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사람
좋은 아침이다.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대학교 초청강의에서 이름 모를 디자이너 강사분께서 매일 메모하는 것의 중요성을 듣고 난 이후 다이어리를 3년째 쓰고 있다. 주간형식의 레이아웃에 하루를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빽빽이 채운 여행일정 혹은 프로젝트 일정이 가득한 페이지는 기분을 좋게 한다.
일상에서 남는 것은 기록과 사진이다.
남기에, 남아서 좋다. 누구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에 자신의 자취를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싶어 한다. 망각의 존재이기에 자신의 기억조차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
이에 기록을 남기는 방법은 매우 좋은 수단이다. 사실 기록 밖에 없다. 글을 남기는 것. 추억을 사진으로 담는 것. 나를 닮은, 너를 닮은 자녀를 두는 것, 건축물을 짓는 것. 형태만 다를 뿐, 모두 기록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기록은 영원하다. 기록하는 삶은 영원한 것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항상 매일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속으로만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글은 몇천 원짜리 공책에 적을 수 있는 법이지만 언젠간 글을 출판하겠다는 생각으로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취업한 지 10개월 만에 가장 큰 소비를 했다. 작고 가볍고 배터리 오래가는 14인치 그램. 오늘 이렇게 삼전역 투썸에서 첫 사용을 시작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출근 한 시간 반 전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아침 햇살이 드리우기 전 차분한 가을하늘이 보이는 텅 빈 카페에 혼자 앉아 커피 한 모금과 함께 글을 읽고 쓰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포근한 여유.
기록은 사람을 드러낸다. 어떤 말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읽었는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기록은 드러내기에 그래서 남겨야 한다. 영원한 것!
어떤 영상에서 쓰기 위해 읽는다고 했다. 새로운 관점이었다. 최종 목적이 쓰기였다니.
그렇다면 독서의 행위가 크게 달라진다. 영원한 것을 위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차분한 공간에서 읽고 쓰기. 그래서 여유가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영원한 것을 위한 행위이기에 무한이 늘어난 시간을 누리고 만족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억만장자가 여행지에서 부담 없는 브런치를 누리듯이 말이다.
나는 기록을 좋아한다. 영원한 것이기에 좋다. 그것이 진정한 여유를 부른다.
삶은 끝이 나지만 글은 읽는 이를 통해 수명을 연장한다. 독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그 행위가 행복한 시간이었으면 하지 않는가? 그래서 글은 편하고 명확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