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하여
대기업부장? 말만 들어도 근사하다. 어떤 회사인지에 따라 다를 테지만 연봉은 최소 못해도 1억 5천만 원이 넘을 것이고, 복지는 사내대출부터, 호텔 휴양시설, 의료비에, 건강검진에, 자녀 학자금에, 우리사주며, 사내제품 직원할인에, 주변에 대우해 주는 사람도 많을 것이며, 세끼 식사에, 차량유지비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다 열거하는 것도 입 아프다. 회사는 이익을 창출하는 곳이기 때문에 만약 현재 여기서 뭔가 해주는 게 부족하다 느낀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복지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라 연봉인상은 당연한 거고.
자, 그럼 당연히 생각하는 결괏값은 뭐냐.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대기업 부장의 삶은 행복해야 한다. 아무런 걱정 없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가정도 화목해야 하고, 돈 걱정도 없어야 하며, 주변사람들에게 존중받고, 건강하고, 본인 삶의 만족도가 최상이어야만 한다. 근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 대기업부장이라는 직책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일 거라고. 누군가는 좌천되고, 누군가는 권고사직에, 희망퇴직에,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에게 밀려 도저히 설 자리가 없어 나오기 때문에 혹은 그 불안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그게 삶에서 영향은 있을 수 있겠다. 근데 결국 본질적인 불행의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그건 결국 마음가짐의 이슈다.
서울자가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야기가 요즘 핫하다.작가의 원작을 보고 드라마를 접하니 든 생각은 항마력이 딸릴 만큼 포장과 과장이 많이 됐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교훈과 인사이트가 점점 흐려지는 느낌이랄까. 대기업부장 김낙수는 아산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좌천된다. 딱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좌천을 당했든 말든 '서울자가에 대기업을 다니는 부장‘이고, 아들은 연세대를 다닌다라는 명제 자체는 객관적으로 성공한 인생이 맞다는 사실. 근데 좌천당한 본인은 그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본사 부장으로 이름을 떨치던 잘 나갈 때마저 본인은 본인 삶에 크게 만족하지 못한다.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늘 임원(드라마에서 백상무)의 가방을 따라 산다거나, 팀원의 비싼 옷, 차에 신경 쓰고 뽐내기 바쁘다. 본인을 자존심을 채우고자 와이프 일도 못하게 하고, 아들의 꿈을 짓밟은 채 본인과 똑같은 길을 가야 한다고 강요한다. 3인가구가 그리 현실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면서 그 삶에서조차 본인은 본인이 성공했다고 암시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잘못된 자기암시의 예시다.
원작의 1편, 드라마의 중반부를 향해가는 지금, 시청자는 김 부장이 '좌천' 당한 사실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서울자가의 김 부장으로서 어떤 극적인 결말이 펼쳐질지 기대한다. 다시 본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에 주목한다. 근데 김 부장이나 시청자나 딱 하나의 조건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삶 자체는 객관적으로 타인의 평가아래 '성공'일지는 몰라도 절대 행복할 수는 없다. 바로 본인이 본인의 행복을 정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행복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사우나를 예로 들어보자. A는 사우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 번 사우나를 하면서 정신적 쾌감을 느낀다. 근데 그에게 누군가 돈을 주면서 사우나를 제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해달라고 해서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매일 돈을 원하는 만큼 줄 테니하지 말아 달라고 해도 그 사람은 돈 안 받고 말지 하면서 그냥 사우나를 할 것이다. 이 사람은 사우나를 왜 하는 걸까? 순전히 본인이 행복하고 본인이 거기서 얻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다시 본사에 김 부장이 온들, 백상무의 실적압박,팀원들 간의 인간관계문제,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자리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 봉착된다면 타인의 눈에 바라본 본인은 성공했지만 그 우리 안에 있는 김 부장의 삶은 어떨까. 잦은 회식에 따른 스트레스, 실적압박에 따른 건강악화 그리고 가정에 신경 쓰지 못해 가정불화의 모습, 지속되는 심리적 불안까지 우리는 당연하게 예상한다.
어차피 시간은 계속 흐른다. 올 한 해가 얼마 전 시작한것 같은데 벌써 11월이고, 회사는 임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내년 사업계획을 짠다. 그의 직장생활도 그 끝이 만년 김부장이든, 좌천당해 어느 공장의 팀장이든, 임원 상무든 마무리할 날이 올 것이다. 모두가 결말에 집중하는 사이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과정인 것. 전체 직장생활을 하는 그 과정자체가, 김 부장으로 있는 자체가, 상무로 올라가는 과정자체가 행복했는지, 만족스러웠는지. 보상에만 매몰됐을 때 그 보상이나 개인의 이익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 만약 오게 되면 그 삶은 실패한 채로 끝나버린다. 승진하고 월급 오르고 이런 것 모두 좋지만 그 안에서의 내 건강, 유대관계, 더 중요한 가치, 앞선 사우나의 예처럼 잠깐이나마 내가 좋아하는 것에 웃음 지을 수 있는 날이 많은 것이 죽기 직전에 후회가 덜하고 훨씬 더 값지지 않을까 한다.
지인은 똑같이 연세대를 졸업했지만 버스기사를 한다.좋은 학점에 좋은 인서울대학에 나온 또 다른 친구는작가를 한다. 누군가는 유튜버고, 또 잘난 학벌을 가진 친구는 본인의 관심분야 스타트업에 다닌다. 또 대기업을 고민없이 퇴사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객관적으로정량화할 수 있는 지표, 특히나 한국사람들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서열화에 정점에 있는 많은 이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한다. 김부장이 가지고 있는 안정적 급여와 명성과 수많은 복지를 버리고서. 왜 그런 걸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행복하거든. 본인이 행복해서 그렇다.
1을 얻으면 2를 잃는다. 또 3을 잃으면 또 다른 4, 5가 온다. 무엇이 맞고 더 나은 삶이라고는 정의할 수 없지만 어떤 삶을 선택하든 뭐든 다 괜찮다는 거다. 가진 것과 못가진 것의 기회비용은 내 몫이 된다. 그럼 결국 뭐에 집중해야 하나. 정답은 당연히 없겠지만 지금 바로 생각나는 건
가장 먼저 건강, 삶에 필요한 적당한 돈과 내 사람, 내면의 충만함. 이 세 개가 결국 인생에 남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