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 유난히 버거웠던 하루의 무게가 어깨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집으로 향하던 중, 문득 하늘에서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라면 두 손을 뻗어 눈송이를 맞으며 괜히 웃음이 났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설렘을 어디에 두고 온 건지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가로등 불빛 아래 반짝이며 흩날리는 눈송이들도 예전처럼 마음을 흔들어놓지 못한다. 하얀빛으로 도시를 천천히 덮어가는 그 풍경조차 이제는 ‘겨울이 왔구나’ 정도의 일상적인 관찰로만 스쳐 지나간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입김조차 오늘이라는 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하나둘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문득 깨닫는다. 이 자국들도, 이렇게 쌓여가는 하루의 피로도, 그저 또 한 번 치워야 할 흔적처럼 느껴질 뿐이라는 사실을.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이 새하얀 겨울옷을 차려입고 있음에도 그 고요한 아름다움이 마음까지 스며들지 못하는 건 아마 지친 마음에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눈은 그저 집으로 가는 길 위에 놓인 새로운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현실 속에서 나는 어느새 계절이 주던 낭만마저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 있었다. 하루를 버티느라 소모된 마음들이 겨울밤의 골목을 무심히 걷게 만들었다.
하지만 하나 남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어린 날의 설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길 바란다는 마음이다. 비록 지금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무게에 눌려 살아가지만, 언젠가 다시 눈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길, 그 가능성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
오늘처럼 마음이 무겁고 계절이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한때는 품고 있었지만 이제는 멀어져버린 것들, 그리고 다시는 완전히 되돌릴 수 없을지 모르는 감정들에 대해 잔잔하게 건너오는 그 목소리가 오늘의 첫눈처럼 조용히 마음 위에 내려앉는다.
때로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그리움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야겠지 무섭고 또 아파도
매일이 이별의 연습이지만
여전히 난 익숙해지지 않아
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줘야지 너에게 또 나에게
배웅은 또 다른 마중일 테니
해야겠지 너에게 또 나에게
<최백호, 나를 떠나가는 것들>