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하다 더 가난해짐

인생은 타이밍

by 홍그리

연말과 새해를 맞아 가장 많이 본 단어는 아마 ‘절세’가아닐까 싶다. 연말정산을 곧 하니까. 어쨌거나 자산을 효율적으로 모으기 위해서는 지출이 적어야 하고, 지출이 적으려면 나라에 내는 세금이 적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히 성립한다.


일반 근로소득자가 절세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소득공제나 세액공제가 있겠다. 가장 대표적으로 하는 것이 연금저축, IRP, ISA. 이걸 하는 사람은 연말정산 때 그만큼 돌려받으니(정확히는 과세를 이연 시키니) 안 하는 것보다는 이득일 수도. 그래서 언론이나 매스컴, 각종 SNS나 커뮤니티에서는 마치 이걸 안 하고 있으면 바보취급을 한다. 특히나 근로자에게 최적화된 상품이기에 더 강한 압박을 준다. 연금저축이나 IRP를 연 900만 원까지 납부를 하면 연봉에 따라 13.2%,16.5% 정도 과세를 이연 시킬 수 있으니 그걸로 S&P500이나 나스닥에 투자해 ‘무조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익’을 본다는 개념이다. 근데 가장 치명적인 건 어떻게든 숨긴다. 뭐냐? 돈이 묶인다는 것.


자, 연금저축과 IRP 정의는 딱 하나다.

세금 이연시켜줄 테니까, 너 지금 말고 노후에 돈 받아.


이걸 어긴다고? 중간에 약속 안 지킬래? 응, 그럼 이때까지 받은 세액공제 다 추징하고, 기타 소득세 16.5% 까지 더 부과할게. 그럼 너 더 손해니까 해지 안 할 거지? 응, 계속 그렇게 가져가.라고 하는 꼴이다. 이걸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여기에 잘 손 안 댄다. 이제 ISA에 손을 댄다. ISA도 절세상품으로 3년 동안 돈을 인출하지 못하나, 일반 계좌는 배당소득세를 15.4%를 부과하는 데 반해 ISA는 비과세금액을 제외하고도 9.9% 만 떼니까 이득이긴 이득이다. 이걸로 배당주나, ETF사서 수익 나면 당연히 좋지. 돈이 클수록 훨씬 더 좋다. 특히 중장기적으로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상품이라면. 근데 ISA도 함정이 숨어있다.


너 3년 안에 돈 빼면 9.9% 절대 안 해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래서 계좌만 미리 열어두는 건 가능하다. 돈을 납입하지 않고 미리 계좌만 열어둔다면 그 연 순간부터 3년이기 때문에 만기가 다가올 때쯤 투자를 해서 돈을 인출한다 해도 세금혜택을 볼 수 있다.


자, 근데 대부분 청년들에게 이 절세상품은 크게 유효하지 않다. 아니,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청년들은 취업준비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집도 사야 하고, 출산도 해야 하고, 자녀도 키워야 하고, 자녀 교육비도 들어가고, 집 사면 집 대출금도 갚아야 하거든.

세금 깎아주는 거? 너무 좋지. 근데 돈이 묶이는 순간 내가 지금 현생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뿐더러 노후 좀 편안하겠다고 갈수록 삶의 질은 떨어져 간다.

서울아파트값은 평균값만 15억이다. 서울에 안 산다 할지라도 만약 내가 내집마련을 하지 않고, 노후만 편안하자고 계속 연금저축 같은 절세상품에 올인한다? 내 집마련을 한 사람과의 심리적 안정감을 비교했을 때 천지차이다. 2년마다, 4년마다 계속 집 없이 떠돌이생활하는데 옮기는 집평수는 점점 더 작아지는데 노후에 받는 그 은행계좌 돈 보면서 흐뭇해한다? 손해도 그런 손해가 없다. 결국 한국현대사회의 재테크의 종말은 부동산이며, 부동산이 있는 상태에서 돈을 굴리고, 절세를 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내일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원하거든.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자 할 때 그래서 늘 기존의 안정을 전부 파괴하라고 하는 거다.


유동성이 사라진다는 건 ‘타이밍을 잃는 것’과 같다.

이게 얼마나 무섭냐면 삶의 대부분의 순간은 타이밍으로 결정 나거든.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때 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삶이 많이 지금 달라졌을까? 하는 순간들.

찰나의 고민과 그때만이 할 수 있는 의사결정. 그리고 그 결정의 파급력은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한번 놓치면 다시 찾을 수 없었던 인연이 사실 지금 내 배우자가 되어있을지도, 그때 고민하고 결국 하지 않았던 것이 내가 큰돈을 벌 수 있는 혹은 회사나 내 사업에서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5분 아니, 1분안에 결정해야 하는 어떤 인생의 순간들은 어떻게든 무조건 오기마련. 그건 결국 미래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로 나타나고, 지나고 나서 봤던 그 좋은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은 후회만 가득해진다.

하나의 이벤트만 그런 것 아니냐고? 그 하나의 이벤트가 다른 모든 일의 파급효과를 부른다. 적어도 내 경험에선 그렇다. 아주 찰나의 순간을 겨우 잡아내 입학할 수 있었던 대학교에서 기회를 얻어 해외를 돌고, 그 해외에서 생각지 못한 인사이트를 얻고, 또 그걸로 일자리를 얻고, 배우자를 얻는 이 모든 과정은 처음 그 찰나의 결정의 순간에서 나온 거거든. 도미노다 도미노.

자산시장에서 그 타이밍은 결국 ‘유동성‘이고, 그 유동성 때문에 똑똑한 청년들은 좀 더 비싸더라도 전세가 아닌 월세를 사는 거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은 갈수록 심해진다. 정부는 돈을 자꾸 푼다. 돈을 주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어떤 명목에서는 이유를 갖다 붙여 돈을 준다. 그래야 잠잠해지니까. 결혼하면 돈 주고, 취업하면 회사나 본인에게 축하한다고 돈 주고, 취업 못하고 있으면 불쌍하다고 청년수당 주고, 결혼하면 축하한다고 세액공제해 주고, 출산하면 또 돈 주고, 뭘 하던 다 돈 준다. 나중에는 그냥 숨 붙어살아있으면 돈 줄 거다. 아, 이미 추진하고 있네기본소득. 짜장면 짬뽕값은 곧 머지않아 만원을 돌파할 거고, 환율은 1500원을 넘을 거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랑 김밥만 먹어도 6-7천 원이 넘을 거다. 모든 게 오르는 이 자산시장에서 결국 버스를 타는 사람만, 막차라도 타는 사람만 모두에게 주어진 공평한 기회라도 ‘겨우‘ 가지는 건데 은행이나 증권사, 언론은 마치 근로자만을 위한 혜택인 양, 안 하면 바보처럼 프레임을 씌워 연금저축, IRP, ISA를 강요한다. 원금보장형 상품(적금이나 보험이나)이 인기가 없는 것도 원금이 보장된다 한들 10년 뒤, 20년 뒤 결국은 그 돈의 가치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5년 지나면 감가 -20% 먹고 시작한다.


이 시장에서는 ‘돈이 묶이는 것’은 ‘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보면 된다. 왜? 기회가 왔을 때 쓰지 못하는 건 똑같으니까. 한 명은 없어서 못쓰고, 한 명은 묶이니 못쓰고. 그냥 그렇게 계속 자산의 증가 없이 손해만 보고 있는 거다. 결혼을 앞뒀거나, 내 집마련을 당장 혹은 2~3년 내 목표한다거나, 취업준비로 버틸 돈이 필요하다거나, 사업을 준비 중이라거나, 큰돈이 들어갈 어떤 이벤트가 예정된 사람은 이런 절세상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좋다. 혹은 이런 동일한 상품들 모두. 내가 넣은 금액만큼 100% 대출이 나오는 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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