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 한잔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함께한 자리에서 왠지 모르게 한편으로는 웃고 떠들면서도, 속으로는 나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나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른두살, 이제는 삶의 무게를 걱정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시기 말이다.
어릴 적에는 "좋아질 거야", "너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들이 무한한 힘과 위로를 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그 말들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고, 나약한 자기합리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애써 웃으며 살고 있는 내가 가끔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얼마나 위태로운지, 내 스스로 떠올릴 때가 있다.
오늘,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고백했던 것 같다. 내가 왜 시를 좋아하는지, 왜 문학에 기대는 삶을 사는지에 대해. 사실 그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소위 말하는 "가난한 시인", "배고픈 예술가"라는 상징 속에서, 어쩌면 나는 삶의 모순적인 편안함을 찾아왔던 것 같다. 가난을 핑계로 삼아, 나의 가난을 외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솔직히 가난이 부끄러워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가난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생활을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칠 여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부유하게 보일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내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 나는 결코 부유하지 않다. 삶에 여유가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베풀 수 있는 어른스러운 사람도 아니니까.
가끔은 나의 주변을 둘러보며, 다들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나의 착각일지도. 그들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교라는 것은 늘 외부적이다. 이룬 것이 없고, 모아놓은 것도 없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가끔은 마음 한구석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희희낙락하며 즐겁게 웃으려 애쓴다. 인생을 어떻게 하면 낙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그래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에겐 진심으로 축복을, 나보다 적은 사람들에겐 작은 빵 한 조각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삶. 그런 관대하고 따뜻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말한다. "현실을 보라"고,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내 모습, 내가 꿈꾸는 이 삶이 단지 낭만적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걸. 살아가다 보면 나도 점점 변해야 하고, 현실에 더 순응해야 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모자라고, 부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꿈꾸고 나눈다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삶의 작은 아름다움이라고 믿는다. 나는 어쩌면 끝까지 현실에 전부 얽매이지 않기를, 솔직한 나 자신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흔들리는 삶 속에서 나는 스스로 묻는다. "이런 나도 괜찮을까?"라고. 언젠가 그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진심으로 고마워요. 나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