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과감히 떠난 그 순간, 나의 이유는 단순했다. 주변의 걱정어린 시선 속에서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작은 어항을 벗어나 큰 바다의 고래가 되고 싶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은 순수함과 무모함 사이를 오가는 철없는 다짐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세상을 정복할 것만 같았던 나의 자신감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변해있었다. 한때는 어떤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감한 청년은 사라지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주눅 들어 시도조차 망설이는 겁쟁이만 남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짙어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내적 불신. 거센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물고기처럼, 한때 꿈꿨던 웅장한 고래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표류하는 피라미로 전락해버린 내 모습.
"나는 결국 이 정도일까?"라는 의구심은 어느덧 확신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내 스스로를 작은 어항 속, 주저하는 피라미로 가두고 있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던 결과였다. 나를 피라미로 만든 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두려움과 불신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라는 인간이 능력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여태까지 스스로를 너무 깎아내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비록 20대의 열정과 총명함은 없을지라도, 삶을 통해 몸소 겪으며 깨달은 지혜가 앞으로의 길에 큰 등불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나이가 드는 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며 늘 남들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생각으로는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 나조차도 이런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는데, 내가 보기엔 그들은 훨씬 더 훌륭한 사람들이다. 부끄럽지 않은 직장을 가지고 있고, 밥 한 끼나 술 한잔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빛나는 존재다.
요즘 들어 작은 행복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핫초코 한 잔, 출근길 랜덤으로 틀어놓은 노래 어플에서 나오는 좋아하는 노래, 오랜만에 읽는 책 한 권까지도. 예전에는 스치듯 지나쳤던 순간들이 이제는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겠지.
앞으로는 이런 작은 순간들을 더 많이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타인에게도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행복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 미뤄왔던 목표를 향해 조금씩 실천하며 다가가고, 하고 싶었던 취미도 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내 안의 가능성을 더 발견하고 싶다.
주변 모두에게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빛나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함께 웃을 수 있길 소망해본다.
나를 다시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