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의 시대
모두가 잘났다. 미와 추가 아닌 미와 미의 대결이 왔다.에이스와 에이스의 대결, 1등과 1등의 대결. 그 누구도추한 것이 없고 모두가 아름답다. 그게 사람이든, 브랜드든, 물건이든, 돈과 자산이든 뭐든. 적어도 선진국반열에 들어선 드라마틱한 성장이 없는 저성장국가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과거에는 하나의 뛰어난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돋보였다. 정답이 정해진 한국사회에서 그 정답을 갖고 있는 사람만 출세했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건 공부다. 그래서 그 정답을 따라가기 위해 어릴적부터 학원을 보내고, 온갖 원론적이고 획일화된 교육으로 아이들을 그 정답에 몰아세웠다. 그리고 거기서 나가떨어지는 이들은 낙오자 취급을 받고, 끝까지 버틴 이들은 높은 자리 하나하고, 온전한 부의 세습을 누리며 돈을 쓸어갔다.
근데 이제는? 모두가 어느 정도 잘 산다. 잘 살지 않는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돈이 없어 굶어 죽지 않는다.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고 거의 대부분 어느 정도 갖춘 상태에서의 숫자로, 데이터로 서로 비교하고, 경쟁이 생긴다. 내가 소비하는 금액에 따라 대접받는 서비스가 과거에는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면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스타벅스에서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 마시나, 메가커피에서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마시나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메가커피의 양이 더 많고 가격이 합리적이라 스타벅스는 아예 안 가는 이들도 많다. 단순히 맛이 아니라 보이는 브랜드 이미지, 브랜드 간판, 내부 인테리어 등 모든 것이 저가브랜드라 하더라도 고가브랜드와 큰 차이가 없다는 거다.
LG전자가 희망퇴직을 받고 그룹 전체 위기설에 휘말리고 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화학을 비롯해 모든 계열사의 부진이 그 원인인데, 가장 본업이라 할 수 있는 백색가전 전자제품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과거 스마트폰이 처음 나오고, 온갖 혁신적인 전자제품이 발 빠르게 출시될 때는 화질이 얼마나 더 좋은지, 얼마나 더 빠른지, 디자인이 어떤지 명확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거기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엘지 제품을 소비자들이 선택할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 근데 이제는 모든 가전, 전자제품이 상향평준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굳이 엘지전자가 화질이 조금 더좋다고 해서 엘지전자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게 OLED든, LED든 뭐든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그냥 금액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얼마나 사용하기 편한지, 소비자리뷰 이 세 가지만 보고 ‘구매하기’ 버튼을 누를 정도가 됐다는 거다. 거기에 하나둘 사양을 비교하면서 선택을 하는 그 시간조차 아까워한다.
어느 특정 기준 그게 대기업 입사에 준한다면 학벌컷이 될 것이고, 기업에 비유하자면 손익분기점이 될 것이고, 연애 및 결혼시장에서는 직업, 나이, 외모가 될 것이고, 중고차 시장에서는 키로수와 사고이력이 될 것이고, 자산 기준에서는 30대 1억 모으기가 될 것이다. 조만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그 기준은 서울아파트가 될지도. 이처럼 그 어떤 기준에서든 최소 평균 이상의 기준만 갖춘다면 사실 이제는 그 안에서의 독보적인 본인만의 무기가 돈을 끌어올 수 있는지, 못 끌어오는지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본다. 앞선 엘지전자처럼, 모든 가전제품과 전자제품이 상향평준화가 된이때 엘지전자만의 독보적인 무언가가 시장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이 기업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주가 최고가를 찍고 있는 기업들을 보면 모두 본인만의 시대를 거스르지 않는 무기가 있다. 혁신적인 디자인의 폰이라던가, 전기차라던가, 세상에 없는 AI데이터센터라던가. 과거에는 고3입시에서 인서울만 해도 모두에게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인재 취급을 받았지만(실제로 상위 10%다) 요즘은 그 인서울 대학교가 오히려 조롱이 대상이 될 만큼 널리고 널려 그 안에서도 또 극심한 경쟁이 이뤄진다. SKY대학교가 아니면 학벌로는 +영역이 아니라, 본인만 할수 있는 다른 스펙이 있어야만(제2외국어라던가, 압도적인 영어실력이라던가, 회사경험이라던가) 이력서를 내밀 수 있는 정도다. 그래서 그 밑에 지방대는 자연스레 실패한듯한 낙인이 씌워진다. 연애 및 결혼시장도 똑같다. ‘나는 솔로’와 같은 프로그램만 봐도 돌싱 특집에서 본인이 자녀가 둘 이상 있다면, 그걸 상쇄할 수 있는 본인만의 어떤 무기가 있어야 상대에게 선택을 받는다. 그리고 늘 그렇듯 여성 출연자에서 외모가 준수한 후보는 언제나 압도적인 대시를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어떤 대시도 받지 못한다. 직업이 아무리 좋고, 돈이 많아도 성격이 또라이에다가 4차원이면 바라보는 대중이나, 상대편이나 고개를 갸우뚱하고, 모든 게 평균 이상이라도 본인만의 끌림이나 개성하나 없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이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짜인 집단은 갈수록 늘어나고, 그들끼리의 경쟁에서는 더 이상 함께 성장한다는 상생보다 적자생존, 우선 나부터 살자는 인식이 더 주목받는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나만 잘 되면 되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산업클러스터라고 해서, 울산의 중공업, 화학, 자동차단지나, 여수 화학단지 등 기업들이 한 곳에 자리를 트고 함께 성장했다. 수요에 발맞춰 대량생산으로 원가를 줄이고 상호 간 노하우를 공유해 함께 성장하는 개념. 현대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 도 이때 나왔다. 해외 업체에서 납기를 당겨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대한 불가능하다는 보고에 대한 답변이다.
꼭 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을왕리 해수욕장에 드라이브를 하다 해물칼국수거리가 줄지어 늘어진 걸 봤다. 같은 이치다. 성수 수제화 신발골목, 강릉 짬뽕순두부 골목, 속초 횟집, 안동 국시나 찜닭, 부산 국밥집 다 동일하다. 과거 많은 관광객이 함께 몰려와 서로 이익을 나눠가졌다면 이제는 평균이 갖춰지면 나만의 무언가로 승부를 볼 때가 온 거다.
세상은 갈수록 불안정해진다. 불안정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내 계좌, 내 집, 내 아이들, 내 가정만 신경 쓰기 바쁘다. 내일 당장 전쟁이 나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고, 안전자산은 급등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기술발전으로 편리함 대신 불안함이 자리한다. 경쟁의 대상은 서로 헐뜯기 바쁘고, 온갖 정답이라고 강요받는 어떤 기준 속에 서로를 비교하고 자기검열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은 채 늘 더 자극적인 도파민을 좇는다. 그 도파민의 주체는 물론 돈이다. 이럴 때 나만의 기준과 나만의 무기를 이제는 들여다볼 때가 아닐까. 아주 조용히 남들 모르게. 왜? 또 말하고 다니면 온갖 질투와 시기 속에 방해요인만 늘어나거든. 사람들은 내가 망하길 바란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그럼 정답은 무엇으로 귀결되느냐. 나만의 것, 나만의 무기를 가지냐 안 가지냐의 가능성을 봐야 하는데 그게 몰입이다. 한주가 시작하는 지금, 나는 무엇에 몰입하고 있는가? 아니, 몰입할 대상이라도 찾았는가? 찾았다면 그걸 재밌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할 수 있는 꾸준함과 재미가 있는가? 꾸며지지 않고 겉만 그럴싸한 거 말고 본인이 실제로 온전히 느끼는 재미 말이야.
만약 그 몰입이 본인의 행복과 재미를 넘어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게 앞으로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삶이 될 거라 본다. 그게 뭐가 됐든.
20대 어느 대학에 다니냐, 30대 어느 회사를 다니냐, 40대 어디에 살고 있냐 이런 기준은 사실 아무 쓸데없는 거고 결국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