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우연은 없다.
주일 아침 시계를 확인하니 아홉 시 반. 늦잠이다.
서울에서 고양시의 교회까지 한 시간 반 걸리는 대중교통으로는 예배시간을 맞출 수 없다. 택시를 타야 한다. 3만 원 넘게 나오는 택시비는 둘째치고 더 큰 부담이 있다. 나는 택시를 타면 전도를 해야 한다.
작년부터 결단한 택시전도는 해가 지나도 여전히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택시를 타는 것이 확정이니 씻으면서부터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 내 마음을 담대하게 하시고 기사님의 마음 문을 여사 복음이 들어가도록 인도하소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순종하게 하소서.
현관을 나서며 어플로 택시를 잡으며 기도를 이어갔다. 주님, 나를 주관하시고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소서. 곧이어 택시가 잡히고 알림은 택시 도착까지 2분으로 안내했다. 화면의 지도 속 점점 다가오는 택시를 보며 나의 마음은 부담에서 기대로 변하였고 눈앞에 차량이 도착했을 때 온전한 평안으로 뒷문을 열었다.
택시가 강변북로에 진입하여 기사님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잠잠히 기다렸다. 때가 이르러 뒷좌석 인테리어에 대한 칭찬으로 입을 열었다. 칠순을 넘으신 기사님의 나이까지 알게 되며 스몰토킹을 이어가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사실 저는 지금 교회 가는 길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신데 최근에 교회를 개척하셔서 그곳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사장님도 교회에 다니시나요? / 아 저는 교회 안 다닙니다. /
혹시 사장님은 어릴 적 교회를 방문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 어머니가 불교라서 교회 갈 일이 없었어요. /
그러셨군요. 저야 부모님이 목회자이시기에 자연스럽게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어느 순간 하나님을 부모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반복되는 일상 속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고민 끝에 하나님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사장님은 그럼 복음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없으셨을까요? / 예예. 들어본 적 없지요. /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혹시 복음에 대해 말씀드려도 될까요? / 네, 하셔도 됩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속으로 감사를 외쳤다. 곧이어 나는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이 완벽하게 창조하신 이 땅 위에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왔음을,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우리는 지옥에 가야 함을,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심을,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그리하여 우리가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담대하게 전하였다.
사장님, 사실 제가 오늘 늦잠을 자게 되어서 택시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택시 중 사장님과 연결되었습니다. 사장님도 수많은 승객 중 교회에 가는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작은 기적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장님을 사랑하십니다. 사장님, 꼭 예수 믿으세요.
순종 끝에 기쁨이 있다. 복음은 막힘없이 선포되었다. 택시는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하였고 오전예배를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평안함으로 성전을 향했다.
말씀의 본문은 젖을 뗀 이삭을 학대하는 이스마엘을 목격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얻은 결과인 이스마엘은 옛 본성을 대표한다. 약속의 자녀와 옛 본성은 공존할 수 없다. 하갈이 사라를 업신여겼듯 이스마엘도 약속의 자녀를 괴롭히고 온전한 상속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위협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첫 자식인 이스마엘을 추방함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 결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주저함 없이 옛사람 이스마엘을 쫓아내었다. 성도는 자신의 옛사람을 분별하고 쫓아낼 때 비로소 하나님 자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선포에 자유함이 느껴진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니 기도가 사람을 움직인다.
하나님이 기도를 사용하시니 기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여리고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슴이 뛴다. 기도할 맛이 나는 순간이다.
예배가 끝나고 우리 교회의 첫 학습식이 있었다. 담임목사님의 질문에 학습자가 분명하게 말한 ‘네’라는 대답은 하나님이 주관하셨다. 그 사실을 묵상할 때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는 기적 속에 살아간다.
멘토를 주시다.
11월 둘째 주, 나는 결단한 새벽기도를 나가지 못하였다. 너무나도 기도가 하고 싶어서 고민하던 때 부소장님이 퇴근 후에 성전 기도하던 사실이 기억났다. 곧이어 출근하신 부소장님께 여쭈었다.
소장님, 혹시 오늘 교회 가서 기도하시나요? / 그럴 것 같은데, 너도 가려고? / 네! 오늘은 저도 기도합니다.
그날 이후 매주 월요일은 함께 퇴근하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성전을 향했다.
부소장님이 저녁을 사주시며 말씀하셨다. “앞으로 기도할 때 저녁은 내가 무한으로 사준다!”
아, 벅찬 감사와 함께 나도 저 사랑을 닮고 흘려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의 오랜 기도였던 멘토를 주셨단 사실을.
닮고 싶은 신앙을 지닌 사람을 얼마나 찾았던가.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힘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평신도인 부소장님은 내가 이르러야 할 수준의 믿음을 보여주셨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나의 기도를 위해 물질적, 환경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 회사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었다.
왜 이제야 주신 걸까? 누군가 물어보면 이렇게 답하겠다.
멘토를 발견할 눈을 길러주셨고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하심으로 올바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신다. 우연은 없다.
전도 축제
저번 주 주일은 전도 축제가 있던 날이었다. 축제를 앞둔 새벽에 아버지가 교회로 가시던 도중 넘어지시며 팔꿈치를 다치시고 지니고 계시던 노트북은 박살 났다. 11시 오전, 전도 축제의 예배에 단 한 명의 새 영혼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낙심치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사탄이 새벽부터 아버지를 넘어뜨리고 새영혼의 발걸음을 막았지만 우리의 축제를 멈출 수 없었고 그곳에서의 평안과 복음의 선포를 빼앗을 수 없었다. 우리는 말씀대로 순종하고 전진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은 분명하고 그가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신다.
준비된 식사를 배 터지게 먹으며 미국에서 막 귀국한 동생을 포함하여 모인 예배자들은 풍성한 교제를 나누었다. 교제 후 부모님은 늘 하던 대로 길거리 전도를 나가셨다.
나가자 전하자 살리자,
나가자 전하자 살리자,
나가자 전하자 살리자,
아멘 아멘 아멘!
부모님은 찬양과 기도 후 구호를 외치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러 나가셨다. 그러다 얼마뒤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셔서 남은 축제음식으로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셨다. 전도 중 만난 좌판 아주머니가 식사를 하지 못하셨다길래 그분을 위한 한 끼를 준비하시는 것이었다. 뒤에 아버지께 들은 소식으로 그분이 교회를 방문하여 도시락통을 직접 반납하셨다고 하셨다. 전도축제의 날, 한 영혼이 저 교회의 문을 열고 온 것이다. 과거의 나라면 이 방문을 영적으로 연결 짓지 못한채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이라 판단했었겠지만 오늘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발걸음임을 보았다. 우연은 없다.
하나님, 당신의 분명한 일하심을 보오니 내게 위로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틀 전 금요일, 한 시간을 작정한 기도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기도가 깊어지고 감사가 회복되니 나의 기도 가운데 항상 기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간구가 등장한다. 말씀이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 앞에 과거의 불순종을 통탄하던 백성들을 향해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호와를 기뻐함이 나의 힘이 된다. 그를 기뻐함이 나의 정체성이다. 그를 기뻐함이 하나님의 뜻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자 한다. 항상 기뻐하길 원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기록되었다. 이 사실을 레마의 말씀으로 내 삶에 비추어보니 나의 삶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에서 나오고 돌아간다.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속에 막연함과 모호함은 없다. 염려의 여지가 없다.
주님과 동행으로 나를 향한 계획을 발견하려 한다. 주님과 동행으로 시도, 때도 없는 기쁨을 누려보고자 한다. 자녀로서 마땅히 누려야 했던 그 기쁨을 이제 가져보려 한다. 그 기쁨의 근원이 내 안에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