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 이른 아침에 잠이 깼다. 기대하지 않았던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며 책장 속에서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어 앉은 자리에서 시집을 한 번에 내리 읽었다.
나는 평소 시를 자주 읽는다.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같은 시를 읽더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위스키를 음미하는 것 같다. 잔에 담긴 같은 술이라 해도, 시간이 흐르고 공기가 바뀌면 그 향과 맛이 달라진다. 아마도 시를 읽을 때의 내 마음 상태나 삶의 상황이 시에 대한 해석을 변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읽을 때 자주 위스키 한 잔을 곁들인다. 오늘도 그랬다.
몇 번이나 읽었던 익숙한 시집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오늘은 마치 처음 본 시처럼 가슴에 꽂힌 구절이 있었다.
가시나무의 자서전
류시화
장미는 그 많은 가시 속에서 꽃을 피우면서도
저의 가시로 저의 꽃 찌른 적 없다.
탱자는 그 많은 가시 한가운데 열리면서도
저의 가시로 저의 심장 찌른 적 없다.
나를 보듯 가시나무를 본다.
세상을 찌르려고 했나, 나를 찌르려고 했나.
가까이 가도 아프고 가까이 와도 아픈
나는 왜 가시를 키웠나.
이 구절을 읽으며 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 모두에게 가시가 있지 않을까?
살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보이지 않는 가시를 길러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가시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대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걸까? 내 안의 가시는 세상을 찌르려는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을 찌르려는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면 상처를 줄 것 같은 나의 가시는,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방어막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방어막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는 가시를 키우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시는 분명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안의 가시가 나 자신을 아프게 하거나, 소중한 것들마저 멀리하게 만든다면, 그 가시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가시를 키우는지, 그리고 그 가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생각한다. 그 고민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에는 내 안의 가시가 꽃으로 바뀌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일부터는 한동안 연휴가 없다.
아직 출근도 하기 전에 벌써 이런 걱정을 하는 내가 스스로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의 일상이란 언제나 이런 것일 테다.
그래도 오늘 아침, 시와 함께한 이 시간은 마음속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다. 비록 연휴는 끝났지만, 내 안의 가시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해볼 기회를 가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다.
나의 가시에 대해 다시 묻는다.
그 가시를 어떻게 다듬어 가야 할까, 그리고 언젠가 이 가시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마 그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살아가며 성장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