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이해하기
멕시코의 유명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처, 프리다칼로. 그녀의 초현실적이게 비극적인 삶 뒤에 펼쳐진 초현실적인 작품처럼 혹은 봉준호스러운, 봉준호만 할 수 있는 사회풍자적 영화처럼 이 세상엔 유일무이하게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독자적 예술작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그들만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이란 건 결국 뭘까. 이 둘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결국 그만이 가진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그 이슈를 그들의 방식으로 나타내는 일일테다. 그들처럼 이 세상 모든 예술가들이 나타내는 이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은 그럼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보자.
예술가들은 매일같이 발생하는 이 문제들에 우스갯소리로 어쩌면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감을 얻으니까. 결국 다 각자의 원인이 있다. 개개인의 어떤 말못할 원인 말이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세계경제나 사회문제, 환경문제, 문화, 기술발전, 국제정세나 하물며 한 개인의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이 그렇다. 일방향적인 건 존재하지 않듯, 쌍방향으로 어떤 이유가 있으니까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박수도 맞닿아야 소리가 나듯, 이 원인으로 발생한 문제에 각자의 의견의 견해를 좁히지 못하니 친구와 싸우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나아가 경제가 나빠지고, 무역전쟁이 나고, 실제 전쟁이 나고 세계경제가 불확실해지고 주가가 폭락한다. 앞서 예시를 든 멕시코의 전설적인 화가 프리다칼로 또한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매일 같은 외도와 무관심, 3번의 낙태, 고향에 대한 그리움, 망가진 몸 이 모든 게 복합적인 원인이 되어 그 원인으로부터 우연찮게 원치 않는 영감을 얻어 그런 걸작이 나온 것이다.
결국 그녀는 40대의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이 걸작들로 한 때 잘 나가기도 했으니 인생은 발생한 이 원인들을 어떻게 대응하여 더 나은 결과로 만들어갈 것이냐의 결심의 과정일지 모른다.
현대인이 마주한 현실세계를 보자. 똑같다. 이렇게 각자의 무수한 원인들로 우리가 사는 매일 하루하루는 조용할 날이 없다. 그리고 이 원인은 모두 각자의 머릿속 즉, 각자가 만들어낸 우주 속에서만 펼쳐지는 것이기에 지극히 상대적이다.
흙수저는 집에 돈이 없다는 원인으로 인해 인생을 더 열심히 처절하게 살아가거나, 혹은 반대로 부모님을 원망하며 빗나갈 수 있다. 그리고 금수저들을 부러워한다. 반대로 금수저는 유복하게는 자랐지만, 늘 바쁜 부모님이 원인이 되어 사랑을 크게 받지 못해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연애를 할 때나, 친구와 관계를 맺을 때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 돈으로 이 결핍을 덮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돈은 없지만 가정의 행복을 느끼는 그 흙수저를 부러워한다.
임신을 간절히 바랐지만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3번의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던 프리다칼로는 우연히 쉽게 아이가 생겨버린 어떤 연인을 부러워할 것이다.
난임병원에 가본 사람은 안다. 정부와 언론은 저출산, 저출산 노래를 부르지만 실제로 병원에 가보면 아이를원하는 커플은 정말 셀 수없이 많다. 누가 애를 안 낳겠다고 했나. 대체 내 주변에 누가 딩크족인가. 한 명도 없다. 대기자가 많아 앉을 자리도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는가? 아이를 원하는 수많은 커플들 속에 등장하는 어떤 젊은 여자는 사후피임약 처방을 받으러 온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 임신을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영상의 댓글에는 피임을 안 해 20대들의 중절수술 고민이 흘러넘친다. 이렇게나 한 개인의 삶은 상대적이고 또 다르다. 그 원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부 다르다.
가족들 간의 모임이나, 지인과의 커피 한잔이나, 연인과 데이트, 친구들과의 여행, 한 개인의 인간관계.
그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맺는 직장상사와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이 모든 것도 어쩌면 자신과 타인 각자의 원인을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고, 그것의 다름을 조금이나마 ‘형식적으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상대를이해하려들 것이며, 누군가는 나보다 더 어려운 원인을 이겨내 귀감이 되고, 누군가는 그걸 하찮게 여겨 맞대응을 한다. 프리다칼로도 디에고리베라의 잦은 외도에 맞대응을 하고자 본인도 맞바람을 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인해 실제로 나비효과가 펼쳐져 유명화가들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더 잘 나갔다.
취업준비생이 어떤 회사 면접에서 치욕스럽게 탈락을 하고, 이 악물고 노력해 다른 더 좋은 기업에 붙을 수 있다. 더 열심히 해 더 나은 위치에 올라설 수도 있다. 전문직 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결과에 대한 원인을 깎아내리겠지. 그리고 질투하겠지.
각자의 어떤 원인으로 생긴 결핍을 서로 맞춰가고 합치를 이뤄가는 게 어쩌면 진짜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 합치를 이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나부터 알아야겠지. 내가 지금 처한 위치와 결핍을 충분히 이해하고,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해야겠지 가장 먼저. 내가 가진 자산, 지금 내옆에 있는 사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건강한 정신과신체 이 모든 것에 감사하면 오늘 내가 사는 하루가 저절로 행복해진다.
결국은 이게 답이다. 지금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면 거기서 발생한 어떤 선택으로 또 어떤 미래의 나비효과를 불러낼지 모른다. 그 희망하나 가지고 버티면서 계속 감사하는거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무수한 결핍에 파묻혀 있다 할지라도. 알빠야?
내 나이, 외모, 자산, 체력, 회사, 기억력 다 영원할 수 없다. 벚꽃도 4월에 잠시 피니 더 아름답듯, 매 순간 지금만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지금만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 한국사람들이 늘 강조하는 게 있지 않나.
다 때가 있다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그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일시성 때문에 그런 것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어차피 다 흘러가는 것. 우리 각자의 말못할 원인도, 결핍도 똑같이 다 지나간다. 일시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결핍이나 타인의 결핍도 이해하기더 수월해진다.
그래서 흙수저로 태어난들, 그냥 오늘 하루 살아냄에 감사하고, 살아서 뭔가를 일시적이게나마 가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럼 내 하루가 꽤나 가치 있어진다.
내일 더 힘차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