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간다는 것
매일 아침 출근길, 똑같은 길에서 똑같은 시간대에 어느 한 여성분을 마주친다. 이렇게 마주친 지도 벌써 6개월이 흘렀다. 말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지금쯤이면 그분도 분명 나를 매일 마주친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이다. 근데 매일 보는 그분은 감히 말하자면 늘 표정이 안 좋다. 비즈니스캐주얼 옷을 입고 구두를 또각또각 신는 걸 봐선 직장에 가는 듯하다. 근데 매일 표정이굳어있다. 마치 아침에 똥이라도 밟은 듯한 표정이다. 아침에 매일 남편이랑 싸우고 나오는 게 아니고서야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그만큼 출근길이 고달프고 싫기 때문에 그렇겠지.
대한민국에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 및 공무원은 2천2백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비경제활동인구를 제외하고는 국민 70% 이상이 이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거다. 매월 급여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이상적인 삶이고, 예상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문제는 하루 8시간이나 있는 직장에서 출퇴근길포함 10시간 내내 고통스러워야 하는 것에 전제가 있다. 덕업일치 혹은 사장이 아니고서야 사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직장인 중에서 1%도 안될 것이다. 왜냐. 누군가가 시킨 일이거든. 가령, 내가 마케팅을 하고 싶다 하자. 대학에서 마케팅 직무지식을 공부하고 회사에서 인턴경험을 쌓아도 진정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회사에 들어가서 하는 마케팅은 바라던 것과 분명 괴리감이 든다.
왜냐. 결국 돈을 벌어야 하는 방법론이거든. 회사에서 얘기하는 마케팅이란, 그 회사에 돈을 효율적이고 빠르게 많이 벌어다 주기 위한 가장 빠른 홍보수단을 일컫는다. 내가 평소에 원했던 근사한 마케팅, 글로 배운 마케팅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모든 일이 주먹구구일 수도, 돈이면 다 몸을 갈아서 해야 하는 단순업무일 수도, 내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대체가능한 업무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아니라 할지라도 회사에서 하는 모든 업무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다. 돈을 주는데 기분 좋고 본인이 재밌는 일을 할 수있을 거라는 자체가 넌센스다. 아무도 하기 싫은 일이니 내게 돈을 주면서까지 그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돈을 받는 대신 그 시간은 회사를 위해 내노동을 바쳐야 한다. 자, 이러면 대부분은 생각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다들 진정으로 죽지 못해 그냥 이렇게 사는 걸까. 매일매일? 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이직을 하거나, 퇴사하고시험공부를 준비할 수도 있다. 급여를 받는 그 어떤 다른 일에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내가 뭔가를 창의적으로 혁신을 일으켜 사업가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된 게 아닌 이상 환경을 바꿔도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거라면 본질적인 스트레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역시나 내 맘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직장인의 출근길은 회색빛깔에 굳어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상과 이 조직은 거리가 멀거든. 돈을 받기에 시키는 대로 억지로 해야 하고 하루 8시간 이상은 내가 내가 아닌 대로 그렇게 결국 살아가야 하니까 괴로운 거다.
그러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현실을 수긍하고 이걸 잠시나마 이겨낼 수 있는 다른 도파민을 찾는다. 주말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치고, 평일에 마치 스타크래프트 테란 마린의 스팀팩을 맞은것처럼 뭔가 자극적인 도파민을 찾아 헤맨다. 그게 바로 재테크다. 그중에서 가장 쉽게 사고팔고 할 수 있는 주식에 우리 모두가 열광한다. 아침 9시 장시작마다 화장실 가서 주식을 보고 주식이 오르면 그날 하루가 기분이 좋고, 주식이 낮으면 그날 하루 전체가 우울해진다.
코스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코스피가 5000이 아닌 6000, 7000 전망도 나왔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국장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화자 됐는데 지금은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코스피에 집중 투자한 이들은 요즘 모두 돈 좀 벌었다. 그리고 이걸사라, 저걸 사라 종목 추천을 하면서 마치 본인이 주식의 신이라도 된냥 타인을 선동한다. 그러면 여기에는 댓글이 달린다.
“아니야, 미장을 해야 돼. 국장은 지금 광기야. 언제 떨어질지 몰라”
“금을 사야 돼. 금채굴량은 한정돼 있어. 답은 금뿐이야. 무조건 우상향 할 거야”
“비트코인이 전 세상을 바꿀 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그래도 서울부동산, 서울에 집 하나는 사놓고 다른 걸 해보는 게 맞는 거 같은데?"
하며 여러 재테크에 관련된 의견이 분분하다. 직장인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거고, 자산 증식을 위해 재테크에 이토록 고민하는 게 사실 굉장히 건설적인 방향인 건 맞다. 그래서 이 재테크엔 정답이 없기에 누구 말도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그 재테크 방법이 뭐가 됐든 내 인생을 덮을 정도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나아가야지 한 가지에 매몰되어 선택하면 무조건 필패한다. 타이밍은 아무도 모르거든. 내게 미래에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고, 세계경제가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고, 뭘 선택하든 정답은 없고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내 돈을 잃지 않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근데 주식에 매몰되어 하루에 몇만 원, 몇십만 원벌자고 사고팔고 사고팔고 하다 보면 사실 그 돈을 번다하더라도 잃는 것이 더 많다. 몇 개 예시를 들어보자.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고, 챙겨야 할 것을 챙길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인생에서의 큰 그림들이 눈앞에 있는 주식 때문에 사라져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옳다고 믿는 영역이 주식이라고 하면 올인하지않되, 조금씩 꾸준히 자꾸 기계적으로 매수하는 쪽이 현실적으로 본인 인생에 훨씬 이득이다. 꾸준히 수입을 이끌 내 본업, 캐시카우를 챙기면서 자산증식을 따로 이뤄낼 수 있으니까.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뭐든 일단 생각을 오래 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사회에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다. 미국주식한다고 차트 본다고 잠도 안 자고 한 시간마다 깨서 좀비가 돼서 출근하는 사람은 실제로 널리고 널렸거든. 이 상승장에 돈을 아주 많이 번 사람이 만약 있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이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지켜야 할 것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최소한의 안정성을 두고자 오를 예정인 주식에 풀배팅을 하지 못한다.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자식도 키워야 하고, 내 용돈도 있어야 하고, 적금도 들어야 하고, 교육비에, 의료비에, 학원비에 들어갈 돈이 너무 많거든. 즉, 주변을 보면 정작 몇백만 원, 몇천만 원, 1억,2억까지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처럼 코스피가 날아다녀도 5억, 10억 단위로 그렇게 돈 번사람은 잘 없다. 이 말은 뭐냐. 물론 주식 올라 조금이라도 벌면 좋다. 근데 그렇게 한다고 절대 본인 인생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말도 한다.
요즘 막노동을 하든, 주식으로 전업트레이더를 하든,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아서 대기업이 더 이상 메리트가 없는 것 같아요.
전문직이나 대기업타이틀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본질적으로 이마저도 사실 인생의 성취와 행복을 가져다주기 힘들다. 매일아침 육체적 노동을 하러 가는데 표정이 좋을 리가 없고, 트레이더를 하는데 주식결과가 안 좋다면 다시 회사를 들어갈까 고민도 할 것이다. 그래도 본인이 그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넘쳐흐른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그게 대기업보다 좋을 수 없다는 것에 반박을 하자면 돈의 총양으로만 따지면 안 되고, 그 돈을 벌기 위한 육체적 노동이나 정신적 고통의 대가 이 모든 걸 통틀어 쉽게 자산증식을 하냐 못하냐의 차이가 인생을 결정짓거든. 그게 양질의 일자리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고, 어릴 적부터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다. 풀배팅은 주식, 재테크가 아니라 결국 내 본업 해서 해야 한다.
자, 그러면 내 자산이 오르든 말든 일희일비하지 않고 편하게 안정적으로 자산증식을 할 수 있는 법이 뭐가 있을까. 지금 내 상황에서 내가 뭘 뻗어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첫 번째다. 가령, 내가 회사일이 죽도록 싫다면, 조금이라도 내가 관심 있고 연관 있는 일을 할 수있는 직무를 찾아본다거나, 팀이동을 요청할 수도 있다. 혹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닌 진짜 내 가슴속에서 울린 일을 검색하고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게 자격증 같은 게 있다면 또 따볼 수도 있는거고.절대 대세에 따라 시류편승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만약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는 한 블로거가 있다고 해보자.
이 블로거는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걸 좀 더 확장해 본다. 블로그에 간단히 썼던 걸, 브런치에도 조금 더자세히 써보고, 이를 대본으로 유튜브영상도 만들어본다. 이 유튜브영상은 자연스레 쇼츠로도 옮겨갈 수 있다. 이 글은 뿐만 아니라 전자책이나 클래스로 뻗어갈 수도 있다. 단순히 블로그에 글 하나 썼을 뿐인데 이렇게나 기회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
워런버핏도 어디에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냐는 아이의 물음에,
“본인 자신한테 투자하세요”
라고 했지 않나. 그게 매일 아침 출근길의 회색 낯빛, 어두운 표정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라 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반복된 일상을 바꾸는 건 결국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결정짓는다. 단순히 오늘 주식이 엄청 올랐고 얼마를 벌었고는 일시적일 뿐, 평생 매일 아침이 힘들 수 있다. 매일 아침 9시마다 본인이 보고 있는 건, 그냥 하루를 심심하지 않게 해 줄 자극적인 도파민일 뿐이다.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우리 각자는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결국 여기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게 주식으로 돈복사되는 것보다 훨씬 더 장기적으로 값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