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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그 사이에서

두 개의 삶

by 홍그리

딱 한 가지만 파는 우아한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은 4계절 내내 오로지 한 가지의 음식만 고수한다. 그리고 그 한 가지 음식에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본인 모든 에너지와 관심을 이 음식에만 쏟았기 때문이다. 만약 김밥천국처럼 이 음식, 저 음식 손을 댔더라면, 그저 그런 배고플 때 잠시 허기를 달랠 모든 음식이 딱 그 정도 수준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음식점은 꾸준히 오랫동안 롱런한다. 잠시 스치기라도하면 파상풍에 걸릴 것 같은 몇십 년 된 간판도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힙하게 다가온다. 나만의 것을 만들어냈다는 주인장은 얼마나 흐뭇할까.

이 맛있는 곳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 자영업자들도 어쩌면 다 똑같은 마음 아닐까. 직장에서 하는 일이,그리고 자영업에서 생계를 위해 힘쓰는 일이 진정으로내가 원하는 그 하나의 완벽한 음식을 만드는 일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게 된다 한들 그만큼 열정을 부을 여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은 온전히 내가 맡은 일이지, 내 인생의 영역이 아니거든. 어쨌거나 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 신분이기에 고용주는 아무도 하기 싫은 일을 해주는 대가로 우리에게 돈을 준다. 그 돈을 받고 하는 우리가 내 인생을 바칠 만큼 열정적일 수는 어쨌거나 없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열정을 바쳐 일한 직원이 있다 해도회사는 요즘 인기 있는 <서울자가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야기>의 김 부장처럼 평생 본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냥 내쳐버린다. 자,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젊은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 답은 바로 나온다.


그래서 생계로 하는 일에 과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딱 돈을 버는 만큼만 일하거나, 퇴근 후의 워라밸을 챙기는 쪽으로 젊은 세대들은 바뀌고 있다. 이런 형태는 회사에 적극적인 요구나, 순종적인 역할을 꺼리고 최소한 해야 할 것만 쳐내려는 ‘조용한 퇴사’나 ‘승진을 거부’하는 형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현대사회에서 나타난다. 바로 두 개의 삶이다.

퇴근 후가 진짜 내 삶의 시작이라는 생각들. 이 생각은 정확히 두부류로 나뉜다. 꼭 나만의 삶을 찾고자 자유롭게 살고자 회사에 소극적으로 행하는 사람들. 본인은 퇴근 후 연애도 해야 하고, 혹은 가족 챙겨야 하고, 삶에서 회사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에 몰빵 하는 케이스다. 혹은 본연의 쉼과 건강에 시간투자를 하거나. 집에 와서 가면을 벗고 온전히 본인만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실 이론상 맞는 얘긴 것이,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직업인 의사도,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엔지니어도,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경찰도그 꿈을 결국 좇아간 곳이 ‘직장’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급여가 낮을 수 있고, 업무강도에 못 이겨 현타가 올 수도 있다. 그런 회사대신에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주 영리하고 눈치 빠르게도. 그들은 회사에서는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큰 대신에 좀 더 다른 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넓게 사유하고, 내면이 충만한 상태를 유지한다. 누가 뭐라 하든 조언하든 본인의 가치관과 다르다면 이를 듣지 않고,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산다. 그가 속한 어떤 한 조직에서 비난을 받을지언정 본인은 상관없다. 왜냐? 본인이 행복하기 때문에.


두 번째는 안정적이나 천장이 정해진 소득에 대한 불만으로 본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퇴근 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조금 더 빨리 부자가 돼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거나, 파이어족처럼 어린 나이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최상상을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이 힘들면 힘들수록 퇴근 후의 삶에 더 비중을 싣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재의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이들. 꼭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본인만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도 조금이라도 본인이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쪽으로 재취업을 하는 것도 물론 포함된다. 단, 여기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버는 시간을 죽이는 일에만 초점을 맞는 이들이 다수 있다는 거다. 노동을 하고 집에 왔는데 또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 이게 반복되면 돈을 더 벌 수 있겠지만 삶의 흥미를 잃을 확률이 높다. 가령 퇴근 후 녹초가 돼서 집에 왔는데 대리운전을 하러 이동한다. 근데 본인은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현재 월급이 낮기 때문에 돈을 더 벌기 위해 싫어하는 운전을 또 하고 있다면 그의 삶에는 불행뿐이다. 조금 더 경제적 자유를 위한 시간은 아주 조금 앞당길지 모르겠지만, 금방 번아웃이 올 확률이 높다. 오로지 돈에만 매몰돼 건강, 자유, 흥미 모든 걸 잃게 된다. 주변에 주식투자를 하거나 자산형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퇴근 후의 두 개의 삶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에는 내 경험상 적어도 퇴근 후에는 진짜 본인이 좋아하는 데 시간을 쓰는 걸 추천한다. 물론 당장은 돈이 안 벌릴 수도 있다. 단순히 취미로 좋아하기만 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도 모를 수 있다. 근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나 꾸준히 들어오는 소득이 있기 때문에 급하지 않게 돈을 당장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을 지우고 그곳에만 매진해 보는 거다. 요즘은 덕후가 곧 전문가고, 전문가가 돈을 쓸어가는 세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퇴근 후 양질의 시간을 보내고, 흥미까지 느끼면서 나중에 그걸로 혹여나 돈이라도 벌고 있다면 회사에 조금 힘을 빼고 다니면서 그게 진정한 본인이 애초에 원하던 삶 아닐까? 주말에 택배 상하차하고, 쿠팡배달하고, 대리운전 하면서까지 본인을 갈아 넣는 것보다는 훨씬 본인의 삶이 다채로울 것이다. 애가 몇 명 딸려있고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삶을 이어갈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오히려 경제적 자유와는 더 멀어진다.

이제 알아서 뭔가를 하려고 보니, 퇴근 후 나는 어떤 걸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진정으로 뭘 좋아하고 뭘로 시간을 보내는데 행복한지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본다. 잔재주가 많으면 그만큼 에너지소모도 빠른 법. 사람도 한 가지 일에만 충실해야 한다. 출근하면서 우리 대다수는 생각한다.


아, 퇴근하면 밥 먹고, 헬스장 갔다가, 샤워하고, 글도 좀 쓰고, 책도 좀 읽고, 영어공부도 해야겠다


라고. 근데 정작 그 사람이 퇴근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밥만 먹고 끝이다. 바로 침대로 직행한다. 지치거든. 녹초가 돼서 왔는데 또 이걸 하나하나 다 퀘스트를 깨는 기분으로 할 수가 없거든. 어차피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다. 그 에너지 총량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운동을 하는 거고, 영양제를 먹는 거고, 좋은 걸 먹으면서 체력을 보충하는 거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책을 읽고, 밥을 먹는 건 뭔가 비효율적이다. 그 세 가지를 한 번에 다 완벽히 끝냈다기엔 찜찜함이 남는다. 한 가지만 딱 정해서 해본다. 그럼 위 딱 한 가지만 파는 그 우아한 식당처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게 뭔지 조금은 보인다.물건도 마찬가지. 카메라는 사진이 잘 찍혀야 하고, 핸드폰은 통화가 잘 되어야 하고, 게임기는 게임이 잘 돼야 하고, 외투는 추위를 막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 기능에만 충실하면 그뿐이다. 뭘 하나 하기로 했다면 한 가지라도 진득하게 해 보는 실행력이 필요하다.


두 개의 삶은 이처럼 현대인에게 경제적 자립과 동시에 자아실현까지 할 수 있는 인생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준비단계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하루가 몇 시간 남지 않은 그 잠깐만큼은 내가 조금이나마 관심 있어했던 것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왜?

일상을 사는 건 너무 재미없거든. 외롭고 재미없고 아주 간헐적인 행복이 반복되는 극적인 영화 같은 것. 그래서 퇴근만큼은 본인이 좋아하는 걸로 당연 채워야 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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