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진심 한 스푼으로 완성됩니다

by 홍정교

"야,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친구가 맥주잔을 들기도 전에 물었다. 순간, 나는 잔을 내려놓고 망설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가볍게 말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정답 같은 한마디를 꺼냈다.


"일단 한잔하고 얘기하자."


잔이 찰랑이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우린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물은 "너였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에 대한 적절한 답을 짜내야 했으니까.


학창 시절의 '인기남'

이 친구와 나는 학창 시절부터 아주 친했다. 얼만큼이었냐면, 더블 데이트도 해봤고 서로 여친을 소개시켜준 적도 있는 사이다. 한마디로, 이성 관계에 관해서는 서로 숨기는 게 전혀 없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때의 그 친구를 생각하면, '찬란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여친 후보가 줄을 서고, 그는 누구든 매력을 발산하며 자기 세계로 이끈다. 유머 감각은 기본, 준수한 외모까지 겸비했으니 인기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얘는 연애가 일상이구나."

그런데 언제였을까? 친구가 연애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된 게. 과거의 영광(?)을 종종 자랑하던 그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날들이 길어졌다. 그리고 오늘, 그 긴 침묵의 이유를 알게 됐다.

"이젠 도대체 모르겠어."

"학창 시절엔 웬만한 여자는 꼬실 수 있었거든?"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건 자부심보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근데 이제는? 쳐다도 안 보던 여자들한테도 차여. 아, 차이는 게 다행이지. 요즘은 아예 무시까지 당한다니까? 내가 문제인가 봐. 진짜… 솔직히 여자란, 이제 그냥 혐오스러워지려고 해."

이 말을 듣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자타공인 '인기남'이 이런 소릴 할 줄이야. 평소 그의 매력과 재능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데이트 중 상대방에게 이렇게 행동했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건넨 농담에 웃어주기는커녕, 무미건조한 응대를 했단다.

"왜 그랬는데?" 내가 묻자 그는 어이없게도 이렇게 답했다.


"내가 좀 무심하게 굴어야 상대방이 더 궁금해하잖아."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응? 아직도 "쿨함=매력"이라는 공식에 기대고 있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그의 쿨한 태도는 상대에게 무관심으로 보였고, 그들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이 모든 어긋남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었다.

'솔직함의 부재.'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한잔을 더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야, 네가 정말 문제라면, 딱 하나 있다."

그의 눈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너무 솔직하지 못하다는 거. 좋아하면 좋다고 얘기해야지.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든다고 말하고."


내 말을 듣는 그의 표정엔 약간의 충격이 서려 있었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쿨해 보이려고 애쓰지 마. 진짜 쿨한 사람은, 솔직하게 말하고도 당당한 사람이야."

친구는 맥주잔을 빙글빙글 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말이야, 만약 내가 그렇게 솔직하게 해봐도 안 되면 어떡하냐?"

나는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안되면 될 때까지."

그는 한숨과 웃음 사이 어딘가에 있는 소리를 내며 다시 잔을 들었다.


사실, 그의 고민을 듣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 같은 게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 죄책감의 정체는 간단했다.

"나도 잘 모르니까."

여자에 대해선, 아니 연애라는 것 자체에 대해 나도 해답 같은 건 없었다. 동일한 문제로 숱하게 고민해 온 내가 누구를 가르치겠는가? 그러나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어차피 다 사람 사는 세상이잖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성 관계든, 더 나아가 인간 관계든 결국 중요한 건 '진심'이었다. 상대방을 대할 때 진솔하게 자신을 보여주고, 내 마음을 전달하면 이상하게도 복잡했던 문제가 하나씩 풀려간다.

나는 그가 이 생각에 도달하길 바랐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태도로 삶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여자는, 아니 이성 관계는 어렵다."

누구나 비슷하게 생각하겠지만, 여자는 정말 어렵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 관계 자체가 어렵다. 남자와 여자는 사고방식이 다르다고들 한다. 방송, SNS, 책 어디에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몸소 겪어 보면, 그 차이는 까마득하다. 오죽하면 결혼해서 평생을 함께 살아도 상대방 속을 모른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한평생의 동반자조차 알 수 없다면, 만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답은 간단하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진심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 그의 잔을 비우며 건넸던 내 조언이 향후 그를 조금이나마 변화시키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오늘 마셨던 한 잔의 맥주는 정말 나름 의미 있었던 한 잔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에게 꼭 한 가지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네가 부족해서 누군가가 떠나는 게 아니야. 진짜 중요한 사람은 반드시 너의 진심을 알아보고 네 곁에 남을 거야."

잔이 비워질수록 우리는 어느새 함께 웃고 있었다. 고민도 삶도 한 잔처럼 천천히 비우고 나면, 찰나의 위안이 아니라 어쩌면 더 단단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밤은 그렇게 따뜻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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