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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폭락 막는 법

대응에 대하여

by 홍그리

누구나 살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맞닥뜨릴 때.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이런 상황에 봉착했을 때 대개 머리가 멍해지거나, 놀이기구 바이킹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은 뭐랄까. 뇌보다 몸에서 먼저 변화가 온다. 근데 꼭 나중에 시간이 그냥 흐르거나 혹은 본인이 문제를 수월히 해결해서 문제가 해결된 순간은 무조건 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때 지나고 난 뒤에 그 앞선 일을 얘기할 때 이를 흔히 happening(해프닝)이라고 줄여 표현한다. 말 그대로 그냥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에이, 그냥 작은 해프닝이었어"

"별일 아니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지"


라고 하는 것처럼, 어쨌거나 지나갈 것이고, 지나갔고, 불특정다수 누군가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들 말이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라던가, 실수라던가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일 수도 있다. 다만 작은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는 건 운의 영역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대응'이 결정짓는다.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더 큰 불행을 만들지, 작은 해프닝으로 끝낼지를 결정짓는 것.


하반기 신입채용이 한창이다. 서류를 넣고, 운 좋게 면접에 가서 합격을 했다고 하자. 심지어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시기엔 이리저리 넣다 생각지도 않게 서류합격을 해 면접을 가는 경우가 있다. 본인은 서류를 넣은 지도 기억이 안나는 곳에서 연락이 온다던가, 심지어 하나도 준비를 하지 않고 면접을 봤는데 면접합격 연락이 왔다던가. 주변에도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이런 갑작스러운 행운에 회사를 몇 년째 다니고 있는 이도 있다.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본인이 세웠던 목표와 일부 다를지라도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는 생각에 입사하고 보는이가 있는 반면, 본인이 가고 싶은 회사나 목표가 명확히 정해져 있어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결정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질뿐더러,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자는 리스크를 선택함으로써 본인을 낭떠러지 앞까지 밀어 넣어 인생을 시험한다. 물론 본인을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넣어 본인이 원했던 회사에 입사하거나, 인생이 더 잘 풀릴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매 순간 본인이 계획한 대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수는 없기에 기회는 뭐가 됐든 왔을 때 잡는 것이 추후 다른 선택의 영역에서 수월할 수 있다. '모로 가도 서울로가면 된다'라는 말은 한 번에 서울에 못 오더라도 중간에 대전에서 쉬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언젠가 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오히려 첫운으로 대기업이나, 좋은 직군에 취업한 이들이 퇴사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는 취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거나, 본인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만이 섞여있다. 작은 기회라도 잡아가면서 때로는 현실에 순응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몸집을 키워가는 것. 일자리도 대응의 영역이다.


퇴직도 마찬가지. 명예퇴직이든 희망퇴직이든 정년퇴직이든 언젠가 본인에게 회사가 나가라고 하는 순간은무조건 오기 마련. 언제 올지 가늠할 뿐 필연적으로 누구에게나 닥친다. 다만 모두가 그것이 ‘정년퇴직’이길 바랄 뿐이다. 자녀가 둘 이상 있고 아직 학자금 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회사가 예정에도 없이 나가라고 통보한다고 하자. 똑똑한 사람들은 그걸 미리 준비하고 늘 최악을 생각해 왔다. 그렇게까지 하지 못한 사람은 과거를 후회하지만, 갑작스러운 위기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이건 본인에게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길을 하루빨리 찾아 그곳으로 정착하라는 신의계시라 믿고 그걸 감사하게 여긴다. 그리고 퇴직금을 두둑이 챙겨서 새로운 출발을 계획한다. 반면 최악인 부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비참하게 버려져 뭘 해야 할지를 모르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노후를 결정짓는 대응의 영역이다.


주식을 보자. 며칠 전 잘 나가던 미국주식은 트럼프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대폭락 했다. 이 폭락을 두고 각종 커뮤니티나 SNS에는 동시에 수많은 추측성 글이 난무한다. 이 추측성 글의 특징은 대개 이렇다. 스스로 자칭전문가라고 믿고, 본인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냐, 오를 것이냐에 대한 분명한 근거는 없다. 왜? 본인도 모르거든. 그렇게 손해를 본 사람들은 좌절한다. 애초에 매매할 때부터 시뮬레이션이 안 그려진 사람들이다. 그냥 정보성글에 본인 생각 몇 개 덧붙여서 대중들을 설득하고 조회수나 뽑으려는 허수들일뿐이다. 다만, 여기서도 진짜는 있다. 진짜는 비록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다. -20%가 되든, -50%가 되든 원래 내 돈이 아니었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맷집을 가진 사람. 이들은 본인의 신념을 강하게 믿고 저점 기회라 생각하고 추매를 한다. 무조건 계속 오르는 자산은 없기에 이 같은 조정은 곧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악재로 본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절망하며 본인은 주식에 자질이 없다 생각하고 손절을 한다. 대응의 영역이다.


결혼시장에서 30대가 되면 공통점이 보인다. 남녀모두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직업이 별로라서, 외모가 별로라서, 자산, 집안이 별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건 이제 모든 걸 갖춘 육각형 이성은 절대본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나이를 한 살 한 살더 먹으면 먹을수록 없던 확률조차 0에 수렴한다.

성비를 볼 때나 사회통념상 그게 남자라면 더더욱. 여자도 물론 단점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보다 결혼시장에서의 가치가 급격히 낮아진다는 것. 가임기이성만 선호한다.

자, 그럼 시간은 자꾸 흐르고 내 가치는 낮아지는데 평생 혼자 살건가? 번호를 따거나, 지인들에게 연락해 소개팅을 구걸하거나, 모임에 나가거나 어떤 실행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 실행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눈을 낮추거나, 나 스스로 가치를 높이거나. 후자는 짧은 기간 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개 현실과 타협해 전자를 택한다. 이번 생에 결혼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반려자를 만나는 대응의 영역이다.


집은 항상 깨끗해야 마음이 안정된다. 밖에서 열심히 노동을 하고 집에 왔는데 집안이 더러우면 쉬어도 쉬는 느낌이 안 든다. 그래서 조금만 물건이 흐트러져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우고, 자리를 옮겨본다.

장식품을 하나 샀는데 아예 다른 색깔로 잘못 배송이 왔다. 그래서 본래 놔두려는 위치에 이 색깔과 어울리는 화분을 매칭해 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도 화분을 갖다 놓아보니 더 이쁘다. 대응의 영역이다.


매 순간, 내일도, 모레도, 24시간은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시작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똑같은 하루인 것 같다가도 하루에도 몇백 번에 가까운 선택을 할 만큼 개개인에겐 많은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 좀 더 유연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똑같은 일이 있더라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서 조금 더 긍정적으로, 조금 더 내가 할 수 있는(can)의 영역에서 대응할 수 있는지는 시간이 좀 걸려도 여유 있게 고심하며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남보다 빨리 대응해서 앞서간다고 실속 있는 사람 없거든. 일단 실행만 하면 된다. 무대응이 가장 한심함 짓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거나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때에는그것이 잘 될지, 잘 맞을지 모른다. 대응하는 도중에 수정하면서 유연리 대처해도 무방하다. 이건 디폴트고,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대응방식은 어차피 본인밖에 모른다. 그러면서 방법을 찾아가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남의 말에 휘둘리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


나는 1을 잘하는데 2처럼 대응하라고 하면 그 어떤 곳에서도 퍼포먼스가 안 난다. 내게 또 닥칠 무수한 대응을 위해 오늘도 책 한 권 더 읽고, 어쨌든 더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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