛰어도 십몇만원은 번다. 그만큼 돈 벌 기회는 학벌과 상관없이 건강만 하다면 널리고 널렸거든.

그럼 학벌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쓸 필요 없을까? 학벌이 안 좋아도 명문대 나온 지인과 같은 급에, 같은 출발선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근데 그러기엔 이 와중에도 대치동, 목동에는 사교육비만 일 년에 몇천만 원씩 쓰고, 6세 고시라 해서 6살밖에 되지 않은 아기들에게 학원을 다섯, 여섯 군데 보내는데? 왜냐.

어릴 때부터 앞서나가 명문대나 의대 보내야 되거든. 의대에만 몰려 중국에게 기술격차를 보이는 원초적인 이유도 의사가 정년이 없고 돈을 많이 번다는 신념 때문이다. 즉,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가면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논리가 아직 건재한 것이 현 사교육시장의 현실이다.

자, 그러면 학벌이 예전보다 안 중요한데 왜 사교육시장은 계속 확장되냐. 뭔가 특출 나게 본인이 잘 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잘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근데 현대사회에서는 그 확률을 설명할 수 있는 명분이 희미해진다. 학벌컷이 사라진다는 뜻은 이제 학벌이 결과론적 관점에서 미래를 보장해 주는 개념이 아니라는 말로 설명가능하다. 대기업에서도 왜 과거에 학벌로 액셀컷을 해서 지원자를 추렸냐를 생각해 보면 이유는 딱 하나다. 가장 효율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내 몇만 명이 넘는 지원자를 추려야 하는데 모든 면접자를 면접 볼 수 없으니 서류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학벌을 성실성으로 판단하고 잘라버리는 것.

근데 지금은? 학벌보다 일한 경험, 하다못해 인턴이라도 없으면 아무리 학벌이 좋아도 채용하지 않는다. 서류전형에서부터 통과가 안된다. 그만큼 저성장시대에 회사는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그건 경력이나 실무에 대한 본인의 노하우가 됐지, 절대 학벌이 될 수 없다. 뭐, 학벌이 미치도록 좋다면 플러스요소는 되겠지. 아마도.


그나마 현재까지 사교육시장이 건재하고, 수능이 100일가량 남은 고3들이 어떻게든 좋은 대학교 가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이유는 “나 이 대학 나왔어”라는 자랑보다, 성공경험을 가지는 게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된다. 학벌로는 더 이상 큰 메리트는 없지만,

10대가 ‘노력하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성취경험을 갖고 20살이 되어 사회에 나오는 것이다. 이 성취경험은 앞서 말한 연결고리에 순기능을 가져다주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본인에게 닥칠 이 큰 빅이벤트를 무리 없이 잘 만들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스토리 텔링으로 가져가보자.


아무것도 본인 힘으로 이룬 거 하나 없이 20살을 맞이한 A가 있다. 반면, 열심히 공부해 서울의 명문대학교에 간 B가 있을 때 누가 더 20대를 긍정적으로, 그리고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당연히 B다. 왜냐고?

계속해보면 다른 것도 또 될 것 같거든. 더 많은 도전과 더 많은 끈기, 문제해결능력을 능동적으로 배운다. B곁에는 똑같이 능력 있는 사람이 생기고, 둘은 결혼하고 또 똑같은 가정환경을 가르칠 거고, 그런 자녀가 태어나겠지. 그리고 B는 좋은 대학교에서 만난 똑똑한 지인과, 똑똑한 학부모, 능력 있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할 것이다. 왜? 그들도 똑같이 본인과 같은 환경에서 같은 생각 하면서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공감대형성이 잘 되거든.


인간관계는 공감대다. 내가 상대의 삶 어떤 부분에 깊이 공감할 수 있고, 내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그 관계의 깊고 얕고를 결정짓는데, 둘 다 같은 삶을 사니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생긴다. 동창회가 왜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없을까. 왜 친했던 동창들은 점점 더 멀어질까. 과거같이 하루 종일 보냈던 시간을 회상하는 게 이젠 즐겁지 않고, 각자의 삶에 치여 상대의 삶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없고, 일단 삶 자체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

이것이 선진국에서 태어나 돈 벌 수 있는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는 이 시대에 학벌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 본다. 멋진 선순환. 근데 어디까지나 이것조차 확률이다. 확률게임.

역시나 예상했듯 B는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하고, 본인이 겪은 제대로 된 가정환경에서 본인 같은 자녀를 만나 똑똑하게 키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재테크도 잘해 하루하루 걱정거리 없이 밝은 내일이 기다린다. 자, 이런 사람에게 처음 보는 누군가 묻는다.아니면 그가 어떤 새 조직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묻는다.

“저 사람 대학은 어디 나왔어?”

“야, 서울대래”

이러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역시. 역시나.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저렇게 사는거야’라고 단정 짓는다. 본인은 가만히 있었는데 학벌이 후광을 비쳐준다. 그리고 주변인들은 “학벌이 좋으니까~원래 공부를 잘하니까~” 인생이 저렇게 잘 풀릴 수 있었다 자위한다. 본인이 그렇지 않은 상황을 면피할 그럴싸한 합리화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다. B처럼 학벌이 본인의 후광은 비쳐주지 않을지더라도 최소한 본인이 잘 됐을 때 학벌이 발목을 잡지 않기를 누구나 바라는 딱 그 정도. 미래에 실질적인 기여는 하지 못한 채. 학벌은 딱 그 정도 의미로 현대인에게 각인된다.


더 이상 학벌이 과거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면 이제 그럼 뭘 해야 할까. 본인이 학벌로 득을 보든, 실을 보든 더 나은 연결고리를 만들고 더나은 내 인생의 숙제들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지금 삶이 너무 힘들고, 희망 없이 자조만 섞인 누군가가 있다면 뭘 해야 할까. 어쭙잖은 위로는 인생에 그 어떤 도움을 줄 수 없다. 뭘 해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답은 뭐라도 해야 한다. 진짜 뭐라도. 집에 가만히 있지 말고, 좌절만 하다 낭비하지 말고, 상처로 가득해 도전을 경시하지 않고 그냥 뭐라도 해야 한다. 쿠팡에 나가 물류알바 하루라도 하면 돈이 얼마나 벌기 힘든 것이고, 지금 시간에 밖에 나가 일을 하는 모두가 존경스러워진다. 운동 가기 전에는 그 누구보다 가기 싫어도, 가서 땀을 흘리고 나오는 발걸음에는 보이지 않는 카타르시스가 있듯 그런 것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에 만약 학벌이 아직 속해있다면, 이제 그 구조는 깨졌으니, 스스로 자립할 때라는 걸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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