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알려준 것

by 홍정교

아침 출근길,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다. 길고 지루했던 계절이 끝나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비로소 한 해의 무게를 실감했다. 바람 한 줄기에도 시간의 흐름이 스며 있는 듯했다.


이맘때면 늘 그렇듯, 마음 한켠이 뒤척인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뚜렷한 답은 없다. 아마도 지키지 못한 올해 다짐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공간과 풍경들에 대한 조급한 기대가 섞여서일 것이다. 그 두 감정이 교차할 때마다, 나는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서, 그저 조용히 머물고 싶다. 모든 관계와 제약, 이름과 역할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나’로만 존재하고 싶은 욕망이 불쑥 고개를 든다. 어쩌면 그건 ‘도망치고 싶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유독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실감됐다. 예전 같으면 하룻밤 자고 나면 아무렇지 않았던 숙취가 이제는 이틀, 삼일씩 이어지고, 가벼운 감기 몸살조차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조금 슬펐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각자의 집을 꾸리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 때문에 쉽게 약속을 잡지 못할 때, 문득 나만 멈춰 선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지만, 그 속도를 체감하는 건 언제나 잔인할 만큼 개인적인 일이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걸어가 보고 싶다. 어디로 가든, 누구와 있든, ‘지금의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잠시라도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 마음이 결국 나를 길 위로 이끌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도망이든, 새로운 시작이든 상관없다. 다음 글은 여행의 기록이 되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줄인다.

작가의 이전글배려라는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