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백 욕하는 남자들에게

참된 소비에 대한 소고

by 홍그리

의미 있는 자산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꼭 하는 얘기가 있다. 특히,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사업성공, 주식 등) 이들을 제외하고 꾸준하게 일관된 방향으로 자산을 만들어 온 사람들. 보통 직장인이나, 자영업 그렇게 특출 나지 않고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생계를 이어나가는 보통의 사람들. 이들에겐 꾸준함이 어떻게든 무기이기 때문에 그 꾸준한 상태에서 검소한 삶만이 본인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회사원이라고 해보자. 아무리 대기업에 다닌 들, 상한선은 정해져 있기에 벌면 벌수록 절약하고, 각자 용돈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며,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해외여행을 연례행사처럼 가지 않고, 맛있는 게 있다 하더라도 가끔씩만 배달음식 먹으면서 그렇게 돈을 모아가야 한다고. 현재의 행복을 참는 그 과정을 5년, 10년 이상 하다 보면 언젠가는 본인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그런 강한 기대를 갖고 산다.


하지만 반대로 이를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의견은 오늘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족이 아닐지라도, ‘저렇게 현재를 아끼면서 불행하게 살다가 나중에 건강을 잃게 된다면 결국 본인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에서 그 고민이 시작된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아메리카노를 참으면서까지 도대체 뭘 위해 돈을 벌어야 하냐는 것. 그러면 과연 마라톤 같은 긴인생여정을 내가 과연 버틸 수나 있을까? 에 대한 깊은의구심과 열패감이 자리한다. 특히나 미래는 모두가 알다시피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갑작스러운 비보나, 사고에 인간은 슬프게도 한없이 나약하다. 즉, 무조건적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옳지 않다는 거다. 상황을 막을 수는 없고 벌어진 상황에 대한 대처만 할 수 있는 인간이 지금 내 행복하나도 가지지 못한다면 과연 내가 유한한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산다고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 걸까. 결국 본인이 이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든, 주식투자를 하든, 자녀를 키우는 데 쓰든, 내 노후준비를 하든 어떻게든 ‘만족지연’의 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거다.


그러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세상만물 무엇이든 극단적인 건 옳지 않다고. 당연히 돈 모아야지. 그렇고 말고. 돈이 많은데 그걸 불행히 여기는 사람은 없다.근데 매 순간 소소한 행복도 느껴야 하고. 그러면 어쨌거나 적당히 모으고 적당히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소비도 매 순간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얼마 전 이십 대 중반이 2억 몇천만 원의 돈을 저축한 게 꽤나 방송에서 화제가 됐다. 앱테크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 요리를 먹기도 하고, 약속을 거의 잡지 않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면서 ’돈모으기‘에 치중된 삶이 한편으로 ‘미래가 걱정 없겠다, 대단한 청년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때만 할 수 있는 얼마나 많은 걸 그녀는 포기하고 있는 걸까라는 걱정도 됐다. 모든 이치는 양면이 있듯,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삶도 좌절이 존재하고, 완전 안에는 묘한 불완전한 요소가 자리한다. 정답이 없다. 절대적으로 계속 오르는 자산도 없고, 내리는 자산이 없는 재테크 시장처럼 적당히 사는 연습이 이 마라톤에서 오래 버티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나는 인생에 몇 번은 좋아하는 소비에 내 욕구를 풀어준다. 마라톤을 뛰는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도 마셔주고, 잠시 천천히 뛰어가면서 막판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과정도 있어야 결국은 완주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짠테크를 한다 해서 평생 짜게 극단적으로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모으지 않는다.

보통 소비를 크게 할 때에는 어디에 쓰겠는가. 모두가 각자 본인이 생각하는 인생에 있어 가장 가치가 높은 것에 힘을 쏟는다. 그러면 좀 더 양질의 인생이 된다. 그게 내겐 ‘오래 사용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먼저 겨울 외투. 그렇게 절약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이런 비싼 외투를 입고 다니냐고 누군가에게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백몇만원 주고 산 것 같다. 그것도 5년 전에. 앞으로 2년은 더 입고 버리겠지. 자, 10년 썼다 해보자. 백만 원이다. 그럼 1년에 10만 원 내고 입은 거나 다름없다. 이 비싼 거위털외투를. 그러면 이득 아닌가? 싼 거 1년에 십만 원, 이십만 원짜리 사고 버리고 매년 사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다. 대신 여름옷은 하루마다 빨아야 한다. 그럼 당연히 옷이 자주 빠니까 빨리 해진다. 그러면 굳이 비싼 걸 살 필요가 있나? 그래서 9,900원짜리를 매일 사 입는다. 어차피 올해 한번 입고 또 내년에 살 거니까. 소비도 이런 식으로 시간의 개념으로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내겐 달라진다.


다음은 시계나 가방도 지갑도 마찬가지. 500만 원짜리 시계와 100만 원짜리 가방이 있다. 5년째, 3년째 사용 중이다. 그럼 10년을 채우려면 최소 5년은 더 쓰겠지. 10년 뒤에는 또 이게 이득이다. 비싼 시계나 가방을 하나 산다 했으면 결혼식이나, 미팅 등 중요한 자리에서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데에 안성맞춤일뿐더러, 일단 가장 중요한 게 속된 말로 ‘꿇릴 일’이 없다. 그 누구에게도 무시당할 일은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오래 쓰면 그 시간만큼 더 가치가 빛난다. 가죽처럼.

그런 의미에서 <나솔 29기>의 샤넬백사건은 꽤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본인이 장소와 사람에 대한 예의와 본인의 미를 드러낼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싼 가방이 본인의 미를 못 드러낸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라면 단지 ‘돈’으로만 봤을 때 본인을 꾸밀 수 있는 것이 가장 먼저 자동차를 비롯해, 시계, 브랜드 옷, 양복, 안경, 하물며 크롬하츠 반지나 팔찌, 금목걸이나 팔찌처럼 액세서리도 많지만 여성은 사실 힘을 실을 수 있는 건 가방뿐이다. 그래서 천만 원짜리 가방을 샀다고 하자. 그 천만 원짜리 가방을 10년 든다고했을 때 1년에 100만 원 정도의 가치도 아까워하는 남자가 과연 결혼을 했을 때 그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그 여성은 돈을 벌어도 본인한테 쓸 수있는 돈이 없으니 돈을 버는 보람도 못 느끼고 결혼 전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살지 않을까? 가성비로 따지면 여성의 입장에선 샤넬백 하나 사는 건 최상위라 본다. 셀린느, 보테가, 루이비통, 구찌 애매한 거 한두 개 살빠에 샤넬백 하나 사는 게 본인 스스로의 만족이나, 타인의 시선이나(타인의 평판이나 평가에 대해 가치를 많이 두는 사람이라면) 훨씬 이득이다. 만약 미혼의 여성 중에 샤넬백 들고 다니는 걸 반대하는 남성이 있다면 본인이 사준 거 아니면 솔직히 닥치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본인이 진정으로 상대 남성과 깊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여성이라면, 혹시 상대가 지독하게 절약하는 짠돌이인 거 딱 하나만 단점이고 나머지는 다 품을 수 있는 남성이라면 샤넬백 하나 사는 게 재테크로도 훨씬 유리하다고 말해주면 된다. 매년 금액이 계속 오르니까 어차피 빨리 사는 게 이득이거든. S&P500, 나스닥 100, 서울아파트 같은 거라고 말해주면 된다. 5년 전 샤넬백의 금액과 지금 가격면에서만 보자면 앞서 말한 주식과 서울 아파트보다 훨씬 더 가파른 상승곡선이다.


내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고 편하고, 그리고 자기 관리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것에 돈을 한번 과감히 쓰는 것도 괜찮다. 죄책감이 들 필요가 없다. 이 자본주의 한국사회가 어떤 성공의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놓고, 얼마를 벌어야 하고, 얼마를 저축해야 하고, 몇 살에 얼마가 있어야 삶이 제대로 굴러간다고 무언의 압박을 해서 사람들이 돈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악착같이 참아가며 모으기만 하는데(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나는 이게 맞나 싶다. 한 번쯤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쓰고 사는 게 좀 더 인생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닐까. 본인이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면야. 어차피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다 행복하게 살고 싶잖아. 그 빈도를 내가 번 돈으로 좀 늘려가겠다는데 뭘 그렇게 안달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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