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늘 반짝이는 선물 상자 같았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던 캐럴, 창문에 붙어 있던 눈송이 장식, 가족과 함께하던 따뜻한 저녁 식사까지. 그 모든 것이 이유 없이 나를 설레게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미래를 걱정하기엔 아직 너무 어렸고, 아무 조건 없이 하루를 좋아해도 될 만큼, 마음이 덜 무거웠다
어느새 크리스마스의 설렘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내년의 연봉 협상은 잘 될지, 올해 나는 작년보다 무엇을 더 이뤘는지, 내년에는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질문들, 그리고 저축은 과연 얼마나 해야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생각들은 어느새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나를 붙잡는다.
그래도 가만히 돌아보면, 올 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답 없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말뿐인 다짐을 세우는 모습은 남아 있지만, 그 사이사이 조금은 버텼고, 조금은 배웠고, 조금은 스스로를 이해하게 됐다. 책상 위에 쌓인 미완성의 계획서와 메모들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을 꿈꾸다 현실 앞에서 좌절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생각하고 다시 적어 내려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마 내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평생 비슷한 질문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아직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하고. 사람은 성과로만 가치가 매겨지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이번에는 조금 더 담담하게 믿어보고 싶다.
누군가는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나아가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감사함과 갈망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 나만의 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으니까.
내년 이맘때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하고 싶다. 모든 고민이 사라진 모습이 아니라, 고민을 안고도 웃을 수 있는 조금 더 성숙한 내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오늘따라 창밖 그늘에 가려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눈에 들어온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흔적처럼 남아 있지만, 결국은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끝없는 고민 속에서도, 내년의 나는 지금보다 한 겹 더 따뜻해져 있기를, 그리고 그 따뜻함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기를 조용히 소망해본다.
내년에는 더 많이 읽고, 더 자주 쓰며, 다정함을 연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술은 지금보다 조금만 덜 마시는 사람으로 남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