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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에 속지 마세요

자기 계발의 덫

by 홍그리

유튜브만 열면, 블로그만 열면, 핸드폰에 있는 그 어떤 어플을 열어도 매일 최신정보가 쏟아진다. 이 정보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구독자로 하여금 따끔한 교훈을 주는데, 대체로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식이다.


'지금 당장 천만 원을 모으세요, 1억을 모으세요'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세요, 일단 뛰세요'

'저속노화식단의 방법'

'대기업에 가야 하는 이유'

'이런 여자(남자)랑 결혼하세요'

'지금 달러에 투자하세요, 미국주식을 시작하세요'

'30대에 해야 하는 다섯 가지'

‘40대가 되기 전 해야 할 것 열 가지‘

‘나는 성공합니다 자기 암시’


이런 콘텐츠가 끝도 없이 분단위로 쏟아진다. 이 호기심 가득하고 자극적인 메시지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들은 현직에 종사하는 카피라이터보다 아마 썸네일을 더잘 짤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구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까, 도파민을 불러일으킬까라는 고민만 하루 24시간 하는 사람일 테니까. 근데 그들은 정작 저 콘텐츠대로 살지 않는다. 그들 본인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결국 돈이다. 그들은 지금 당장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저속노화식단을 하지 않아도, 대기업에 가지 않아도, 다 상관없다. 왜냐. 귀찮고 피곤하니까.

그들이 딱 하나 눈독 들이는 것은 결국 조회수 즉, 돈뿐이다. 우리는 조회수 빨아먹는 장사꾼에게 질적으로 우수하지 못한 정보에 매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셈.


저걸 많이 본다고, 내 삶이 달라질 거였으면 저 콘텐츠와 영상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야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일 확률이 높다. 정답 없이 그냥 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본인이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가면 그게 정답인 거다. 입시 때 대학교를 결정지을 때도 내 성적에 갈 수 있는 비슷한 학과가 두 개 있으면 내가 가고 싶은곳에 간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회사도 마찬가지. 연애를 할 때에도 누군가 다섯 명의 남자가 본인에게 대시를 한다고 하자. 그럼 본인이 사귀고 싶고 끌리는 남자한테 당연히 간다. 여행장소를 정할 때에도 마찬가지고. 결국은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그렇게 살면 된다. 이젠 이 자본주의가 낳은 교육을 가장한 자본주의영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닐까.


30대에 천만 원, 일억을 모으지 못해도 40대에 100억을 가질 수 있다. 30대에 대기업을 다니지 않아도 40대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수 있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더 행복할 수 있다. 단,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꿈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다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자기 객관화만 있으면 된다. 천만 원은커녕 나이 35세 돼서 통장에 백만 원도 없으면 집에 빌붙어 살지 말고 제 발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쿠팡아르바이트를 하든, 배달을 하든 어떻게든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영상에 나오는 뭔가 근사한 걸 해야 하는 이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한다. 경제적 여유는 있는데 이룬 게 없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데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꼭 잘해야 만한다. 이게 결국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논리고, 곧 법칙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어떻게든 돈이 되는 곳에 사람이 몰린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교묘히 본인의 이익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돈이 되는 범주를 바꿔가며 그걸 본인 범주로 끌어들인다. 마치 그 법이 세상을 위한, 국민을 위한 지침서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법이 바뀌고 하는 거다. 당뇨환자, 고혈압환자의 범주가 바뀌면 고혈압환자의 수가 많아져 병원은 떼돈을 번다. 수능의 한국사가 필수로 지정되면 한국사 강사들은 돈방석에 앉고, 수리영역이 어려워지면 대치동의 수학학원엔 발 디딜 틈이 없고, 부동산청약 자녀기준에 태아 및 입양을 포함시키면 불법으로 입양해서 청약당첨되고 입양을 취소해 버린다.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위고비를 비롯한 제약산업이 발전하고 헬스산업이 활황을 띤다. 삶에 지쳐 살아가는 데 허무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는 철학책이 차지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식의 어설픈 위로를 주는 자기 계발서가 쏟아져 나온다. 주식이 오르면 주식 전문가들이 어디 방구석에서 놀다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나타나 되지도 않는 주식강의를 돈 주고 판다. 최근엔 정확히 100% 시장을 반대로 예측하는 경제유투버가 조롱받기도 했다.


자, 여기서 뭘 느끼는가. 이제는 꿈에서 깰 시간이다. 스스로의 연민과 나약함으로 이 세상은 내게 돈을 주지 않는다. 내 정신승리와는 별개로 밖에선 수없이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슈가 복잡하게 사슬처럼 엮이어 그것이 돈으로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근데 자기 연민에 허덕이는 내 정신승리의 기댓값은 고작 김밥천국에서 라면이나 시켜 먹는 딱 그 정도일 것이라는 것. 꽤나 안타까운 삶이다.


객관적인 현실, 숫자, 통계. 그리고 내 계좌의 돈의 액수. 결국 이것만이 우리를 더 나은 곳에서 숨 쉬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당장 오늘 아침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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