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는 곧 시스템
1. 새벽엔 글을 쓴다.
2. 아침 일곱 시 정각엔 커피를 마신다. (여름엔 아아, 겨울엔 뜨아) 가끔 배고프면 빵을 먹는다.
3.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저녁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녹음을 하거나. 와이프와 산책을 하거나 대화를 하거나 저녁을 먹거나 그 안에서 움직인다.
4. 그 사이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거나, 장기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으면 메모장에 기록을 한다.
(고정을 달아 가장 위에 보이게 한다)
5. 마찬가지로 떠오르는 일이 있거나, 쓰고 싶은 글감이 생각나거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거나, 책이 있거나 하면 생각나는 대로 메모장을 켜 메모를 한다. 누구와 같이 있다가도 잠시 양해를 구하고 메모를 하고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6. 자기 전엔 책을 읽는다.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 눈에보이는 거 혹은 곁에 있는 거 그냥 30분 읽는다. 그리고 열한 시에 잠이 든다. 늦어도 열한 시 반은 넘기지 않으려 한다. 하루를 아무리 의미 있게 보내도 결국 이것만이 인생에 남는 것이라는 걸 안다.
이외 인공눈물을 넣는 일, 선크림을 바르는 일, 머리카락을 자르고, 양치를 하고, 옷을 입고, 목도리 두르고, 에어팟을 챙기고, 건조기에 물을 채우고 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내가 행하는 일이다. 이처럼 주말을 제외한 일상의 루틴은 즉, 시스템화되어 있다. 김연아의 유명한 대답, ‘뭔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답처럼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루틴화돼 뭔가를 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물론 당연히 어떤 하루는 글을 쓰기 싫다거나, 책을 읽기가 너무 귀찮다거나, 과음한 날에는 아예 씻지도 않고 자버린다거나,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있지. 아니면 친구와 약속이 있거나 등 이런 루틴적인 삶에도 예외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이 전체적인 시스템은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
가령, 이직을 해서 일하는 곳이 바뀌어 대중교통이 아니라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그 방법만 바뀌고, 그 시간에 자가용의 키를 꽃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일터로 갈 것이다. 혹은 이사를 해서 새로운 집으로 간다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본인의 이사 첫날 모습이 새롭겠지. 하지만 일터든 집이든 그건 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거고 시스템은 알아서 움직인다. 저녁메뉴 고르는 일, 향수를 어떤 걸 뿌릴지 고민하는 일, 안경을 어떤 걸 쓰고, 가방을 어떤 걸 매고, 어떤 옷을 오늘 입을지의 모든 과정들도 마찬가지. 그냥 그 안에서 전부 다 바뀌는 거다. 심지어 난 그 시스템이 강력하지도 않다. 왜냐? 변수가 많거든. 친구가 많거나, 사업을 해서 비즈니스 미팅이 많거나, 가족이 있고, 만약 애도 있으면 변수는 당연히 더 늘어나겠지. 근데 미혼이고, 솔로고, 운동을 좋아하고 본인 일에 열심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변수는 최소화하고 일-집-운동-자기 계발, 그리고 다시 일-집-운동-자기 계발로 하루 아니 일 년을 채우는 사람도 내 곁엔 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살이 조금 찌면 다음날 먹는 걸 더 줄이고 운동시간을 늘리고 그런 식. 계속 연봉을 높여 더 나은 곳, 더 몸값을 올릴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는 그런 식.
하지만 이 강력한 시스템에는 고독이 깊이 자리한다. 외롭다. 로봇이 아닌 이상 삶의 의욕이 어느 날은 없는 날도 온다. 재미도 없다.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날도 온다. 근데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그럼 왜 단한치의 흐트럼없이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를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바로 의미 있는 내용물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본인 시스템에 운동이 있다면 1년이 지나면 몸에 윤곽이 잡히고 살이 빠진다. 공부가 있다면 결국 원하는 자격증을 딴다거나, 영어어휘 실력이 늘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직장을 구하거나 연봉을 올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지. 결국 전부 같은 시너지로 어떤 내용물이 나오기 때문에 남는 것이 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는 거다. 통제불가능한 영역은 어떻게 하냐고? 그것도 전체 시스템 안에서 보기 때문에 해결하기도 훨씬 수월해진다. 본인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경조사가 자리한다거나, 비보를 듣는다거나, 건강이 악화가 됐다거나, 가족 중에 누군가 무슨 일이 생겼다거나 할 때 모든 시스템을 ’일시정지‘하고 해결한 뒤 다시 원래 루틴대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계획 없이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삶보다 훨씬 더 리스크를 헷지 하기도 좋고 어쨌거나 본인의 삶 자체에 남는 게 있기 때문에 믿는 구석이 있으니 본인만의 총체적 여유로 대응하기도 쉬워진다.
이는 회사가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로직과 동일하다.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한들 그 사람이 퇴사하고 다른 사람이 와도 어떻게든 회사는 굴러간다. 왜?그 일을 하는 매뉴얼이란 게 있거든. 이전 사람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을 아무리 잘했든 다음 사람이 와서 매뉴얼만 그대로 따라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인수인계만 잘했더라면)
손해 안 끼치고 회사는 잘 굴러간다. 개인의 개성이나 취향은 묵살한 채 전체 시스템으로 계속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굴러가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 굴러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행착오를 겪은 그 매뉴얼은 더 발전하고, 매뉴얼 2가 나오고, 3이 나오고 최신본이 업데이트되면서 과거의 오류사례가 모두 적립된다. 그렇게 더 잘 굴러가고 성과는 더 나오고, 매년 흑자를 내니까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는 그런완벽한 선순환 구조. 좀 더 그 매뉴얼에 빠릿빠릿하게 따라오는 인원이 있다면 진급시켜 주고 월급 좀 더 많이 주면 더 열심히 잘한다. 누군가에게 월급을 지나치게 많이 주고 있다고 느끼거나, 근무태만인 직원이 있으면 좌천시켜 버리고, 징계 때리면 된다. 왜? 이들에게는 감정이란 게 없고 시스템 안에서 구르는 사람들은 영화 <설국열차>의 바퀴를 굴리는 그 아이와 다를 바 없으니까. 하나의 소모품이다. 닳으면 버리고 새거 끼우면 된다.
그러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회사가 시스템이면, 내가 그 시스템이랑 동일화를 시키면 된다. 그냥 감정 없이 매일같이 하는 것들을 철저히 시스템화하고,
‘아, 오늘은 귀찮아서 안 할래’, ‘추우니까 오늘은 운동 하루만 쉬자’라는 마인드를 최소화시키는 거다. 그리고 회사의 매뉴얼 최신본처럼 더 오류사례, 유혹에 뿌리치기 쉬운 사례를 적립해서 모아 내 시스템을 더 견고히 발전시키고 지켜나간다. 회사는 이런 걸 싫어한다. 왜? 그걸 아는 순간 회사 일에 집중을 안 할 거거든.본인만의 다른 시스템을 만드는 순간 집중이 분산되거든. 날 짝사랑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 관심이 없다가도 한 번쯤은 아쉬운 그런 느낌.
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만약 내가 생각하고있는 그 견고한 시스템이라는 것 안에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걸로 만약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있다면금상첨화다. 그게 아닐지라도 내가 좋아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 있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로 된다. 그리고 계속하면서 오류를 최소화하면 된다. 친구 덜 만나고, 술 덜 먹고, 약속 줄이고, 유혹을 가능케 하는 것들을 줄이면서 빈도와 밀도를 늘려가는 것. 그러면 이미 반은 성공한 거다. 이 시스템은 회사를 다니는 동안 더 굳건해져 내 진짜 자산이 된다. 그동안 회사는 내 시스템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ATM이 되는 거다.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근데 이게 실제로 그렇다. 왜냐.
90%가 넘는 본인 주변의 사람들은, 이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절대 실행하지 않거든. 퇴근 후에 매일 술 마시고, 유튜브보고, 자고 놀고 하느라 본인만의 시스템 자체가 없어지고 있거든. 그게 포인트다.
여러분의 시스템엔 어떤 재밌는 게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