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잘해왔잖아?
불안하다. 우리 모두는 불안하다. 회사원은 지금 당장 이 프로젝트를 기한 내에 맞춰야 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중간보고를 해야 하고, 연차가 됐으면 팀원까지도 챙겨야 한다. 매년 있는 인사발령에 발을 동동 굴려야 하고, 본인이 어떻게 될지, 본인 주변의 경쟁자는 어떻게 될지 눈을 굴려야 한다. 40대, 50대로 가면 누가 승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직장을 올해 나갈지 내년에 나갈지 내 생사가 달린 문제로 직결된다. 그 불안은 더 깊어진다.
자영업자는 주말에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출근을 했을 때 손님이 없으면 불안하고, 알바가 잘하고 있는지 늘 모니터로 감시해야 하며, 하루라도 매출이 잘 안 나오면 본인이 알바라도 해야 하나 고심한다. 알바천국을 들락날락거린다. 잘되는 순간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 어떻게 2호점을 낼지, 어떻게 이 손님을 단골손님으로 만들지, 매일 고심하며 불안해한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하는 불안이 아무것도 없는 자의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훨씬 더 큰 법이다.
최근 2030들의 일상생활에서 겪는 연애와 취업문제에 빗대어보면 답이 바로 나온다. 엄마친구아들이나 주변 지인들 다 가는 대기업을 본인만 못 갈리 없다며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열심히 취업준비를 한다. 준비하는 방향이 틀렸든, 스펙이 부족했든 간에 어쨌거나 취업을 실패한 뒤, 계속 도전하다 모은 돈은 줄어들고 어느덧 불안이 자리한다. 남들은 다 앞서 나가는 것만 같은데 제자리인 본인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고 더 작은 중견기업, 중소기업에 넣는데도 따로 회사 측에서 연락이 안 오면 그 불안은 극도로 심해진다.
자, 극적으로 이 친구가 중소기업에 취업 성공했다 쳐보자.
1년 차, 3년 차, 5년 차가 지나면서 ‘이 길이 맞는 걸까?’, ‘이 월급으로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 ’ 결혼을 해서 자녀를 기를 수 있을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라며 또 불안해한다. 사원에서의 불안, 대리에서의 불안, 과장, 차장, 부장, 임원이 되어도 이 불안은 계속 따라다닌다. 그 불안의 크기는 더 커지고. 만약 또다른 길을 시작했더라면 그곳에서는 또 불안이 자리하겠지.
연애도 마찬가지. 남녀가 이별하는 이유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헤어진 이유는 본인에게서 찾기도 하고, 상대에게서 찾기도 하는데 연애가 끝나는 횟수나 연인이 없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또 짙어진다. 영원히 혼자살 것만 같다. 근데 또 다른 사람을 만나도 불안하다. ‘아, 이 사람도 언젠가 날 떠나는 게 아닐까?’, ‘내 앞에서 그냥 날 좋아해 주는 척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다른 친구들은 다 결혼하는데 이번에도 헤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도 마찬가지. 이 사람이 행복한 연애를 끝마치고 결혼을 해도 불안은 또 똑같이 생긴다. ‘아, 이 남자(여자)가 최선인걸까?’
불안은 대개 가까운 미래에 있는 일들이 더 본인에게 깊게 다가오고, 그렇지 않은 먼 미래는 작게 느껴진다. 말 그대로 가까운 건 가까운 시간에 본인 인생에 절대적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내일 있을 승진시험이 더 중요하고, 다음 주에 있는 소개팅, 한 달 뒤 있을 발표가 10년 뒤 내가 자녀를 몇 명 나을지에 대한 일보다 더중요하다. 3년 안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선 과대평가하고 그 외엔 모두 과소평가해 버린다. 어차피 다 본인에게 닥칠 중요한 건데.
사실 이 불안의 양이나 깊이를 하나하나 절대적으로 따질 수가 없는 것이, 같은 일을 겪어도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넓은 사람은 이 불안의 폭도 깊다. 누군가는 이별의 순간, 직장을 잃은 순간, 소중한 사람을 잃는 순간, 인생을 살면서 꼭 한 번은 모두가 겪는 이 문제에 몇 달아니 일 년이 넘도록 못 헤어 나오는 반면, 누군가는 또더 좋은 일이 가득하겠지라며 잠깐 슬퍼하다 쿨하게 훌훌 털어버린다. 유명 아티스트, 예술가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도 이 슬픔과 고독을 느끼는 폭 자체가 일반사람과 달라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해 극단적인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오는 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우린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어떻게 잘 ‘조종’하는지가 좀 더 한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지 않을까 한다.
최대한 잘 조종할 수 있는 법? 그런 기막힌 전략이나 방법 따위는 사실 없다. 오늘 행복하면 된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며 이 감정은 필연적이라 받아들이면 된다.
20대는 30대를 걱정하고, 30대가 되면 40대를 걱정,40대는 50대를 걱정한다. 죽을 때까지 사람은 내가 살아갈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한다. 근데 변하지 않는 중요한 진실은 어차피 그때 가면 또 그때의 방법이 생기고 해결책이 생긴다. 그냥 마음 편안히 본인에게 시간을 좀 두고, 최대한 행복하기. 깊은숨 한번 쉬고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기. 불안은 당연한 건데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가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해서도 또 안된다. 비난받기 싫고, 불안해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긴 하는데 그럼 아무 기대조차 하면 안 되거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에.
시간을 좀 두자 본인에게. 너무 잘해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