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상처

by 홍정교

“난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해하려 노력했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어?”


“넌 항상 꼭 그런 식으로 생각하더라.”


이런 말들이 오가는 순간, 대화는 시작도 전에 무겁게 가라앉는다. 상대방의 의도와는 별개로, 피로감부터 몰려온다.


인간관계에서 '배려'는 빠질 수 없는 덕목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도덕적으로 바르고 아름다운 일. 또는 그러한 행위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남을 배려해야 한다”, “배려할 줄 알아야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우리에게 배려의 가치는 너무도 당연하다. 나 또한 그렇게 배우며 살아왔고, 지금도 남을 배려하며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배려’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행동이 아니라, 어느새 해야만 하는 의무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상대방이 고맙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섭섭해지고, 알아주지 않으면 괜히 화가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아마도 "나는 부족하다, 더 변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던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강박이 생겼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배려심 깊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 그 진심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면 나는 곧바로 마음의 문을 닫고,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다. 정작 나 역시 상대방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배려라는 건 결국 ‘누가 더 많이 했는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몰라주지?”라는 기대가 스며든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배려는 금세 상처로 바뀐다.

더 큰 문제는, 그 상처가 관계 전체를 가려버린다는 점이다. 사실 상대방도 자기만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 나처럼 그들도 지쳐 있었을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이미 나를 배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걸 보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받은 것보다 준 게 더 많다는 셈법에 갇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다.

배려는 그래서 어렵다. 때로는 나를 지치게 하고, 억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다리이기도 하다. 다리를 놓는 일은 늘 힘들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닿을 수 없다.


나는 아직 배려의 균형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진심에서 시작된 배려는 언젠가 반드시 전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몰라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문득 떠올라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기록해 둔다.

배려는 평가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가, 내가 건넨 작은 배려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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