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
2025.11.09 (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세기 21장 6절]
화요일.
예전 회사 동료들을 2년 만에 만나는 날이다. 2달 전 잡힌 약속을 두고 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길 원했다.
'하나님, 만나는 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주세요.'
용산역의 식당, 조금 일찍 도착한 동료들이 나를 반겼다. 모두들 얼굴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2년 전 그대로 우리는 어색함 없이 대화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2년의 공백을 업데이트하며 나의 삶을 나누게 되었다.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나를 인도하신 여정들을 꺼내어보았다.
그 간증들 끝에 나는 이제 행복하다고 말했다.
’여러분도 꼭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끝맺었다.
‘혹시 방금 전도하신 건가요?’ 동료 한 분이 툭하고 집었다.
‘그런가 봐요, 전도성공~’ 나는 긍정의 너스레를 떨었다.
작은 설득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앙의 삶을 살아냄에 감사했다. 오늘 나는 그리스도의 빛이었다.
목요일.
어제 집사님을 포함한 4명의 수요예배에 이어 앞서 결단한 목요일 새벽기도를 드렸다. 결단한 대로 실행한 기도의 자리를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부르신 기도의 자리에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에 감사했다.
통성으로 한 시간. 새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아버지의 성품을 위해 간구했다. 예배의 자유를 위해 부르짖었다.
무엇이 아버지의 자유함을 막고 있을까. 무엇이 당신의 기도를 억누르고 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질문에 머무르는 대신 돌파의 방법에 집중하겠다. 오직 기도로 나아간다.
기도하고 출근하는 열차 안, 마음이 혼란스럽다. 순종과 기도를 통한 감사가 떠오르다가 이내 아직도 막막한 상황에 마음이 힘들어진다. 항상 열정을 백퍼센트로 유지할 수 없다. 나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자. 기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 한 줄도 사라지지 않고 당신의 금향로에 담겨있다.
열차에 내려 걸어가는 출근길. 오른쪽 눈이 아프다. 문득 전날 사모님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아들아, 너무 애통하는 기도를 하지 마라. 몸 상한다. 주님 주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되 억지로 눈물로 구하지 말아라. 평안으로 기도하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평안이다.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과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혼동하지 말자. 지혜롭게, 감사함으로, 평안으로 기도하자.
금요일.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지닌 채 금요기도회를 향했다.
빌립보서 3장의 푯대에 대한 말씀. 모든 응답과 열매는 부산물이요 오직 우리가 구할 것은 예수다.
아, 내가 무엇을 진정 구하고 있었던 걸까.
왜 포장지에 머무르고, 포장지를 구하는가. 진정한 선물은 그리스도이건만.
예수, 예수를 원합니다. 예수만 원합니다. 주님과의 동행 자체가 나의 간구가 되게 하소서. 이제야 조금씩 깨닫습니다. 주님을 주인 삼은 삶은 사실 당신 자체가 목표인 삶이었군요.
다시 한번 나의 푯대, 목표점을 수정한다. 곁가지를 찾느라 본질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예수, 당신만 구하게 하소서.
토요일.
속해 있는 선교단체의 지체 2명과 함께 관악산 등산을 했다. 하늘은 비록 흐렸지만 선선한 바람은 등산하기에 알맞춤이었고 주변은 진하게 물든 단풍으로 가득했다. 하산하던 길, 보다 여유가 생기자 이번 선교에 대한 나의 마음을 지체들과 나누게 되었다. 선교일정의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는데 예전만큼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나의 망설임을 고백했다. 이것을 나누며 어차피 하나님이 다 채워주실 것인데 만약 금전적인 여건이 해결이 되면 갈 것이냐는 자문이 떠올랐다. 대답은 예스. 나눔 가운데 기도가 응답되었다.
오전 근무로 인해 등산은 참석하지 못한 지체가 점심일정에 동참했다. 서로의 오전을 나누다가 자연스레 하산하면서 가졌던 대화에 대해 나누게 되었다. 선교에 대한 결단을 듣던 그 지체가 여기 모인 모든 인원들의 비행기표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나는 잠시 듣고 멍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내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금방 채워주실 분이신데 무엇을 그리 재고 망설였는지.
하나님의 마음은 분명했다. 그가 나를 부르신다. 열방을 치유하는 거룩한 꿈 가운데 나를 초대하신다.
내게 주님 마음 주소서. 주의 사랑 깨닫게 하소서. 그 사랑 깨달아 그 사랑 전하게 하소서.
주일.
두 명의 새로운 성도님이 예배에 참석하셨다. 아버지의 노방전도에 감동하여 기도로 동역하고자 참석하신 집사님들이셨다. 우리 가운데 예배자를 더하신 역사가 있던 날이다.
주님의 날, 예배자의 마음 문이 열리고, 그의 발걸음이 교회를 향하고, 3층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 당신의 임재가 머무는 예배자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묵상할 때, 이것을 기적이라 고백한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며 예배자를 부르신다. 오늘 나는 그가 주시는 소망을 품는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 이삭이 태어난다. 아이 낳을 능력이 없던 사라가 이삭을 낳았다. 황당함과 농담의 웃음이 기적과 위로의 웃음으로 변했다. 이삭의 출생은 예수님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던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다. 친히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사 우리에게 영원한 웃음을 선물하셨다.
예수가 나의 웃음이다. 웃음의 이유가 되시는 이가 나의 모든 간구를 듣고 계신다. 그 사실을 기억함으로 다시 기도로 나아간다. 오늘 내 얼굴에 그가 주신 웃음이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